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이 곡부터 들어야 한다.

Rahsaan Roland Kirk

by 달빛소리


Rahsaan Roland Kirk는 실력에 비해 인지도가 아주 낮은 연주자이다. 다행히 그의 연주 평가는 좋으나 자료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출판 서적은 물론 잡지에도 거의 언급이 없었고 인터넷이 발달하고 나서야 자료 접근이 그나마 수월해졌다. 그래도 그의 삶과 연주 경력에 비해 자료는 많이 부족하고 특히 낮은 인지도에 대한 이유는 이해와 공감이 전혀 되지 않는다.


첫째로, “다악기 쇼맨” 이미지의 역효과로 Kirk는 테너 색소폰, 플루트, 맨조(phone), 스트리치드 사파리 호른 등 기묘한 악기를 동시에 불어대는 “3관 동시 연주” 퍼포먼스로 유명했다. 대중은 “재즈 광대”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고, 비평가들도 “재미있지만 진지한 음악적 탐구냐?”라는 의문을 제기와 함께 쇼맨십이 음악성의 깊이를 가리는 역효과를 낳았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기교적 과시가 아니라 블루스적 감수성과 흑인 전통의 타성적 표현을 시도한 것이었다는 호평도 많았다. 둘째로, 시대적 경쟁자들의 압도적 존재감을 이유로 들고 있고 Coltrane, Rollins, Dolphy, Ornette, Miles Davis 등 재즈 혁신가들이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라고 하는데, 이들과의 비교를 차치하고라도 이외의 다른 뮤지션보다 Kirk가 연주 능력이 모자라다고 볼 수 없는데 그들보다 비교하면 인지도가 많이 낮다. 셋째로, 신체적 장애의 사회적 인식에 대한 이유도 전혀 공감이 안되는데, Ray Charles, Lennie Tristano, Art Tatum, George Shearing 등 Kirk와 같은 시각장애 연주자들도 많았고 이들은 뛰어난 연주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었다. 넷째로, 정치적·사회적 목소리의 이유도 Roland Kirk 이외에도 인종차별과 흑인인권 보호에 많은 연주자들이 참여했었다. 다섯째로, 레이블 및 홍보력의 한계의 이유로 Blue Note, Prestige, Impulse! 같은 재즈 전문 레이블의 홍보 네트워크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했다고 하는데 Mercury가 전문 재즈 레이블은 아니어도 음반을 몇 장 발매했으며 특히 Verve에서도 음반을 꾸준히 발매했고 Atlantic 등에서도 발매했었다.


여기서 약간 의심스러운 부분은 Roland Kirk가 정신질환은 아니어도 성격상 문제가 많아 인간관계에 의한 활동 제약의 의심을 가져보지만 다른 연주자들과의 협연과 동료 뮤지션의 인터뷰 등을 종합해 보면 그런 문제는 거의 없었다.


John Coltrane은 Kirk의 다관 연주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하며 동료들에게 “그건 gimmick(눈속임)이 아니라 진짜 음악이다”라고 Kirk를 옹호했다고 하며 Kirk도 오래전부터 Coltrane을 음악적 영웅으로 여기고 있었던 터라 개인적으로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또한 까다롭기로 알려진 Charles Mingus와도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1961년 앨범 《Oh Yeah》를 비롯한 여러 녹음에서 활약했다. 두 사람 모두 재즈의 전통을 깊이 존중하면서도 기존의 틀을 깨는 실험적인 음악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분모가 있었으며 밍거스와 커크는 종종 무대 위에서 대화를 나누거나 서로의 연주에 즉흥적으로 응수하는 등 독특한 케미스트리를 보여주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Jimi Hendrix 역시 Roland Kirk를 '마스터 뮤지션'이라고 부르며 큰 존경심을 표했다. 헨드릭스는 커크의 음악이 틀에 박힌 '올드 타임 히트'가 아닌, 자유로운 형식의 재즈라는 점에 끌렸다고 했으며 1969년 런던의 재즈 클럽에서 두 사람은 즉흥 연주를 함께 했다고 전해지는데, Hendrix는 이 경험에 대해 "Kirk가 자신의 음악에 방해가 될까 봐 걱정했지만, 두 사람의 음악은 마치 손에 장갑처럼 딱 들어맞았다"라고 언급했다.

