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마음과 가슴에서 느끼는 감정이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인정받고 이해받고 싶어 한다. 주변 사람들이 기쁘고 슬픈 내 감정을 알아주었으면 싶다. '그래, 그럴만하지.' '얼마나 슬프니..' '정말 기쁘겠다!' 이렇게. 공감받고 싶은 욕구다. 누군가 함께해 주기를 원한다.
이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몇 가지 입력하고 버튼을 누르면 그대로 말해주는 인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예를 들어, “그 사람 너무 나쁘지 않아?” 이렇게 말하면 “나빠, 정말 나빠!” 이렇게 답해주는 것이다.
여기저기 누를 때마다 내가 원하는 말을 인형이 해주면 재밌지 않을까? 인형 입술을 톡톡 두드리면 “정말 잘했어, 최고야”, 코를 맹꽁 잡으면 “너 정말 화날 만하다!”, 배꼽을 꾹 누르면 “힘 내. 잘될 거야”, 등을 살살 쓰다듬으면 “속상하지. 울어도 괜찮아, 나를 꼭 안고 울어” 이런 말이 나오는 인형.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인형을 통해 듣는 것이다.
효과가 있을까? 없지는 않겠다. 그렇다고 크지도 않을 것 같다. 없는 것보다 나은 정도. 듣고 싶은 몇 마디 말을 듣는 게 전부일 듯싶다. 말로 잠시 위로를 받을 수는 있겠으나 '마음'을 나누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인형은, 그러니까 기계는 자기에게 입력된 말을 그대로 내어 주는 것이 전부다. '괜찮아, 힘내'라고 수백 번 같은 말을 해줄 수는 있겠지만 거기까지다. 위로해주고 힘이 돼주고 싶은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따뜻한 손길과 눈길을 전해주지는 못한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 앉아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만들어지는 푸근하고 끈끈한 감정을 기계는 모른다. 따뜻함, 훈훈함, 포근함, 측은함, 쓸쓸함. 울컥, 뭉클, 위로, 환희. 이런 감정은 ‘마음’과 ‘가슴’이라는 것이 있는 우리들, 심장이 뛰고 살아 숨 쉬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인간 고유의 감성이자 능력이다.
최근 사람들과의 관계를 멀리하면서 차라리 혼자가 편하다는 사람이 늘어간다. 인간관계가 가식적으로 느껴지면서 피곤하고 귀찮다는 것이다. 그만큼 많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고, 이해받지 못했다는 뜻일 수 있다. 내 마음을 공감받고 싶은 욕구가 자꾸 무시되고, 누군가 나를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기대가 매번 실망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아픈 경험이 쌓이면서 '인간관계가 피곤하다, 실망스럽다, 의미 없다, 차라리 혼자가 낫다'는 생각이 커져버린 것이다.
요즘 우리는 바쁘게 산다. 바쁘게 살면서 내 감정도 무시하고, 상대방의 감정도 무시한다. 감정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약한 태도라고, 힘들고 속상해도 괜찮다고 하는 게 강한 것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 반대다. 감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해하려는 것은 약한 것이 아니라 솔직하고 용감한 태도다. 내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의 마음도 존중하며 공감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생각해보자.
나는 내 마음에, 내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있는가.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가, 말이 아니라 말속에 담긴 마음을 듣고 이해하는가.
누군가의 아픔에 같이 아파하고, 누군가의 기쁜 일에 같이 기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모든 상황에서 모든 이에게 공감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우선 나에서 시작해보자. 내 감정 알아주기, 내 마음 이해하기.
그리고 누구든 타인 한 명의 말과 마음에 주의를 기울여보자. 덜 미운 사람, 그래도 마음을 써줄 수 있을 것 같은 한 사람에서 시작해보자.
'저 사람 입장은 이렇구나, 저 사람은 지금 마음이 이런 거구나. 그래서 저런 말과 행동을 하는 거구나.'
공감하면 그에 맞추어 반응도 제대로 할 수 있다. 잘 공감하면 판단이 선다. 달래주어야 하는지, 위로해주어야 하는지, 같이 화를 내주어야 하는지, 기다려주어야 하는지, 정신 차리라고 따끔하게 한 마디 해주어야 하는지 말이다. 공감은 어떤 감정이든 무조건 옳다고 편들어주고 강화시켜주는 것이 아니다. 이해해주고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해주되, 바로잡을 부분은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된다.
심리학과 경영학에서는 성공하려는 사람이 갖춰야 할 주 요인 중 하나로 공감능력을 꼽는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공감능력은 더 크게 강조될 것이다. 사람은 겉으로는 뭐라 말하든, 속으로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받고 마음을 주고받으며 같이 울고 웃으며 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혼자 외롭고 건조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눈과 입과 손으로 솔직한 대화를 나누며 공감받고 싶어 하는 내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 욕구는 우리 인간만이 마음을 담아 진실되게 채워줄 수 있다. 공감은 나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보다 인간적이고 풍성하게 해주는 요인이다. 나와 타인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감정은 무시해도 되는 대상이 아니다. 잘못하면 어느 순간 '펑' 터지거나, '뚝' 부러진다. 평소에 조금씩 이해하고 존중하고 도와주자. 내 감정이든, 타인의 감정이든 그렇게 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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