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그 자체로 만족스럽다.
우리는 한 번뿐인 생애의 진로를 설계하는 데 있어 두 가지 요소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된다. 바로, '직업'과 '능력'이다. 직업은, 말 그대로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능력은,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의 총체라고 간주될 수 있다.
직업과 능력이 톱니바퀴의 톱니들이 완벽하게 맞아 들어가듯 서로 조화를 이루는 케이스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당장에 나는 말단 공무원으로서 업무를 수행하지만 나의 '능력을 기준'으로 이 직업이 나에게 적합하냐를 따진다면, 사실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불과 최근까지만 해도 부모님은 내게 "너의 능력에 비해서 네가 맡는 일은 비교적 쉽다"며 더 상위 직급이나 아예 전문직을 목표로 시험 준비를 다시 해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하신 적이 있다. 물론 부모님께서는 '부모의 입장에서' 나를 다소 과대평가하시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지만, 이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줄곧 별생각 없이 쳐다만 보던, 아득히 높은 미지의 세상으로 퀀텀점프를 하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면 못 해낼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지금의 평온하고 잔잔한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나의 직업이 불만족스럽냐고 스스로에게 되묻는다면 나는 몇 번이고 충분히 만족스럽다며 마음을 다잡곤 했다. 때로, 새하얀 페인트를 뒤집어쓴 벽에 어느새 생긴 잿빛 얼룩처럼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면 제 스스로 맑게 반짝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만족감에 잠겨 들게 하는 부분들이 훨씬 눈에 많이 들어온다. 비록 내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직업일지라도, 삶의 방향을 거머쥔 거대한 수레바퀴를 도저히 움직일 수 없도록 매서운 격랑의 바다 한가운데에 떠밀어버리는 일이 아니라면 괜찮다.
어느 부모든, 아이가 지금보다 더 나은 직업을 갖고 이를 통해 더 많은 보상을 받길 바란다. 만약 내가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반드시 답을 적어내야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문제처럼, 아이가 스스로 원하는 삶과 나의 사소하면서도 원대한 소망이 반영된 삶 사이에 형성된 광활한 간극을 좁혀야 할 시기가 필연적으로 닥칠 것이다. 나는 나의 소망에서 피어오른, 끈적하고 불투명한 상상의 늪에 아이가 허우적거리도록 과격하게 밀어넣고 싶진 않다.
과거의 평온함을 그대로 잇는 지금의 삶, 그리고 앞으로도 평온하고 또 평온할 미래의 삶은 모두 존중받을 만하다. 우리의 삶은, 처음부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