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긴장, 떨림, 불안을 꼽는 이들이 많다.
우리는 시험을 앞두고 긴장을 한다. 시험이 가까워질수록, 중요한 시험일수록,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는 바람이 강할수록 더 떨리고 불안하다. 그런데 연구에 따르면 긴장이나 불안 등의 부정 정서는 공부하는 데 필요한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의 활동을 방해한다. 몰입, 암기, 성적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불안이나 안 좋은 기억을 반복해서 떠올리는 것을 완화시키는 방법 중 하나로 표현적 글쓰기(expressive writing)가 있다. 과거에 겪은 큰 고통이나 상처, 부정 정서 등을 생각하고 느끼는 그대로 글로 쓰는 것이다.
그렇다면 표현적 글쓰기는 곧 시작될 시험 때문에 불안해하는 학생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표현적 글쓰기가 과거 사건에 대해 느끼는 부정정서뿐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사건(시험)에 대해 느끼는 걱정과 불안을 완화시키는 데도 힘을 발휘할까? 결과적으로 성적을 올리는 데 도움을 줄까?
이를 살핀 연구가 있다. 사이언스(SCIENCE)지에 실린 연구다.
연구자들은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수학 시험을 보게 했다(첫 번째 시험). 시험이 한 번 더 있었다. 첫 번째에 비해 압박감과 책임감을 더 강하게 느끼는 시험이었다. 연구자들은 두 번째 시험을 앞두고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한 그룹은 10분간 조용히 앉아있게 했고, 다른 한 그룹은 시험에 대해 가지고 있는 걱정이나 긴장 등의 생각과 감정을 가능한 솔직하게 써 볼 것을 권했다. 예) '나는 실수를 할까 봐 걱정이 된다.'
이 두 그룹이 치른 두 번째 시험 성적에 차이가 있었을까?
있었다.
두 번째 시험을 시작하기 전에 10분간 가만히 앉아 있었던 학생들은 첫 번째 시험 때보다 성적이 내려갔다. 부담감 등 부정 정서의 영향을 그대로 받은 것이다. 반면에 불안과 긴장 등 부정적인 생각과 느낌을 솔직하게 쓴 학생들의 성적은 오히려 올라갔다. 표현적 글쓰기가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연구자들은 여기서 의문을 가졌다. 표현적 글쓰기가 도움이 된 것일까? 아니면 그냥 '글쓰기'도 도움이 되는 것일까? 이를 알아보기 두번 째 실험을 진행했다. 이번에는 그룹을 셋으로 나누었다. 시험 전에 아무것도 안 한 그룹, 시험과 관계없는 글을 쓴 그룹, 시험과 관련한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쓴 표현적 글쓰기 그룹.
결과는 역시 표현적 글쓰기의 승리였다. 아무것도 안 한 그룹과 시험과 관계없는 글을 쓴 그룹의 두 번째 시험 성적은 첫 번째 시험보다 내려간 반면, 표현적 글쓰기를 한 그룹의 학생들은 성적이 올라갔다.
연구자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번에는 학생들을 불안을 느끼는 정도에 따라 나누어 보았다. 설문지를 사용해 불안감을 많이 느끼는 학생과 적게 느끼는 학생들을 파악하고 표현적 집단을 글쓰기의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폈다.
결론적으로 표현적 글쓰기는 불안감을 "많이" 느끼는 학생들에게 "큰" 효과를 발휘했다. 시험에 대해 불안감을 조금 느끼는 학생들에게는 표현적 글쓰기의 효과가 없었다. 쓴 학생과 안 쓴 학생들의 성적은 비슷했다. 반면에 불안감을 많이 느끼는 학생들이 표현적 글쓰기를 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성적 차이는 또렷했다. 많이 불안한데 글쓰기를 하지 않은 학생들보다 많이 불안하고 떨리는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써 본 학생들이 시험을 훨씬 더 잘 봤다. 고불안+표현적 글쓰기 그룹은 불안 정도가 낮은 학생들과 비슷한 점수를 올렸다. 감정을 솔직하게 쓴 것이 불안이 시험을 방해하는 효과를 낮춰 시험에 집중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보다 좋은 점수를 올릴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요약>
1) 시험 불안은 성적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불안하면 공부가 잘 안되고, 시험 시간에 집중도 잘 못한다. 결과적으로 시험을 잘 못 본다.
2) 이럴 때 글쓰기가 도움이 된다. 단, 그냥 글쓰기('가나다라마바사아'... 혹은 '오늘 날씨가 참 좋구나!'와 같이 아무 상관이 없는 글쓰기)가 아니라 시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느낌을 있는 그대로 적어보는 표현적 글쓰기가 도움이 된다. 부정적 생각이나 긴장감을 줄여준다.
3) 표현적 글쓰기는 불안감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된다.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자신에게 혹독하게 대하는 이들이 많다. 스스로 더 힘들게 만든다. 불안하지 않은 척하거나 할 수 있다고 억지로 외치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다.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표현적 글쓰기가 그 방법이다.
시험이나 면접을 잘 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사람은 긴장하지도 않고 걱정하지도 않는다. 편안하고 느긋하다. 당신이 무언가를 앞두고 불안하다는 건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잘하고 싶은데 남들보다 못할까 봐, 실수할까 봐 떨리고 걱정되는 것이다. 그러니 불안한 마음이 들면 '아, 내가 잘하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알아주자. 야단치고 재촉하는 대신에 잘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도와주자.
코앞에 닥친 시험이나 주요 과제 때문에 불안하다면 이렇게 해 보자.
첫째,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써본다.
둘째, 잘하고 싶어 하는 내 진심을 알아준다.
셋째, 천천히 깊게 숨 한 번 쉬고 최선을 다한다.
결과는 그다음에 나온다.
*참고문헌
Ramirez. G & Beilock, S. L. (2011). Writing about testing worries boosts exam performance in the classroom. Science, 311, 211-213.
*Home - 하유진심리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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