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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진 Aug 11. 2019

나를 표현하는 한 단어   

나는 OO이다.

자신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장, 단점은 무엇인지 등을 아는 것은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기반이 됩니다.


자신을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한 단어를 찾아보는 것이 있는데요, 지난 학기에 심리학 수업을 함께 한 학생들에게도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아보도록 권했습니다. 학생들은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얀 스펀지, 세심, 주자(走者), 서랍장, 돋을볕, 흉내 문어, 거울, 구름, 포스트잇, 빨간 팬, 가래떡, 허수아비, 독수리, 일기장, 카멜레온, 여름날 새벽 비 , 색연필, 타로카드, 들꽃, 이어폰, 달팽이, 맞춤형 인간, 흐르는 물, 호빵, 배스킨라빈스 31, 안개꽃, 스노글로브, 감정, 필름 카메라, 감동란, 게스트 하우스, 꼬마전구, 조화, 로봇, 시냇물, 햄스터, 조리, 불도저, 시냇물, 배우, 포도남, 등대, 흰 우유, 딸기 우유, 카멜레온, 꾼, 오불관언, 활발함, 강, 바다, 눈물 바구니, 소년, 이무기, 사색, 용수철, 꼼꼼, 달, 다리, 물음표, 사골국, 반죽, 늑대, 마트로시카, 거북이, 로딩 창, 귀염둥이


한 단어와, 그 단어가 선택된 이유 속에는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과 인생이 들어있습니다. 한 단어를 찾는 것에서 시작한 자신에 대한 이해는 점점 더 폭을 넓혀가고, 자기 수용과 성장의 기반이 됩니다.




얼마 전 책을 읽다가 자신을 한 단어로 표현한 글을 만났습니다. <우리 회의나 할까?>를 읽으며 처음 알고 좋아하게 된 카피라이터 김민철('남자 이름 같지만 엄연히 여자'라고 유머러스하게 자신을 소개하는..)의 두 번째 책 <모든 요일의 기록>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그녀는 자신을 '검은건반'이라고 표현합니다.   

  

나는 검은건반이었다. 마음 어딘가에 늘 어두운 부분이 있고, 그 부분을 밝히기 위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 아무리 해도 천성 저 바닥 밑까지 밝은 빛이 어리기엔 나는 좀 많이 어둡고 어느 정도는 불협화음과 같은 존재였다. 누군가가 도와줄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나도 나를 도울 수 없었다. 태어나길 검은건반으로 태어났는데, 별 다른 도리가 있겠는가. 그것이 피아노 선생님의 딸로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깨달음이었다. 나는 검은건반이었다.

...

다행이었다. 너무 늦지 않게 이런 깨달음을 얻은 것은. 몰라서 평생 헤매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일찍 깨닫고 그 사실을 직시하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내가 이유 없이 지치는 것이었다. 남들은 다 즐거울 수 있는 순간에도 혼자 억지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 괜히 사람들이 있는 곳은 피하는 것이었다. 혼자 있는 것이 마음 편한 것이었다. 밖이 불편한 것이었다. 어두운 책에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밝고 희망찬 책에는 왠지 모를 불신이 생기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세상은 결코 그렇게 따뜻하고 밝고 희망차지 않으니까. 햇빛은 피하게 되고, 흐린 날이 되어서야 기분이 좋은 것도 같은 이치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검은건반이니까. 아무리 해도 그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거니까.

지쳐버린 어느 날 그 깨달음을 홈페이지에 써뒀다. 써놓고 나니 왠지 유쾌해졌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냥 내가 그렇게 생겨 먹은 걸. 그리고 그냥 잊어버렸다. 엄마가 내 홈페이지에 수시로 들락거린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다음 날 평소처럼 출근하고 있는 내게 엄마가 문자를 보내왔다. 검은건반 딸에게 피아노 선생님인 엄마가 문자를 보내왔다.

