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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진 Feb 09. 2018

실패와 거절을 대하는 각자의 방식

Explanatory Style

우리는 살면서 종종 안 좋은 일을 겪습니다. 이런 말을 듣곤 하지요.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죄송합니다. 불합격입니다."

"당신의 제안서는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몇 년 간 열심히 준비한 시험에서 떨어지기도 합니다. 승진자 명단에 내 이름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거절과 실패로 낙담이 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어떤 말을 하나요?




Explanatory Style

사람들마다 안 좋은 일이나 상황을 설명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저마다 표현하는 방식(Explanatory Style)이 다른 것이지요. 심리학자들은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말하는가에 따라 크게 낙관주의자비관주의자로 구분합니다.  

 

면접에서 떨어진 상황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최종 결과를 앞두고 기대를 많이 한 회사로부터 문자를 받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불합격입니다.' 아.. 속이 많이 상합니다.

이런 경우 당신은 어떻게 말하나요?

혹 아래 보기 중 자주 쓰는 말이 있나요?

난 역시 안되는구나.
다른 회사에  지원해도 마찬가지겠지. 또 떨어질 거야.
앞으로 뭘 해도 안 될 거야. 더 노력해도 소용없어.
다 내가 무능한 탓이야.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하는 말입니다. 아래 보기 중 여러분이 자주 쓰는 말이 있나요?


사람들은 다 나를 싫어해.
이제 새로운 사람은 못 만날 거야. 누가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해 주겠어?
나에겐 이제 아무도 없어. 끝이야.
다 내가 잘못해서야. 나는 나쁜 사람이야.

만일 이 중에 자주 쓰는 말이 있다면 당신은... 비관주의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상황을 비관적으로 해석하는 말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안 좋은 일이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정적 사건 단 하나를 앞으로 다가올 모든 시간에 몽땅 적용하는 것이지요. 영속성(permanent) 혹은 안정성(stable)입니다. 이렇게 표현됩니다. 

'다른 회사에 지원해도 또 떨어질 거야. 안 될 거야', '난 이 슬픔을 극복하지 못할 거야', '이제 새로운 사람은 못 만나겠지.'  


두 번째는 안 좋은 사건 하나를 사건을 자신과 관련한 모든 분야, 모든 면에 적용시키는 것입니다. 보편성(global)입니다. '난 잘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뭘 해도 안 될 것 같아', '아무도 나를 좋아해 주지 않아.'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일 하나 잘 안 된 것을 놓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다 잘 안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던 사람 한 명이 떠났다고 해서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싫어한다고 하거나, 남자는(여자는) '다' 나쁘다고 보편화를 시켜버리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마지막으로는 잘못된 원인을 모두 다 내 탓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다 나 때문이야.' '내가 못나서 그래' '내가 부족해서 그래'. 내적(internal) 귀인입니다. 화살을 모두 나에게 돌리며 안 그래도 아픈 나를 더 아프게 찌릅니다.


정리해보겠습니다. 비관주의자들은 안 좋은 상황에 놓이면 그런 일이 앞으로도 계속 일어나고, 안 좋은 일의 영향이 인생 전체에 드리워질 것인데, 그렇게 된 것은 모두 내 탓이라고 몰아갑니다. 안타까운 점은 이들의 비관적인 생각과 말이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이번에는 정반대로 말합니다. 자신에게 생긴 좋은 일은 일시적(temporary)이며, 어쩌다 이번 한 경우뿐(specific)이고, 내 노력의 결과가 아닌 다른 외부 요인(external)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지원한 회사에 열심히 노력해 합격했습니다.  이때 비관주의자들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쩌다 한 번이야. 다음번에는 이렇게 잘 되기 어려울 거야.", "이번 회사만 겨우 붙은 거지, 다른 회사는 어림없을 거야. 입사해도 일을 잘하지 못할지도 몰라', "운이 좋았을 뿐이야. 다른 지원자들이 약했나 보다." 이리저리 부정적으로 말하며 좋은 일을 앞에 놓고 활짝 웃지도 못합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또 불안합니다.


낙관주의자들은 지금까지 살펴본 비관주의자들의 특징과 대로 합니다. 안 좋은 일은 일시적이며 이번 한 뿐이고 다음번에는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다른 회사에 지원하면 합격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노력을 인정하고 칭찬해줍니다. 자신의 가능성을 파악하지 못한 면접관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 회사가 사람 보는 눈이 없구먼! 후회할 거야~!" 그리고 앞으로 있을 좋은 일을 기대하며 열린 마음으로 나아갑니다. 실제로 노력도 더 열심히 합니다. 해결 가능성, 상황에 대한 통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주도성을 발휘하는 것이지요. 반면에 비관주의자들은 해결 가능성, 상황에 대한 통제 가능성을 스스로 좁히며 인생의 주도성을 내려놓습니다. 잘 된 것도 내 노력 때문이 아니라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적극적으로 열심히 움직이기보다 마음을 졸이며 또 다른 운을 기다립니다.    


이렇다 보니 비관론자는 낙관론자보다 우울과 불안이 높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걱정도 많고 스트레스도 심하니 당연한 결과겠지요. 삶에 대한 만족도도 낮습니다. 보험회사 영업사원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낙관론자들이 직장에 오래도록 남아 승진할 확률이 높고, 보험 판매율도 더 높았습니다. 다른 업종 영업 사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낙관론자들이 비관론자들보다 실적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왜일까요?

