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조절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깊게.

by 문하현

최근에 접한 유튜브 영상 중에는, '깊은 사고'가 뇌의 디폴트 모드로 작동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설명하는 영상이 있었다.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은, 웬만한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칠 대상들에도 복잡한 생각이 덧입혀진 기다란 띠를 두른다. 생각이 일단 어떠한 형태를 부여받게 되면, 거칠거칠한 석고를 매끈하게 다듬는 조각가에 빙의라도 한 듯 생각을 깎아내기 시작한다.


유달리 남다른 '깊은 사고가 탑재된' 사람들은 주변에 한 명씩은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도서관에 진열된 책들의 표지만을 빠르게 훑어보듯 관찰해서는, 그들의 진면목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이들의 생각은 단지 상자 하나에 모두 담기지 않아 내용물을 모두 보여줄 수 없을뿐더러, 뇌 속에 있는 공장의 컨베이어벨트를 스스로 정지시키지 않는 한 상자를 끊임없이 생산해 낼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평범한' 사람들보다 항상 더 나은 결론을 도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깊이가 남다른 만큼, '적당한 깊이'를 조절하기 어려워하기도 한다. 혼자서만 조용히 심연의 바다에 잠겨서 바다와 몸의 경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지경까지 가기도 한다. 이들 중 일부는 애초에 빠져나올 생각이 없거나, 혼자서 수면 위로 올라오기 버거워할 만큼 바다에게서 본연의 힘을 갈취당하고 만다. 너무 깊은 곳까지 내려가면, 정작 부드럽고 따뜻한 햇빛이 내리쬐는 바다의 표면에 표류하는 사람들과 멀어져 버린다는 것을 이들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음에도 멈추기 쉽지 않을 것이다. 심연은 이들에게 안온한 은신처인 동시에 스스로를 옥죄는 감옥인 셈이다.


그러나, 이들은 사고가 깊은 만큼 타인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도 '같은 깊이를'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의 관계 네트워크 안에 포함되는 사람의 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지만,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회로의 두께가 스스로 끊어내지 않는 한 외부의 힘이 아무리 가해져도 쉽게 끊기지 않을 만큼 상당히 두껍다. 이들의 작은 그물망 안에 얽힌 사람들은, 심오하면서도 따스한 깊이를 알아챈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다면 종잡을 수 없는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이들의 그물망에서 일찍부터 벗어났을 테니까.


이들의 '미숙한 깊이조절'을 두둔하게 되는 이유는 이들과 '비슷한 결'이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적당한 깊이조절을 해낼 수 있었을 때는, 이미 거대한 산맥을 이루는 퇴적된 시간이 두 발을 튼튼하게 받치고 있었다.


그러니, '깊이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면 곁에서 찬찬히 지켜봐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들은 관계의 실을 엮는 속도가 여타의 사람들보다 느리지만, 그만큼 실이 두꺼워져 쉽게 끊어지지 않을 테니까. 설령 거리가 멀어져서 실의 길이도 덩달아 길어진다 해도, 언제든지 이들을 다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