Frank Zappa도 Kirk의 열렬한 팬이었고, 그의 음악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Zappa는 자신의 1966년 데뷔 앨범 《Freak Out!》의 라이너 노트에 Kirk를 존경하는 음악가 중 한 명으로 명시했으며, 1969년 보스턴에서 열린 재즈 페스티벌에서 두 사람은 즉흥 연주를 함께 했는데 Zappa는 이 경험을 매우 인상 깊게 회상했다. Zappa는 Kirk가 여러 악기를 동시에 연주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며, 그의 즉흥성에 깊은 경의를 표하기까지 했다.

Jethro Tull의 프런트맨이자 플루트 연주자인 Ian Anderson은 롤랜드 커크의 플루트 연주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Anderson은 Kirk의 혁신적인 플루트 연주 스타일, 특히 노래를 부르며 플루트를 연주하거나 다양한 소리를 내는 기법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Jethro Tull의 대표곡 중 하나인 "Serenade to a Cuckoo"는 Kirk의 곡을 커버한 것으로, Anderson이 Kirk에게 보내는 헌사라고 할 수 있다. Anderson은 Kirk의 음악이 플루트라는 악기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물론 간혹 평론가·프로듀서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자주자주 충돌하기도 했다. 어떤 평론가가 그를 “circus act(서커스 공연)”이라고 표현하자, Kirk는 인터뷰에서 “내가 하는 건 흑인들의 전통을 보여주는 거지, 장난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반박하기도 했으며, 레이블 관계자들과도 “마케팅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미묘한 거리를 가지기도 했고, 녹음 현장에서는 자기 음악을 최대한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어서 프로듀서들과 충돌도 잦았다고 전해지는데 평론가나 기자와의 관계가 항상 좋을 수만은 없으며 음악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마찰은 항상 존재한다.


그것보다는 Kirk는 젊은 뮤지션들에게 아낌없이 조언을 주는 타입이었으며, 한 후배 색소포니스트는 “Rahsaan은 무대 밖에서는 매우 다정했고, 내가 가진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었다”라고 회고했다. 무대에서 보이는 과격한 이미지와 달리 가족과 제자들에게도 애정이 깊었고 일상에서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었다는 증언이 많이 있다.


이런 여러 정황을 확인해 봤을 때 롤랜드 커크의 능력에 비한 낮은 인지도는 많이 아쉬울 따름이다.


곡은 Kirk가 헤드 부분의 첫 연주를 플루트로 시작하고, Horace Parlan(호레이스 팔란)이 배경으로 느껴지는 몽환적이고 실내악적인 색채를 첼레스타로 연주하고 있다. Parlan은 감성을 더하기 위해 더 여린 터치와 긴 잔향으로 투명도 높은 사운드로를 들려주고 있으며 오르골 소리의 느낌


참고로 첼레스타는 1886년 프랑스에서 개발된 업라이트 피아노와 비슷하게 생긴 악기로 건반을 누르면 해머가 금속판을 쳐서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소리는 글로켄슈필(실로폰은 글로켄슈필의 잘못된 명칭)과 유사한 맑고 신비로운 금속 음색의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호레이스 팔란은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알아 오른손의 검지, 중지, 약지를 사용하지 못하지만 Lou Donaldson, Booker Ervin, Dexter Gordon, Charles Mingus 등 많은 뮤지션과 명반을 남겼으며 특히, Blue Note와 SteepleChase 등의 음반사에서 뛰어난 자신의 명반들을 많이 남겼던,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류 연주자이다.


템포를 올려 본격적인 솔로 연주가 되는 중간 부분에서 Kirk는 조금은 터프하고 롹킹한, 자신만의 트레이드 마크 플루트 연주를 들려주는데, 아주 강렬한 다른 연주에 비해 그래도 많이 차분하게 연주하고 있다. 그리고 Parlan이 피아노로 연주를 이어받아 중간 부분의 연주를 마무리한다.


끝으로 Modern Jazz Quartet의 원곡이나 다른 대부분의 곡에서는 첫 부분의 느린 템포의 3/4박자로 돌아가지만 이 곡에서는 조금 다르게, 속도는 중간 부분으로 유지한 채 박자만 3/4으로 변경해서 페이드 아웃으로 끝내고 있다.


같이 참여한 Bass의 Michael Fleming과 Drum의 Walter Perkins의 안정적인 리듬도 빼놓을 수 없지만 아무래도 신체 핸디캡을 극복하고 뛰어난 연주를 펼쳤던 Roland Kirk와 Horace Parlan의 연주에 다시 한번 감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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