영업은 사람들이 거절하고 거부해도 또 새로운 곳을 찾아가고 전화를 해서 약속을 잡고 상품 설명을 하는 것이 주 업무입니다. 거절을 받는 것이 다반사이지요. 이때 비관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도 마찬가지일 거야. 다른 곳에 전화해도 소용없을 거야", "또 거절을 당하겠지", "나는 무능해." 이렇게 말하면 내 마음에서 용기가 꺾입니다. 상품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미 긴장을 한 채 스스로 거절을 예상합니다. 실제로 거절을 당하면 말합니다. '거봐, 안되잖아', '난 안된다니까.'   


낙관주의자들은 다릅니다. "이번 만남에서는 거절을 당했지만 다음에는 잘 될 수 있을 거야." "사람들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니 마음에 안 들었을 수도 있지. 우리 상품을 좋아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야."라고 합니다." 자신에게 무례한 사람에게는 "저 사람이 오늘 기분 나쁜 일이 있었나 보군. 안 됐네." 하면서 화살을 밖으로 돌립니다. 이렇게 말하면 다른 사람에게 한 번 더 다가갈 용기가 나고, 더 잘해볼 의욕이 생깁니다. 이런 태도와 행동이 모여 승진과 실적에 차이가 나는 것이지요.  


같은 사건을 놓고 해석하는 방법과 설명하는 방법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연구자들은 우리의 감정과 행동을 일으키는 요인은 객관적인 사건 자체가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주관적인 해석이라고 강조합니다.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내가 하는 말은 내가 듣습니다.
우리 뇌가 듣습니다.


속으로 하는 말이건, 겉으로 하는 말이건 모두 듣습니다. 그리고 우리 뇌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아, 이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해도 소용없겠구나', '다 이 사람이 잘못한 거구나' '이 사람은 못난이구나. 잘하는 게 없구나' '이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겠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작동합니다. 내 안에서 부정적인 사이클이 만들어지며 강해집니다. 반대로 긍정적인 말을 하면 나에게 좋은 사이클이 만들어지고 강화됩니다. 우리가 스스로 어떤 말을 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잘되고 싶다면 스스로에게 자꾸 좋은 말을 들려주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지요.


이런 설명에 대해 어떤 분은 질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내 마음이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긍정적으로 말을 할 수 있나요?
정말 안 될 것 같은데 그래도 긍정적으로 말해야 하나요?


네, 그래도 긍정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당신이 잘되고 '싶다면'. 잘하고 '싶다면' 말이지요.


마음이 그렇지 않더라도 우선 말은 좋은 방향으로 해보세요. '다음번에는 잘될 거야', '그래도 아직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어.' 이렇게요. 우리 뇌는 그 말을 믿습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진다."라는 말이 있지요. 과학적으로 입증된 연구 결과입니다. 기분이 좋지 않아도 자꾸 웃는 표정을 지으면 우리 뇌는 '아 이 사람이 기분이 좋은가 보다. 행복한가 보다. 나는 행복하다.'라고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행복해지고 싶으면 웃으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면 마음이 긍정적이 될 수 있도록 나에게 좋은 말을 자주 들려주어야 합니다.


정서 --> 말
말 --> 정서


정서로 인해 말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내가 하는 말에 따라 내 기분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잘되고 싶다면 내가 가진 에너지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말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하라고 강요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  

'그래도 나는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내가 앞으로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설 때까지 기다리겠다! 기분이 좋아지면, 확신이 서면 그때 긍정적으로 말하겠다!'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단, 인생에 '부정적 감정 --> 부정적 말, 행동 --> 스트레스, 불안  --> 부정적인 말, 행동...'이라는 부정적인 사이클이 강화되며 우울감이 심해진다면 이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은 알아야겠습니다. 안 그래도 힘든 데 자꾸 못한다고, 안 될 거라고 하면 위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신을 위해 좋은 말을 해주세요. '생각해봐. 이번은 좀 아쉽지만 지난번 그 일은 참 잘 되었잖아. 노력한 결과는 또 좋게 돌아올 거야', '오늘도 수고했어. 이만큼 된 것도 내가 열심히 노력한 덕분이야. 고마워, 다음에는 잘될 거야'하며 긍정적인 말을 해주기 바랍니다. 그런 시간 속에서 우리는 해결 가능성과 상황에 대한 통제 가능성을 키우고 주도성을 발휘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 부디 자신을 위한 현명한 선택, 지혜로운 말을 하면 좋겠습니다. 자신에게 좋은 말을 들려주기 바랍니다. 그럴 때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무기력과 우울감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잘되려고 노력하는 자신에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참고문헌>

* Henry, P. C. (2005). Life stress, Explanatory style, hopelessness, and occupational class. International Journal of Stress Management, 12, 241-256.

* Peterson, C. & Seligman, M. E. P. (1984). Causal explanations as a risk factor for deperession: Theory and Evidence. Psychological Review, 91, 347-374.

* Seligman, M. E. P. & Schulman P. (1986). Explanatory style as a predictor of productivity and quitting among life insurance sales agent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50, 83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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