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a Fitzgerald

How High the Moon

by 달빛소리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흑인 병사들로 구성된 미군 군악대들이 유럽에 재즈 스타일의 음악을 전파했다. 미국의 재즈 음반과 라디오 방송은 유럽 전역에 확산되면서, 스윙과 빅밴드 스타일이 유럽 청중에게 익숙해지게 되었고 RCA, Columbia 등의 음반사에서 출시된 재즈 음반들이 수입되었다. 또한 새로운 문화와 예술에 대한 호기심에 목말라 있던 유럽의 작곡가들과 연주자들이 재즈의 리듬과 즉흥성에 매료되어 이를 자신들의 음악에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독일, 이탈리아 등 파시스트 국가에서는 재즈가 "퇴폐적이고 반국가적"이라는 이유로 금지되거나 검열되기도 했으나 언더그라운드 음악, 밀실 공연 등으로 은밀히 즐기며 저항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유럽에 주둔한 미군 기지 근처에 클럽과 재즈 바가 생겨났고, 군악대 출신 혹은 재즈 애호가인 미군들이 현지 뮤지션들과 교류하며 재즈는 자연스럽게 확산되었다. Duke Ellington, Louis Armstrong, Charlie Parker, Miles Davis 등은 유럽 투어를 통해 직접 유럽 관객들과 만났고, 이들이 연주하는 모던 재즈와 비밥 스타일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Django Reinhardt, Stéphane Grappelli 등 유럽 출신 재즈 뮤지션들은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갔으며 유럽 각국에 재즈 페스티벌과 음악 학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재즈는 미국에서 유럽, 일본 등 전 세계가 즐기는 음악이 되었다. Norman Granz는 음반 제작뿐만 아니라 JATP(Jazz at the Philharmonic)의 공연을 크게 성공시켰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60년 Ella Fitzgerald와 함께 미국을 벗어나 유럽 투어까지 성공시켰다. 이 중 서베를린의 Deutschlandhalle 공연(2월 13일)은 당시 재즈 공연으로 보기 드문 12,000명 정도의 청중이 모였고 녹음 환경도 완벽에 가까워 음반으로 제작되었다. 베를린 시민들에게 이 공연은 단순한 음악회가 아니라, 문화적 해방감과 미국 재즈의 자유를 체험하는 장면이었다.


곡 시작부터 Ella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느껴지고 완벽한 기교에 비교적 완만한 템포로 보컬 프레이징을 이끌어 간다. 멜로디 라인을 따라가다 초반 박자가 빨라지며 분위기가 전환이 되면서 Ella의 본격적인 스캣 즉흥이 진행된다.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고 리듬 섹션과 정교하게 맞아떨어지는 완벽한 박자감을 유지하면서 음정, 리듬 정확도는 물론이고, 고음에서 저음까지 무리 없는 음역 확장, 부드러운 호흡 컨트롤, 자연스러운 발음 등 그녀는 완벽한 테크닉을 선보인다.


Ella는 마치 악기처럼 노래한다. 그녀의 스캣은 악기를 사용하는 솔로이스트의 임프로바이제이션을 능가한다. 리듬과 멜로디를 자유자재로 비틀고, 자신만의 "How High the Moon" 세계를 창조해내고 있다. 그렇게 반주에 맞춰 신기에 가까운 스캣을 진행하다 긴 트랙을 간단한 드럼 박자에 맞춰 혼자 연주 전체를 리드하고 동시에 청중의 반응, 타이밍, 감정을 모두 읽고 적절히 반응하며 보컬로 연주자처럼 공연을 끌고 간다. 서커스 같기도 하고 마법 같기도 한 그녀의 스캣은 들을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이 곡이 아니더라도 그녀의 명연은 너무 좋아 어떻게 표현이 안된다.


이 음반은 단순히 연주의 기술적 우수함을 넘어 라이브 공연의 진정한 감동과 Ella의 따뜻함, 유머감각, 시대를 초월한 예술성을 담고 있기에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 평론가들은 “라이브 보컬의 교과서”,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라이브 녹음 중 하나”라고 평가했으며 Ella 본인도 자신의 라이브 중에서도 팬들과 평론가 모두 가장 완성도 높은 순간으로 이 공연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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