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훌륭한 근종입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렸다. 집에서 K병원까지는 약 30km 정도로 네비를 찍어보니 차로 넉넉잡아 한 시간 반 정도면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비가 와도 너무 왔다. 고속도로는 더 이상 고속도로가 아니었고 시속 20km로 달려도 거센 빗줄기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 검사도 하기 전에 죽는 거 아닌가 싶었다.
무사히 고속도로를 나오니 이제 우리를 맞아준 건 서울의 지독한 교통체증이었다. 겨우겨우 예약시간인 열 시 반에 병원 정문에 도착해 운전하는 남편을 홀로 두고 차에서 내려 미친 듯이 뛰었다. 그렇게 나는 대학병원으로 뛰어들어 간 것이다.
대학병원에 환자 입장으로는 처음 오니 동네 병원과는 다른 점이 참 많다는 걸 새삼 느꼈다. 환자등록부터 수납까지 초진의 경우 어떤 프로세스로 진행됐는지 간단히 정리해 보려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가 다니는 병원 특히 산부인과에 한정된 이야기인 점 그리고 편의를 위해 시간순으로 나열하는 점은 양해 바란다.
진료를 받기에 앞서 (병원 입성과 환자 등록 그리고 진료 접수)
아무래도 코로나 시국이기도 해서 그런지 병원에 발을 들이는 것도 쉽지 않다. 전날 온 사전 문진표(코로나 증상은 없는지, 혹시 접촉자는 아닌지 등을 확인)를 진료 당일에 작성하면 QR코드가 생성되는데 이 QR코드를 병원 입구에서 제시하면 된다. 그러나 사전 문진표는 예약된 환자에게만 연락이 오기 때문에 보호자의 경우 입구에 마련된 종이 문진표를 작성해서 들어와야 한다. 진료 당일 나의 외국인 남편은 내가 먼저 병원으로 들어간 후 주차를 해야 했기 때문에 홀로 이 절차를 다 해야 했다. 한국어가 서툰 남편은 혼자서 장례식장에 들어갔다가 친절하신 직원분 덕분에 무사히 본관으로 도착하여 문진표 작성 후 병원에 입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덤으로 보호자라는 단어도 알게 되었고.
입장은 정말 입장일 뿐 본격적인 절차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처음 방문한 환자를 위한 코너가 병원 입구 옆에 따로 설치가 되어있었다. 그곳에서 환자 등록 후 진료카드를 발급해 주고 혹시 다니던 병원에서 받은 데이터가 있을 경우 이때 제출하면 된다. 나의 경우 병원에서 데이터를 직접 전송해 주었기 때문에 진료카드만 발급받은 채 끝이 났다.
환자 등록이 완료된 시간이 이미 10시 40분을 지나고 있었고 미친 듯이 뛰어 산부인과로 향했다. 마스크를 쓰고 달리는 건 여간 힘든 일이었지만 무사히 산부인과 접수처에서 카드를 제출했고 드디어 접수가 끝났다. 원래 잘 안 뛰는 사람이라 체감 속도는 우사인 볼트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뛰나 안 뛰나 똑같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사람 많은 병원을 뛰어다닌 건 반성한다. 애들도 있었는데...
사전검사
접수가 끝나고 머지않아 혈압과 맥박 그리고 키, 몸무게를 먼저 잰다. 나는 진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단거리 달리기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린 채 혈압과 맥박을 쟀다. 혈압이 무려 130이 나왔다. 간호사 선생님께 원래 이렇게 안 나오는데 뛰어서 저런 숫자가 나왔다고 제발 다시 재게 해 달라고 눈으로 호소하였지만 선생님은 괜찮다고 하실 뿐. 그러나 포기를 모르고 계속 호소력 짙은 눈빛을 보냈으나 두 번의 검사는 없었다.
예진
의자에 앉아 조금 기다리고 있으면 예진을 받게 된다. 예진이라고 하니 벌써 초음파 검사를 다시 하나 싶었으나 사실은 어쩌다 내원하게 됐는지 현재 복용하는 약물은 없는지 기저질환은 없는지 등을 미리 (아마도) 레지던트가 간단히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 후 작성된 데이터를 진료하는 담당 선생님에게 보내는 듯하다. 익숙지 않은 시스템이라 당황스럽기도 했으나 곧 선생님이 이 많은 환자를 어떻게 일일이 확인하겠어라며 납득하였고 내가 정말 큰 병원에 왔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 것도 있다.(보통 이러지 않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평생 동네 의원 정도만 다녀본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의견이니 이해 바란다.)
진찰 1
이제는 기다림과의 싸움이다. 10시 반 예약은 사실 예진 예약이었을까?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정말 아픈 사람들이 많다. 산부인과만 해도 의자가 부족해 서있는 사람도 보였다.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은 걸까? 아니면 임신과 출산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인 걸까? 부디 그들이 많이 아프지 않기를. 슬픈 소식을 듣지 않기를 저절로 바라게 되었다. 그 기도는 사실 나를 위한 바람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오랜만에 멍한 시간을 보내고 책도 읽다가 이윽고 이름이 불렸다. 선생님은 인자하신 분이었고 전병원이 보내 준 데이터는 확인했으나 한 번 더 검사를 하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하자며 일단 제1차 진료는 마무리되었다.
