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ie Holiday
엘라 피츠제랄드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청량하고 시원하다. 음색이 맑고 깨끗하며, 가벼우면서도 즐겁고 긍정적인 무드를 자아내는 보컬 스타일에 아주 잘 어울린다. 음정, 박자 감각이 탁월해 완벽한 기교와 정확성의 대명사로 기술적으로 가장 완벽한 재즈 보컬리스트라는 평을 받는다. 또한 스캣(scat)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즉흥적인 보컬 연주의 정점을 보여준다.
사라 본은 넓은 음역대와 풍부한 성량을 선천적으로 타고났다. 3옥타브에 걸친 음역대로 자유로운 스캣(scat), 즉흥적인 화성 해석 능력을 갖췄다. 또한 재즈 보컬과 오페라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한 웅장한 표현이 특징으로, 보컬 자체가 하나의 관현악기(오케스트라)처럼 들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클래식 성악에 가까운 풍부하고 드라마틱한 음색과 재즈의 즉흥성을 결합해 누구도 따라 하기 어려운 스타일을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빌리 홀리데이는 엘라만큼 테크닉이 뛰어나지도 않으며 사라와 같이 폭넓은 성량과 음역대를 선천적으로 타고나지도 않았다. 다만 탁월한 감정 전달력으로 단순히 "노래"가 아니라 한 편의 이야기처럼 노래를 들려준다. 감정의 진실성과 호소력이 뛰어나, 같은 곡도 빌리의 목소리로 들으면 전혀 다른 깊이가 느껴진다. 가사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자기 경험과 고통을 담아 표현하는 방식이 남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그녀의 특징이다.
기타리스트였던 아버지(Clarence Holiday)는 훗날 플레처 헨더슨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할 정도로 실력은 있었으나 빌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떠났고, 13살 미혼모 엄마와 빌리의 앞날은 그 누구보다 컴컴했다. 극심한 가난 때문에 빌리의 엄마는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고, 여러 차례 다른 사람 집에 빌리를 맡기거나 친척에게 보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빌리는 어린 시절부터 버려짐과 불안정을 경험했고 정서적으로도 도저히 올바를 수가 없었다. 11세 무렵, 아직 많이 어린 빌리는 생계를 위해 백인 가정에서 가정부로 일했다. 이때 고용주의 이웃 남성이 그녀를 성폭행하려 했고, 사건은 경찰에 알려졌지만 흑인 여성 아동인 빌리가 오히려 “문란하다”는 이유로 유치장에 보내지는 부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빌리의 엄마는 식당·세탁소·가정부 등 여러 일을 했지만, 안정된 직업을 얻기 어려웠고 결국 매춘부로 일하기 시작해 할렘과 볼티모어의 빈민가를 떠돌았다. 빌리는 엄마가 매춘업소에서 일하는 모습을 목격하며 자랐고 14세 무렵(1929년) 어머니와 같은 집에서 매춘부로 내몰리게 된다. 빌리의 표현에 따르면, 이 선택은 단순히 "엄마와 함께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지 자발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래도 신이 인간의 양심이란 것을 조금은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이 매춘 시절, 업소 손님들이 틀어주는 루이 암스트롱, 베시 스미스 등의 레코드를 들으며 따라 부른 것이 그녀의 음악적 출발점이 되었다. 업소 손님들은 “이 꼬마, 노래 좀 한다”라고 흥미를 보였던 것이 첫 계기로 빌리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이때부터 “노래가 내 삶을 구할 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할렘 133번가 Covan's, 이 클럽에서 빌리는 처음 노래를 부르게 된다. 당시 정식 오디션을 본 것은 아니고, 클럽 주인에게 그냥 한번 노래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빌리는 Bessie Smith의 「Travelin’ All Alone」, Louie Armstrong의 곡을 불렀다고 기억했다. 손님들과 밴드가 크게 호응했고, 그날 이후 클럽 무대에 서게 되고, 누구보다 큰 명성을 얻게 된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상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인디애나주 마리언에서 백인 남성이 총에 맞고 사망했으며 그의 여자친구를 성폭행한 혐의로 3명의 흑인 10대가 체포된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백인 군중 약 10,000명이 감옥으로 몰려와 흑인 청년들을 강제로 감옥에서 끌어내어 나무에 교수형을 처하게 된다. 흑인의 시체가 나무에 매달려 있고, 아래에서는 백인 군중이 웃으며 구경하는 장면이 마침 사진에 담겨 기록으로 남게 된다. 하지만 총에 맞은 백인과 3명의 흑인 청년이 같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총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히 누가 살인을 저질렀는지는 알 수 없었으며 성폭행을 주장한 피해 여성은 명확한 증거도 없었으며, 진술은 일관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빌리는 나무에 매달린 흑인의 시신을 은유한 “Strange Fruit”이란 곡을 고발장이자 애도문으로 부르게 된다. 이 노래는 재즈를 넘어 예술의 사회적 책임과 저항성을 보여주었고, 이후의 민권운동, 프로테스트 송(예: 밥 딜런, 니나 시몬, 샘 쿡, 마빈 게이) 등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다시 말해 Strange Fruit는 음악으로 쓴 인권 선언문의 시초이다. 문제는 이 곡으로 인해 빌리는 FBI와 정부의 탄압이 시작되는 계기가 된다. FBI 마약국장 해리 앤슬링어라는 사람은 “Strange Fruit은 연방에 반하는 곡이다”라는 주장 하에 빌리의 삶을 철저히 감시하고 탄압하게 된다.
