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유진 Feb 26. 2018

자살을 다룬 소설 3권

죽음에 다가갔다가 삶으로 돌아온 사람들 이야기


1.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하다(하야마 아마리, 예담)

 -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주인공 아마리는 가족과 떨어진 곳에서 친구도 애인도 없이 파견사원으로 일하는 외톨이다.

스물아홉 생일을 맞은 날, 여전히 혼자다.

괜찮다고 위로하며 동네 편의점에서 사 온 케이크로 혼자 파티를 한다.


"축하해!"

혼자인 건 괜찮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혼자였으니까.

그래, 괜찮다. (18쪽)


눈을 지그시 감고 케이크 위에 얹힌 딸기를 먹으려는 순간, 딸기가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안 돼!"


아마리는 머리카락이 붙고 먼지 범벅이 된 딸기를 얼른 주워 싱크대로 달려간다.

'괜찮아, 괜찮아. 씻으면 돼.'


수도꼭지를 트는 순간 정신이 든다.

'뭐 하는 거니, 너...' (20쪽)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멈추지 않는다. 터져버렸다.

'대체 난 뭘 위해 살고 있는 걸까?'

'나란 인간, 과연 살 가치가 있는 걸까?' (39쪽)


초점 잃은 시선으로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화면 속에는 멋진 도시 라스베이거스가 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인다.

'저 사람들... 참 좋겠다.'


아마리는 결심한다.   

"라스베이거스로 가자. 거기서 최고로 멋진 순간을 맛본 후 죽는 거야. 1년 뒤 나는 죽을 것이다."




2.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1997년 11월 21일, 베로니카는 드디어 목숨을 끊을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9쪽)


베로니카는 대학을 훌륭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도서관 사서직을 하며 외롭게 살고 있다. 신이 있다면 이 세상을 떠나기를 갈망한 피조물들에게 관대함을 보여야 하고, 인간에게 이 땅을 거쳐가게 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원망할 만큼 하루하루가 힘들기만 하다. 매일매일이 뻔하고 의미가 없다. 베로니카에게는 죽어야 하는, 더 이상은 살 필요가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죽으려는 의지에 대해 다른 사람의 이해를 구하지도 않는다.

모두가 무슨 짓을 해서건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세상에서, 죽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는가?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각자가 자기 몫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며, 자기 삶에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을 뿐이다. (27-28쪽)


생을 끝내기로 결심한 베로니카는 시간을 들여 수면제를 모은다.

11월 21일, 마침내 가득 모은 수면제를 삼킨다.

생각한다. 이제 곧 끝나리라. 다 잊을 수 있으리라.


24살인 베로니카는 모든 것이 죽음과 함께 끝난다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가 자살을 선택한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마침내, 자유. 영원히, 망각.(19쪽)


시간이 지난 후, 베로니카는 정신병원 빌레트에서 깨어난다.

죽지 못한 것이다.  자살 시도가 실패로 끝났다.


의사는 그녀에게 다량의 수면제 복용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발작이 올 것이고 그로 인해 곧 죽게 될 것이라고 알려준다. 죽기를 갈망했던 베로니카의 삶이 정말로 얼마 남지 않게 된 것이다. 닷새, 아니면 길어야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곧 죽는다.


베로니카는 그곳에서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사람, 자발적으로 갇혀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관찰한다. 그중 일부와는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생각한다.    

자신에 대해, 관계에 대해, 삶에 대해.     


“...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이 자연의 질서에 역행하려는 걸까?”

“내가 운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에요. 난 내가 혐오하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수면제를 먹었죠. 하지만 내 안에 내가 사랑할 수도 있는 다른 베로니카가 존재한다는 걸 모르고 있었어요.”

베로니카가 말했다.

“도대체 뭐가 자신을 혐오하게 만들지?”

“아마 비겁함이겠죠. 아니면 잘못하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영원한 두려움이거나. ..." (97쪽)


베로니카는 고민한다. 생애 남은 시간 일주일을 어떻게 채워갈 것인가.  




3.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닉 혼비, 문학사상)



한 해의 마지막 날. 12월 31일 밤.

시내 높은 빌딩 옥상에 네 명의 사람이 모인다.


10대 소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스캔들로 유명 토크쇼 진행자에서 돈과 명예를 모두 잃은 범죄자로 전락해 버린 마틴, 젊은 날 단 한 번 사랑으로 얻은 중증 장애아 아들을 홀로 보살피며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하루하루 괴롭게 살아가는 중년 여성 모린, 데이트한 상대에게 외면받고 언니는 행방불명 중인 상처 많은 문제 소녀 제스, 목숨 같은 밴드와 여자 친구를 잃고 피자 배달을 하며 절망에 빠져 있던 락커 제이제이.