초음파 검사
초음파 검사 전에 화장실을 다녀오고 검사실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불과 2주 전에 검사를 했는데도 검사실이 어두워서 그런지 더 긴장된다. 긴장 푸시라는 말에 더 긴장되는 건 나뿐인가. 지난번 검사와 동일하게 초음파 검사와 복부 검사를 진행하던 도중 검사하던 의사가 급히 담당 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이 오지 않으니 한 번 더 재촉을 하시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내 근종 정말 범상치 않은 녀석 인가 봐. 그나마 이게 근종이란 걸 알고 있었으니 다행이지만 만약 결과를 모르고 있었더라면 그 자리에서 온갖 상상을 다하고 그 끝은 최악의 상황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이 오셔서 나의 만만치 않은 근종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많이 힘드셨을 텐데 참으셨구나”
그 위로가 너무 다정해서 갑자기 눈물이 날 거 같았다. 근종 때문에 지금까지 크게 힘든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고생했다며 다독여주시는 선생님의 위로가 너무나 고마웠다. 그리고 이렇게 단지 이 병뿐만이 아니라 병으로 고생했던 과거의 나까지 토닥여주는 선생님이라면 왠지 믿고 맡길 수 있겠다 싶었다.
진찰 2
“아주 크게 잘 키우셨어요”
아기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근종 이야기다. 초음파 결과를 보면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다시 나누었다. 10cm 정도인 근종인데 굉장히 커서 장기를 다 압박하고 있으니 선생님은 아무래도 수술을 하는 게 나을듯싶다고 제안하였다. 원래 수술을 할 목적으로 병원에 왔으니 수술을 하겠다고는 했으나 10월에 중요한 시험이 있어 아무래도 시험을 끝내고 받고 싶다고 하였다. 웬일로 똑 부러지게 말하는 나 제법 똑순이예요.
선생님도 지금 사이즈로 수술을 할 경우 출혈이 굉장히 심할 텐데 지금 빈혈도 있을 거 같으니 3개월 동안 폐경 주사를 맞아 빈혈을 개선시키고 자궁근종을 좀 작게 만드는 건 어떠냐고 하셨다.
“폐경이요?” 불과 1분 전의 똑순이는 사라졌다.
“정확히는 일시적으로 폐경을 유도하는 주사예요. 그래서 그동안은 갱년기 증상이 나올 수 있고요. 조금 짜증 나고 열이 오를 수는 있으나 생리를 안 하게 되니 그동안 심했던 생리통에서도 당분간 해방될 거고 빈혈도 개선되니까 오히려 공부하실 때는 더 편할 수도 있어요.”
생리를 안 한다는 소리에 솔깃했다. 갱년기의 두려움을 모르는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맞을 기세였다.
“남편분께서도 20년 후에 아내분이 갱년기를 어떻게 보내실지 미리 예습해 보세요.”
남편은 당연히 알아듣지 못하고 눈만 똘망 똘망 뜨고 있었다. 선생님께 외국인인 걸 말하고 남편에게는 폐경 주사에 대해 통역을 해주니 둘 다 멋쩍은 웃음뿐. 그렇게 나의 진료도 통역도 무사히 끝났다.
수술 날짜, 다음 진료 날짜 정하기
수술 날짜를 조율해 주시는 담당 간호사 선생님이 따로 계시기 때문에 그 선생님과 날짜를 조율했다. 이 선생님도 나의 근종의 위엄에 놀라셨고... 날짜는 10월 27일로 정해졌다. 폐경 주사는 한번 맞으면 3개월 동안 유지되기 때문에 6월 말에 맞을 경우 다소 빠를 수 있다며 다음 진찰 일로 미뤄졌다. 이렇게 또 한 번 더 생리를 해야 하는 마음에 아쉬움의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이렇게 모든 일정이 끝나니 어느덧 시계는 한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수납
수납은 간단하다. 병원에 몇 군데 나 있는 수납처에 가서 수납을 하면 되는 것. 실비보험을 청구할 경우 보험회사에 내는 서류 또한 이곳에서 발급이 가능하다. 그나저나 대학병원은 역시 가격 스케일도 크구나. 돈 없으면 무서워서 아프지도 못하겠다는 읊조리며 그렇게 병원을 떠났다.
병원에서 두 시간 반 정도밖에 안 있었는데 온몸의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원기를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에 매운 갈비찜 집에 들어가 매운 김치 갈비찜을 시켰다. 기다리는 동안 남편은 정말 폐경 주사가 안전한지 12mg의 양을 한꺼번에 주사해도 되는 건지에 대해 걱정하는 눈치였다. 긍정보이답지 않은 걱정 어린 말투에 나는 설마 대학병원에서 한두 번 할까 괜찮겠지라며 다독였지만 공대남답게 약을 검색하고 괜찮다는 글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는 듯했다. 하지만 정말 부작용이 갱년기 증상뿐인지 다음번 진찰 때 꼭 다시 확인하라며 신신당부를 하던 그. 당신 당신이 조심해야 할 건 부작용이 아니야. 나의 널뛰듯 바뀌는 갱년기 증상이라고!
오랜만에 밥 한 끼를 다 먹었다. 밑반찬도 한 번 더 리필해서 먹었다. 밥 먹고 힘내야지. 힘내서 이 걱정과 근심을 다 털어버려야지. 나는 더 힘차게 밥을 씹어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