“Strange Fruit”를 부를 당시 빌리는 이미 재즈계에 유명 뮤지션이었다. 이 곡으로 단순히 유명 여가수에서 예술적·정치적 상징으로 격상하게 된 계기가 되었지만 FBI 감시에 수감 생활을 반복하게 된다. 마약이 문제였고 아쉬웠다. 상상하기 힘든 어린 시절의 고난을 벗어난 듯싶었지만 주변에서 가만히 놓아 주지를 않았다. 그녀의 첫 번째 남편은 전직 마약밀매 업자로 빌리에게 헤로인을 소개한 첫 인물이었다. 둘은 자주 싸웠고, 가정 폭력에 시달리기도 했으며 자서전에서 “내가 사랑했던 유일한 남자이자 나를 망가뜨린 장본인”이라고 고백했다. 이후 조 가이(Joe Guy)라는 트럼펫터와 동거했지만 헤로인 중독자 커플로 동반 체포되기도 했고, 다음 동거인은 수입 관리를 목적으로 경제적 착취를 했었다. 마지막 남편 또한 재정 관리를 핑계로 감금과 폭행을 일삼았고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유산을 요구하며 논란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수년간의 마약 중독(특히 헤로인)과 알코올 남용, 그리고 간경화와 심장질환으로 그녀의 몸은 망가져 있었고, 1959년 5월 공연 도중 쓰러져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입원 후 소량의 마약이 발견되어 병원 침대 위에서 경찰에 의해 체포되고 수갑을 찬 채 병원 침대에 묶여 경찰의 감시를 받았다. 치료를 받았어야 했는데 그대로 사망했다.
Everything Happens To Me가 담겨있는 Stay With Me 음반은 1955년 2월 14일, 뉴욕에서 녹음해 1958년 I'm a Fool to Want You가 담겨있는 Lady in Satin과 같은 해에 발매되었다. 당시 빌리의 목소리는 더욱 거칠어지고 있었으며 신체의 기능도 점점 상실해가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평론가들은 두 음반 모두 최고에 가까운 평점을 주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그녀를 위한 동정이 아니었다. 실질적 그녀의 마지막 음반 Last Recording의 평가는 최악에 가깝다.
목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져 윤기도 없고 생기도 많이 잃어버렸다. 간혹 음역은 낮아지고, 고음 처리에 불안정한 떨림이 자주 들리기도 한다. 음정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끝의 처리가 불안정하지만 이 곡을 이렇게 분석하면서 듣지 말기를 바란다. 빌리는 멜로디를 정확히 따라가기보다는 마치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내듯이 ‘늘였다 줄였다’ 하는 듯하다. 시적이고 독백 같은 분위기를 자기 연민, 체념, 유머를 포함해 모든 상실과 배신, 고통을 무표정하게 노래하며, 듣는 사람에게 슬픔의 깊이를 강요하지 않고 전달하고 있다.
Louis Armstrong은 On The Sunny Side Of The Street에서 What a Wonderful World를 노래 부르며 삶을 찬양했지만 Billie Holiday에게 삶은 Everything Happens To Me, 그렇게 인간으로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감당하기 힘든, 일어나지 말아야 할 모든 일들이 그녀에게 일어났다.
“너무 많은 고통을 겪으면, 좋은 일마저도 상처로 느껴질 때가 있어요.”
— Billie Holi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