무엇이든 정리해야 할 때가 온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은연중에 정리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평소에 정리를 잘해두지 않으면 훗날 필요한 문서를 찾아야 할 때 정작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하는 나머지, 찾는 일에만 상당한 시간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폴더명을 적확하게 지어놓고 자료들을 날짜별로 분류하고, 예산의 수입과 지출을 그날그날 바로 기록하고, 기한 내에 해야 할 일들을 적어두어야 나중에 편해질 수 있다는 걸 절실하게 실감하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정리의 필요성은 비단 업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공개적으로 밝히기 부끄럽지만 나는 상당히 게으른 편이어서, 독서노트를 만들기 귀찮지만 기록은 하고 싶다는 양가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고민 끝에 최근까지 읽은 책들의 내용을 대강이라도 되짚어보는 겸 겉표지의 이미지를 다운로드해서 PDF 노트에 붙여놓고 있다. 지금까지 어떤 책을 읽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서 이 정도면 충분히 정리하는 거라고, 나름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언젠가는 인간관계도 '정리'해야 할 때가 닥쳐올지 모른다. 나의 인간관계 풀은 고작 작은 물고기 두세 마리만 헤엄칠 수 있는 어항처럼 좁아서 크게 정리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최근 들어 생각이 변했다. 어떤 물고기를 풀에 잡아두어야 할지 결정할 때 '물갈이'가 필요할지 모른다. 물갈이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풀 안의 물을 비우고 새로 채운다는 의미가 아니다. 풀의 크기와 물, 그리고 풀을 구성하는 조형물까지 나에게 적합하도록 새롭게 정돈한다는 의미다. '나의 풀'에서 물고기들이 나와 같은 방향과 속도로 헤엄칠 수 없다면 밖에서 헤엄치도록 풀어줘야 할 것이다. 내가 잡아두고 싶어도 풀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 안달이 난 물고기들은 기어코 벗어나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 풀의 크기를 키웠다고 너무 많은 물고기들을 채워 넣으면 정작 내가 자유롭게 헤엄칠 수 없거나, 심지어 숨이 막힐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그러니 주기적으로 '물갈이'를 해주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든 간에, 정리하는 일을 귀찮다는 이유로 손 놓고 있을 생각은 없지만, 너무 꼼꼼하게 할 생각도 없다. 정리하는 일도 은근히 시간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정리할 필요가 없는 일까지 온몸이 끙끙 앓을 정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정리하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