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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현달 Aug 18. 2021

네? 제가 자궁근종이라구요?

생각보다 심각하세요

“이제 결혼도 했으니까 한번 산부인과 검진 받아봐”

몇 달 전 아이를 낳은 친구와 전화를 하다가 문득 친구로부터 산부인과 검진 제안을 받았다.아이를 가질 생각은 없지만 일본에 있던 내내 검진을 받지 않았으니 한번 쯤 가봐도 될듯 싶었다.그다음날쯤에 인터넷에서 평판이 좋은 그리고 여성 선생님이 있는 산부인과를 찾아 그 길로 병원으로 찾아갔다. 평소엔 굉장히 굼뜨지만 마음만 먹으면 쇠뿔도 단김에 빼듯이 행동에 옮긴다. (사실 그날 따라 공부하기 싫어서 핑계로 갔다.)

그렇게 그냥 가벼운 마음에 찾아간 산부인과이었다.

“처음 방문하신 건가요?”

“네”

“혹시 국가검진으로 오신거세요? 올해는 홀수년생 분들이 대상이신데...”

간호사분이 친절히 안내해주셨지만 안타깝게도 난 짝수년생이었다.

“아니요. 그냥 검진차 왔습니다”

그 후 예진을 통해 나의 현재 상태와 기저질환에 대해 물으셨고 예진이 끝나고 본격적인 진찰에 들어갔다. 진료실에 들어가고 커텐 뒤에는 말로만 듣던 이른바 굴욕의자가 있었다. 지금 나도 굴욕의자라는 단어를 썼지만 굴욕의자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 단어를 입으로 뱉어내면서 더  굴욕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산부인과 의자라고만 칭하겠다.

그렇게 의자에 앉아 질초음파 검사를 먼저하고 더불어 복부초음파 검사까지 실시했다. 이 때 심상치않음을 느꼈어야 했는데...

“옷 갈아입고 잠시만 대기해주세요”

10분도 안돼서 검사는 끝났고 대기실에서 그 보다 더 긴 시간을 기다린후 다시 진료실로 들어갔다.

“먼저 말씀드릴게요. 생각보다 심각하세요. 자궁근종이 굉장히 커요”

심각하다길래 큰병인 줄 알고 긴장했어서 근종이란 말에 오히려 덤덤했다. 그리고 내 눈앞에 보이는 나의 자궁.

“지금 모니터에 보이는 게 환자님 자궁이거든요? 여기 안이 다 근종으로 차 있어요. 10센치 정도는 될거에요. 이 정도면 생리양도 많았고 빈혈도 심하셨을텐데 괜찮으셨나요?”

“제가 원래 고등학생 때부터 생리양은 많았거든요. 그래서 그런 줄 알았어요. 빈혈도 원래 좀 있어서...”

“하복부에 딱딱한 게 만져질 정도인데 모르셨나요?”

“아...” 뱃살 때문에 차마 몰랐다는 말은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 상태로는 아마 임신도 힘드실 거예요. 사실 악성으로 가는 병은 아니긴 하지만 지금 젊으시니 하루라도 빨리 수술하시길 권해드려요. 저희 병원에서는 수술을 안해서 안 해서 다른 큰 병원으로 가셔야 할 것 같아요. 저희가 병원을 안내해 드릴 수도 있고 아니면 환자분께서 알아보신 뒤 진료 의뢰서를 작성해 드릴 수도 있어요.”

 잠깐만 아랫배가 튀어나온게 사실 근종이었다고? 근데 근종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래도 악성으로 가는건 아니니 괜찮은건가. 그런데 악성은 아닌데 수술은 해야한다는게 무슨소리야 도대체. 단시간에 내 머릿속은 물음표 투성이 되었다. 이 때 갑작스럽게 너무 많은 정보량이 들어와 무섭고 두려울 틈도 없었다. 그저 수술이란 단어에 가슴이 답답해졌을뿐. 그래도 하나는 알았다. 내가 자력으로 병원을 알아보고 예약할 기력은 없다는 것을.

 “병원 안내 부탁드릴게요.” 답답함에 목소리가 떨리고 얼굴이 굳어졌다.

“환자님. 갑작스럽게 이런 이야기 들으셔서 많이 놀라셨을거에요. 괜찮아요 수술하면 되는 병이에요. 맹장염같은 거에요.”

 엄마의 투병생활을 오래 지켜본 나로선 장기간 병이라면 아주 치가 떨린다. 만약 이 병이 장기간 혹은 평생을 함께 해야하는 병이었다면 나 자신을 비롯해 주변을 괴롭게하는지 얼마나 힘들게 할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수술만 받으면 낫는 그리고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맹장염 정도라는 말에 크게 위안을 받았다. 그래 이건 별거 아닌 불행인거야.

병원 안내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K대학병원으로 안내해주셨는데 수납처리를하고 병원을 나서자 마자 K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워낙 인기가 많은 교수님인지 제일 빠른 진찰날짜가 2주 후나 뒤였다.

그렇게 남편 회사까지 걷기시작했다. 사실 걸을 생각은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20분정도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하염없이 걷고있었다.

그러다 친구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다.

“Y야 나 자궁근종이래 수술해야 하나 봐. 그래서 2주 후에 대학병원 가야해”

“헐 무슨일이야? 내가 같이 가줄까? 일정 조율하면 아마 같이 갈 수 있을거야.”

선뜻 같이 가준다는 친구의 말이 너무 고마웠다. 사실 남편은 한국말을 거의 못하는 외국인이다. 그런 그와 둘이  병원에가 내가 통역까지 해야한다는 사실이 막막했었다.

친구는 자신의 어머니가 사실 나와 같은 자궁근종이었는데 수술 후 완쾌하시고 건강하시다며 연신 나를 위로했다. 자기가 봤는데 별일 아니라고 괜찮아 질거라는 위로를 더불어서 말이다.

친구와의 전화를 끊고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 잔 하고있으니 남편이 회사를 마치고 찾아왔다.

“나 자궁근종이래” 자꾸 말하다 보니 정말 별일 아닌것처럼 느껴져 남편에게는 담담하게 말을 했다. “자궁근종이 뭐야 잠깐만 검색해볼게”

 남편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궁근종에 대해 알았고, 결혼 하자마자 보호자의 길로 들어섰다. 남편은 그 동안의 나의 생리통과 생리양에 대해 납득한듯했고 무엇보다 왜 아랫뱃살이 나왔는지에 대해 의문이 풀린듯하였다. 그는 평소와 같은 무덤덤한 얼굴로 크게 놀라지도 않고 크게 걱정하지도 않으며 언제나처럼 날 위로했다.

“10센치면 거의 내 주먹만 하잖아. 이게 뱃속에 있다니... 왜 아랫배만 나왔는지 이상했는데 이게 그거 때문이었네.”

세상에서 제일가는 긍정보이덕에 배가 좀 들어갈수 있다는 희망을 얻게되었고 그 긍정보이에게 아이를 가질 생각은 없지만 갖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 말했다.

“어쩔수 없지 뭐” 그에게 실망한 내색은 하나도 없없다.

여느 때와 같이 담담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밖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갔다. 그 날은 그저 병원에가서병을 안 것 빼고는여느때와똑같은날이었다.따뜻한물에샤워를하고머리를말린뒤책을읽다가뽀송뽀송한 수건을 깔고 그 위에 머리를 댔다.

‘별일 없을 거야 수술하면 괜찮을거야’ 하다가도 ‘자궁하나 더 달고 태어나서 이게 무슨 봉변이야’라는 생각이 뒤척일때마다 드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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