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주기

어떤 과거가 있든 간에, 현재를 믿자.

by 문하현

사람의 뿌리는, 과거의 일화들이 줄줄이 얽혀 끝을 찾아낼 수 없는 '서사'를 양분으로 삼는다. 우리가 사람의 이면을 판단할 때 자연스럽게 한 개인의 과거를 샅샅이 들추어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뚜렷한 형태가 부여되지 않은 채 조각조각나 우주의 짙은 어둠에 묻혀 희미해진 별들처럼 흩어진 과거들을 모아, '불완전한 서사'를 형성해 낸다.


우리는 이러한 불완전한 서사에 근거해 개인의 앞날을 쉽게 예측하려 든다. 여기서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뻔한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 편의 독립영화 같은 이전의 서사는, 잘못하면 메말라 비틀어질 수 있는 이해가 훨씬 풍부해지게끔 생기를 불어넣는다. 어떠한 과거를 겪었든 간에, 깨끗이 잘린 종이의 절단면처럼 취급하는 일은 어찌 보면 순진한 생각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래도, 밝고 희망찼던 과거보다 지극히 암울하고 고통스러웠던 과거에 훨씬 많은 관심을 쏟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인 듯하다. 무의식적으로 부정성 편향에 영향을 받는 부분도 있겠지만, 이러한 과거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로 간주하게 된다. 과거에 대한 주관적 해석을 통해 개인의 앞날을 예측하는 데 과도하게 오용하거나, 한눈에 들어올 만큼 큼지막한 낙인으로 찍고 나서 찬란한 빛들을 머금은 다른 면들은 매몰차게 무시해버리기도 한다. 해석을 한 장의 선명한 흑백 사진처럼 남기게 되면, '지금, 현재' 어떤 의지로 삶을 지탱하고 있는지에는 자연스레 관심을 두지 않게 된다.


퍼즐의 일부만 억지로 끼워 맞춰 엉성해 보이는 해석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면 그 사람의 '현재 모습'을 세심하게 지켜보고, '미래를 향한 비전'을 어떤 형태로 다듬어나가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현재와 미래를 그저 흐릿한 배경으로 물러나게 하는 과거라는 블라인드를 넘어서고, 굳건한 지반 같은 해석을 수정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과 엄청난 끈기가 수반된다. 현재 모습과 미래를 향한 비전은, 마치 중천에 뜨는 태양처럼 하루아침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치명적인 낙인으로 전락한 과거를 과감하게 등질 수 있는 원동력은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과거를 고스란히 겪었다 하더라도 '지금, 현재'에 과거의 잔재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당차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실하게 믿어주어야 한다. 특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겠지만 철옹성 같은 믿음을 주변에 세워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