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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현달 Aug 25. 2021

네?제가 자궁근종이라구요?

소세지빵의 소세지의 기분을 아시나요

바야흐로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한 번 만난다는 7월 7일. 나는 오전에 혼인신고를 마치고 세대주가 된 기념으로 남편과 맛있는 비빔냉면과 만두를 거하게 먹었다. 사실 이렇게 거하게 먹는 건 오후 1시 반 이후부터 MRI 촬영 때문에 금식이기 때문이었다. 정말 1시 반이 될. 때. 까. 지 먹었다. 고작 네다섯 시간 굶는 건데 나 배고픈 꼴은 죽어도 못 본다.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보호자로 인정받은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그날은 정말로 날씨가 맑아서 드라이브하는 심정으로 서울로 떠났다. 애매한 오후 시간의 도로는 매우 한산했다.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들. 탁 트인 도로. 검사받으러 가기는 아까운 날씨였지만 언젠간 해야 하는 검사 후딱 하자는 심사로 떠났다.


 지난번 늦었던 것도 있어서 이번엔 좀 서둘러 움직였더니 40분이나 빨리 도착했다. 미리 접수를 하고 MRI 검사실 앞에서 대기를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부인과 병동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아무래도 검사 병동이라 그런지 부상으로 온 환자들도 많았다.


 병상에 누워 이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수술 뒤 내 모습이 저럴까 잠시 상상해 본다. 어렸을 때 폐렴으로 짧게 입원해 본 적은 있지만 몸을 가눌 수 없게 된 적은 없었다. 수술 후기 보면 정말 몸도 가눌 수 없을 만큼 아프다던데… 아직은 너무나도 미지의 세계여서 상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긴장돼서 그런지 아니면 근종이 내 방광을 누르고 있어서인지 화장실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그래도 시간이 아직도 15분이나 남았다. 애꿎은 남편 손만 주물럭 거린다. 고작 검사일뿐인데 이렇게나 긴장될 일인가. 남편은 그 시각 계속해서 조영제 부작용을 검색하고 있었다. 이 사람 생각보다 의심이 굉장히 많아.


 드디어 이름이 불리고 검사실로 들어갔다. 남편은 밖에서 대기하고 혼자서 들어갔다. 안정제를 맞고 조영제를 연결해 두었다. 조영제는 검사가 시작되면 몸으로 흘러간단다. 신기하기도 하여라. 금속물질은 반입이 불가해서 와이어가 없는 마스크로 교환하고 MRI방으로 들어갔다. MRI 기계소리는 굉장히 시끄러웠다. 둠칫 두둠칫의 반복. (하지만 그렇게 신나는 음은 아니다. 그저 기계음일 뿐이지만 어쩐지 나에겐 그렇게 들렸다.)


“기계음이 굉장히 시끄러워요. 헤드폰 채워드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기계 안에서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혹시나 답답하시거나 무서우시면 다리를 드세요. 그럼 검사를 중단하거나 제가 들어와서 도와드릴게요. 검사는 30분 동안 실시될 예정입니다.”


 평소 폐소 공포증은 없으니 당당히 괜찮다는 의미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막상 눕고 기계 안으로 들어가자 이게 웬걸? 답답하고 무섭다. 다행히 얼굴은 기계를 통과해 밖에 있었으니 망정이지 안에 있었으면 정말 없던 폐소 공포증도 생길 거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튼 나는 소세지빵의 소세지가 된 기분으로 누워있었다. 숨 들이마시고 숨 멈추고 숨 뱉고를 몇십 번이나 반복했다. 머지않아 온 몸에 조영제가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 검사를 하다 보니 기계음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둠칫 두둠칫 거리기도 하고 빠른 스피드에 높은음을 내기도 했으며 굿할 때 징소리 같은 소리도 났었다. 굿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니 지난주에 사주 봤을 때 수술 잘되려나 한번 물어나볼걸 이라고 생각하는 나를 보며 흠칫 놀랐다. 과학적인 검사를 하면서 미신을 떠올리는 사람 비단 나뿐만이 아닐 거라 믿어본다. 우리 모두 샤머니즘 좋아하잖아요?


이제 좀 나가게 해 달란 소리가 다리 끝까지 차올라 깔딱깔딱하고 있을 때 앞으로 십 분만 더 참으면 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맙소사 아직도 10분이나 남았다니. 소리가 시끄러워 집중도 못하겠고 망상도 못하겠더라. 그렇게 좋아하는 ‘끝나고 저녁에 뭐 먹지’라는 생각도 안나더라. 옴 쌀 달싹을 못하면서 30분도 못 있는 나를 보며 혹시 나 정말 자궁근종에 ADHD까지 있는 건 아닌지 합리적 의심도 들었다.

‘나는 어른이다. 참고 참고 또 참지’라고 자기 암시를 몇 번 반복하니 선생님이 오셨다. 역시나 기계를 통과하는 순간이 제일 무섭다. 무사히 검사를 마치고 주사기 바늘도 빼니 자유가 된 기분이었다. 옷을 갈아입으며 이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저녁은 뭐 먹을지 가는 길에 커피 한 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 정말 단순한 인간이구나 하고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다.


  다시 또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갑자기 차 안에서 피곤이 밀려왔다. 고작 30분 검사에 심지어 누워만 있었는데도 이렇게나 지치다니. 고작 왕복 한 시간 반에 나는 순전히 차를 타고만 있었는데도 온몸에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어떻게 서울까지 혼자서 항암치료를 받으러 다녔던 걸까. 항암치료는 이 것보다 몇 십배 아프고 힘들었을 텐데. 무엇보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리고 나는 그 마음을 왜 이제서야 알게 된 걸까. 엄마에 대한 연민과 아빠의 무심함에 화가 나던 나의 귀갓길. 혼인신고할 때는 생각이 안 나던 부모님을 이렇게 떠올리는 나도 정말 이기적인 인간이다. 미안함과 후회의 탄식이 밀려오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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