'검은건반으로만 치는 쇼팽의 <흑건>은 너무 화려하고 멋진 곡이야. 파이팅!'

...

나는 답장을 보낸다.

'엄마, 나는 내가 검은건반이라서 좋아.' 

(<모든 요일의 기록>pp.65-68)


책 소개면에 활짝 웃고 있는 저자 사진을 보며 참 밝은 분인가보다... 하고 있었기에 검은건반은 다소 의외였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무겁고 어두운 면을 안아주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이의 그 미소가 나중에는 훨씬 더 멋져보였습니다.


<모든 요일의 기록> (김민철, 북라이프)




저 자신을 생각할 때 가장 크게 다가오는 한 단어는 "뚜벅이"입니다. 책 <나를 모르는 나에게>에도 소개한 바 있는데요, 조금 다듬어서 이곳에도 적어 보겠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뚜벅이’다.

일이든 공부든 성큼성큼 뛰면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한 발자국씩 조심히 내딛는 뚜벅이. 계단도 늘 하나씩 오르는 뚜벅이. ‘차근차근’, ‘꾸준히’가 삶의 모토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느려도 꼼꼼히 진행하는 게 좋다.

낯가림이 심해 사람과 친해지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일도 인간관계도 한 걸음씩이다. 이런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 마음이 급해 속도를 올리려 할 때면 나에게 말해준다. ‘너와 맞지 않아. 네가 잘할 수 있는 방식대로 해야지. 침착해.’


뚜벅이의 느린 속도가 어떤 이에게는 답답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억지로 무리하면 안 된다. 허둥대다 넘어진다. 사람마다 자신의 속도가 있다. 나는 내 속도를 따른다. 내 속도대로 가면서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맡은 역할을 잘 해내면 된다고 믿는다. 남들이 뛰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보면서 '좋겠다', '대단하다'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왜 남들처럼 빨리, 강하게 하지 못할까', '어쩌면 이렇게 답답할까' 하며 원망하기보다 나다운 방식으로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내 느린 속도로 끝까지 해내려 노력한다. 남들보다 조금 더 오래, 더 많이 하면 된다. 날씨가 더워도 뚜벅뚜벅, 추워도 뚜벅뚜벅.  

(<나를 모르는 나에게>, 하유진, 책세상)




자기 이해는 자기 수용(self-acceptance)으로 이어집니다. 

좋은 점도 있지만, 안 좋은 점도 있는 나, 이렇게 태어난 나, 이렇게 '생겨 먹은'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안아줄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자기 수용은 내가 가진 특성을 인정하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성장의 기반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나는 이런 내가 싫어!", "왜 이 모양일까!" 하며 원망하고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 내가 이렇지, 세상 속에서 이런 나로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에너지를 쏟게 해주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나는 내가 검은건반이라서 좋다'라는 카피라이터 김민철의 고백처럼 자신을 좋아할 수 있게 되면 가장 좋겠습니다.


자기 수용과 개인적 성장은 "심리적 안녕감(psychological wellbeing)"을 이루는 주요한 요인입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자기 성찰과 이해는 다중 지능(multiple intelligence)의 핵심입니다.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장,단점을 수용하는 사람은 타인에 대한 이해도 보다 넓고, 깊게 하며 잘 어울려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무엇인지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수많은 단어 중에서 그 단어를 선택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나를 어떤 단어로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왜 이 단어가 떠올랐을까?




"뚜벅이"인 저는 뚜벅뚜벅 느린 속도로 이 글을 썼습니다. 글 하나를 완성하고 올리는 데 며칠. 아무래도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지만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완성했다는 점을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이전보다 조금 더 나은 글을 썼기를, 다음에는 좀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지요. 인생은 나답게, 그렇게 나아가면 되는 것 아닐까요?


당신을 표현하는 한 단어는 무엇인가요?


이 글을 읽는 분들 모두 자신에게 다가가기를, 자신의 특성을 알아주고 안아줄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나를 모르는 나에게》(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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