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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의 대화

AI는 인간관계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by 문하현

쉬는 날에 여느 때처럼 유튜브의 영상 파도를 유랑하며 볼 만한 영상을 찾아보고 있었다. 그러다 노인분들이 출연하는 영상이 유독 눈에 띄었는데, AI인형을 마치 제 자식인 것처럼 끊임없이 대화하고 옷도 입히고 귀걸이까지 손수 달아주시는 것이었다. AI인형은 스크립트가 내장된 상태겠지만 실제로 대화의 맥락을 어느 정도는 구별할 수 있는지 노인분들의 말에 적절한 반응을 보였다.


AI가 사람과 공존하는 시대는 한참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변화는 우주의 빛처럼 빨라 이제 어느 단계에 도달했는지 가늠하기도 어려워졌다. 그만큼 많은 여파가 변화의 흔적을 제대로 뒤쫓지도 못하게끔 한껏 어지럽힐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심리상담은 AI가 대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중론이 우세였다. 이제는 대체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에 AI가 찬물을 끼얹는 셈이다. 당장에 챗GPT만 하더라도 대화를 시도하면 원하는 대답을 해주고 위로해주기까지 해서 좋다는 반응을 인터넷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AI와의 공존은 어떤 분야든지 간에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화도 AI가 대체한다면 만나서 대화를 시작할 사람도 덩달아 필요가 없어진다. AI에게 온종일 매달려도 아무 문제가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상황을 쉽사리 상상할 수 없지만 자못 심각하게 느껴질 법하다. 그런데 만약 AI가 사람보다도 훨씬 낫다면? 실제 사람이 필요 없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웬만한 사람들보다 공감을 잘하는 AI가 나타난다면? 그때가 정말로 현실에 도래한다면 '인간중심주의'를 계속 고집할 수 있을까?


첫 문단에서 언급한 AI인형을 생각해 보자. 인형은 이미 지자체에서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전달한 듯했다. 독거노인의 문제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인형을 붙여주는 것이다. 인형에만 온정신을 몰두한 나머지 실제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되면서도 현실과의 괴리가 심화되어 더 큰 악영향으로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외로움은 단순히 함께 있는다고 해서 채워지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외로운 순간들이 있지 않았는가? 함께하는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으면 쉽게 외로워진다. 뚜렷한 해결책이 있지도 않다. 내가 누군가를 내 마음대로 행동하게끔 지시할 수 없으니까. 또한, 상대방이 아무리 관심을 물심양면으로 주더라도 스스로가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한계가 있다. 궁극적으로 외로움은 스스로만이 채울 수 있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부분들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형이 외로움을 완전히 채워주기는 어렵겠지만, 사람이 외로움을 채워주는 일이 비용-시간적인 측면에서 효과적일지는 의문스럽다. 전문적이지 않은 개인 의견을 쓰는 것이기에 학술논문을 살펴보지는 않겠지만 독거노인의 수는 그 증가세가 훨씬 빨라질 것이라고 예상하기 쉽다. 독거노인의 복지에 투입될 전문인력이 그만큼 증가할까? 아마 힘드리라고 생각한다. 저출산이 심화되면 그만큼 가용할 수 있는 인력도 감소할 텐데 그때가 되면 과연 노인복지에 신경 쓸 만한 여력이 있을까?


챗GPT든 AI인형이든 간에 AI들은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들려줄 것이다. 이게 당연히 좋은 일이 아니겠지만 독거노인에게는 악영향이 한결 덜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독거노인은 당면한 외로움을 해결하는 일이 중요한데 듣고 싶은 말만 해주는 게 실질적으로 얼마나 큰 문제로 작용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아직 한창 발달단계에 있을 아이에게는 AI에게만 집중하며 오로지 본인의 관심사에만 치중한 대화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한창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절 학교에서 사회적인 접촉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전반적으로 발달에 있어 부정적인 영향이 있었다는 연구결과를 얼핏 봤던 기억이 난다. 독거노인에게는 이러한 부작용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물론 다른 부작용은 발생할 것이다). 대상에 따라서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AI가 정말로 사람보다도 공감을 더 잘해준다고 느낀다면 사람을 굳이 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AI가 선제적으로 당면한 문제에 대응하면 그만큼의 여력을 다른 더 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투입할 수도 있다.


AI가 사람과의 대화마저 대체하는 시대는 생각보다 빠르게 도래할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들은 모조리 조각나서 다시 이어 붙일 수도 없고 윤곽조차 파악할 수도 없는 퍼즐처럼 해체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무관심이란 암울한 늪에 발을 들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을 부각한다. AI가 인간관계라는, 생존에 있어 원초적인 틀을 무너뜨리게 될 때 우리는 더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의미 상실'의 여파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중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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