이들은 왜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늦은 밤에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을까?


"죽으려고" 그랬다.


이들은 자살 희망자들이었다. 삶이 너무나 괴로운 사람들. 죽는 것 밖에는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


4명의 자살 희망자들은 추운 옥상에 앉아 대화를 나눈다.

차례대로 살아온 사연과 죽으려고 하는 절박한 이유를 얘기한다.

서로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며 조금 긴장이 풀어진다.

"이제 어쩌죠?" 제스가 말했다.

"피자를 먹어야지."

"그런 다음에는?"

"일단 삼십 분 동안은 먹자고요. 알았죠? 그런 다음에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죠."(47쪽)


얘기를 나누던 중 한 사람이 의견을 내놓는다. '조금 더 살아보면 어떨까'. 꼭 오늘 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살다 보면 기분이 엉망이 되는 날은 많고도 많다.

"그다음은 언제지?... 그다음으로 많이 죽는 날 말이에요."

"밸런타인데이일 거야." 마틴이 말했다.

"그래요? 6주 뒤?" 제스가 말했다. "그럼 6주 더 살아보죠. 그거 어때요? 밸런타인데이에도 모두 끔찍한 기분이 될 거라고요."

6주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았다. 너무 긴 것 같지도 않았다. (131쪽)


"6주만 지나면 더 버티지 않을 거예요." 모린이 말했다.

"아무도 그러라고 하지 않을 거요." 마틴이 말했다.

"처음부터 그 점을 분명히 해둔다면야." 모린이 말했다.

"기억해둡시다." 마틴이 말했다.

"좋았어요. 그럼 합의한 거예요." 제스가 말했다.(135)


6주가 지났다. 밸런타인데이 밤 여덟 시에 모두 모였다. 이들은 다시 이야기를 나눈다.


누군가 '자살의 위기 기간'에 대해 언급한다.

"어젯밤, 잡지에서 읽은 이야기를 해주려고 했어. 자살에 대한 거였는데, 기억하나? 어쨌든 그 사람이 위기 기간은 90일이라고 했어." 

"어떤 사람인데요?" 제이제이가 물었다.

"자살 학자."

"그것도 직업이에요?"

"뭐든 직업이 될 수 있지."

"우린 90일 가운데 46일이 지났어." (286쪽)


그래? 그럼 조금만 더 살아볼까? 위기 기간을 체험해보는 것도 좋지 않겠어? 위기 기간이 끝나면 어떻게 되는지 한 번 볼까?

다시 합의를 본다. 처음 죽기로 결심한 날에서 90일만 더 살아보기로. 오늘부터 44일만 더 살아보기로.


"뭘 해야 되겠나?"
"글쎄요. 그저 6주 동안 짜증을 부리고 우울해하기만 한다면 스스로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요."


90일 후 이들은 다시 모인다. 그리고...

 



소설 속 주인공만 힘든 건 아니다. 우리도 그렇다.

사는 게 참 힘들다. 죽음을 생각할 만큼,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만큼 힘든 때가 있다. 하루 이틀에 끝나지 않고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 안 겪어본 사람은 이 고통을 모른다. 절대 알 수 없다.


대학병원 정신과 병동에서 몇 년간 일한 경험이 있었던 이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자살을 시도하고 응급처치 후 의식을 되찾은 사람들은 대분분 고맙다고 한다는 것이다. 왜 살려냈냐고 화를 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그랬어요.
살려줘서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이들은 자살을 시도하던 순간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자살을 시도하고 의식을 잃는 순간 후회하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고. 아, 이러지 말 걸 하는 생각이 들었고, 몹시 무서웠다고.   


이와 관련한 내용이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도 나온다.


"알약들을 삼킨 이래 처음으로 베로니카는 두려움을, 미지에 대한 끔찍한 공포를 느꼈다."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장미를 응시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했고 자신이 본 것을 사랑했다. 그녀는 너무 조급하게 행동한 것을 후회했다."


소설에서 베로니카를 치료한 의사인 이고르 박사의 논문 제목 '죽음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더 치열하게 살도록 자극한다.'처럼, 자살 시도 후 살아난 사람들은 회복하면 다시 기운을 내서 잘살아 보겠다는 의지를 전한다고 한다.




나 역시 한동안 죽음을 마음 가운데에 두고 살던 때가 있었다. 삶은 말할 수 없이 힘들었다. 노력해도 힘든 일은 계속 생겼다.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상황이 겨우 회복될 즈음, 또 다른 시련이 왔다. 더 크고 더 힘들었다.


감당할 수 없는 큰 상실감. 세상에 대한, 사람에 대한 의문.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지? 어떻게 하라는 거지?  

눈물이 말라 나오지 않았다. 삶의 의미를 잃었다. '사는 게 이런 거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신은 견딜 수 있는 시련만 준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견딜 수 있어서가 아니라, 견뎌야해서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하루하루 땅 속 깊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심각한 우울증 속에 빠져 있었다. 허우적 대지도 못했다. 그럴 기운도 의지도 없었다.


죽음을 생각했다. 자살 시도는 하지 않았지만, 아니 어깨에 지워져 있는 또 다른 짐 때문에 차마 하지 못했지만.. 죽음에 가까운 날들을 살고 있었다.

  

몇 년 동안의 과정은 생략하려 한다.   

나는 지금 살아 있다.  

몇 년간 몰아닥친 지옥 같은 시기를 잘 넘겼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돌아보니 별거 아니었던 시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몹시 힘들었고, 완전히 절망했고, 처절하게 우울했다.

하지만 버텨내길 잘했다. 잘했다고 생각한다.


혹 누군가 이 글을 읽는 이 중 자살을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힘든 거 안다고. 당신이 겪고 있는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라고. 정말 힘든 일이라고. 오죽하면 죽고 싶겠느냐고. 얼마나 힘들면 죽음을 생각하겠느냐고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말해주고 싶다.

그래도 죽지는 말자고.


언젠가는 죽는데 그 날을 자진해서 앞당길 필요는 없다고. 이 시간도 지나간다고. 지나고 보면 그래도 살만한 날이 온다고. 이겨내길 잘했지 하는 생각이 들 거라고. 나도 그랬다고, 내가 그랬다고 말이다.


문장력이 짧아 제대로 위로하지 못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다.

혹 자살을 생각할 만큼 힘든 상황에 있는 이가 있다면 위에 추천한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삶에 지쳐 자살을 시도했거나, 조만간 죽으려고 굳게 결심한 사람들이었다. 첫 번째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고, 두 번째, 세 번째 소설은 작가의 삶이 스며들어 있는 책이다. 그래서 단순히 인생이 아름다우니 용기를 내라는 허공에 뜬 희망의 말을 늘어놓지 않는다.


결론을 말하면 책의 주인공들은 죽음 대신 삶을 선택한다. 살아보기로 한다.

이유는 비슷하다.

어쩌면 우리 삶의 모습과 살아야 하는 이유는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날이 추우면 마음이 더 춥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왜 이렇게 추운가, 이 추위는 대체 언제쯤 끝나는가 싶었다.


그런데 봄이 오고 있다. 견디다 보니 추운 겨울이 지나고 있다. 아마 날이 좀 풀리면 말할 것이다. 지난겨울은 정말 추웠다고.  


힘든 시기를 견뎌내다보면 좀 나아지는 시기가 온다. 그때 당신은 말할 것이다.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그래도 잘 견뎌냈다고. 견뎌내길 잘했다고.

내가 그랬고, 당신도 그럴 것이다.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에서 죽으려고 하는 모린의 진심은 이랬다.   

"마틴이 정말 죽고 싶은 거냐고 물었을 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대답은, 당연히 그래요, 물론 죽고 싶죠. 바보 같으니. 그래서 그 많은 계단을 올라왔고, 그래서 아이, 아니, 알아듣지도 못하는 다 큰 어른한테 내가 꾸며낸 신년 이브 파티 이야기를 해준 거예요, 라고 말해주는 거였다. 하지만 또 다른 대답도 있었다. 그 다른 대답은, 아뇨, 물론 죽고 싶지 않아요. 바보 같으니. 제발 나를 말려줘요. 제발 나를 도와줘요. 나를 살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나사 하나가 빠진 사람으로 ‘나는 이보다는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줘요, 이다.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조금만. 왜냐하면 내가 거기 올라간 까닭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말려준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만일 당신이 모처럼 외롭고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라면 이 글이 위안이 되면 좋겠다. 당신의 삶을 붙들어 보면 좋겠다. 당신은 지금보다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는 사람이란 걸, 그렇게 될 거라는 걸 한 번 믿어보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