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ny Rollins

St. Thomas

by 달빛소리


1956년이면 John Coltrane이 Miles Davis Quintet에 막 가입한 직후라 흔히 말해 애송이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Sonny Rollins는 명반 Saxophone Colossus를 발매하고 영 라이언에서 거인으로 자기 시대를 열었다. 평단과 동료 음악인 그리고 팬들로부터 현존 최고 수준의 테너 연주자로 인식시키게 되었다.

1956년은 재즈사에도 꽤 중요한 한 해로 평가된다. 비밥과 쿨을 거쳐 하드밥이 확고히 자리 잡고 수많은 명반들이 녹음되었으며 또한 모노에서 스테레오로 기술 발전을 이루어 새로운 소리의 시대가 열렸던 해였다.


Sonny Rollins는 Miles Davis가 자신이 아닌 John Coltrane을 퀸텟의 테너 색소포니스트로 선택했을 때 놀랐다고 회고한 바 있다. “나는 그 당시에 이미 꽤 인정받고 있었고, Miles와도 이전에 함께 연주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새로운 밴드를 꾸릴 때 당연히 나에게 먼저 연락할 줄 알았다.”라고 여러 잡지에 인터뷰했었다. 그리고 “John Coltrane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었고, 그를 기용한 것은 다소 의외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주 잘 된 선택이었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명반 Saxophone Colossus는 Sonny Rollins를 거인으로 만들었지만 John Coltrane은 Miles Davis 퀸텟에 들어간 이후부터 신이 되는 테크트리를 타게 되었다.


Sonny Rollins는 전성기 시절 2차례에 걸쳐 자발적인 은퇴(잠수)를 감행했으며, 이 두 시기는 재즈 역사에서 매우 이례적이고도 상징적인 사건으로 여겨진다. 두 번의 자발적 은퇴의 이유는 존 콜트레인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기보다는 꽤 많은 영향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Coltrane이 어떤 연주를 하고 있는지를 보고, 나는 그만큼의 깊이와 표현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연주는 정말 진지하고, 영적인 뭔가를 담고 있었다. 나도 그런 지점에 다가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느껴지지 않았다.”


Coltrane은 1957~1965년 사이 거의 매해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가며 빠르게 진화했지만 Rollins는 급격한 예술적 진화에 대해 경외감과 동시에 자기반성을 느꼈고 1959년 재즈사에 널리 회자되는 첫 번째 잠수를 결심하게 된다. 그는 인적이 드문 뉴욕의 윌리엄스버그 다리 아래에서 혼자 고독한 연습을 거의 매일 반복했고 1962년에야 다시 필드로 복귀했다. 음반 “The Bridge로.


그리고 1967년 7월 17일, 존 콜트레인이 간암으로 47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Rollins는 Coltrane과 관계를 음악적 경쟁자이자, 깊이 존경하던 동료였으며, Coltrane의 예술적·정신적 성장을 눈앞에서 지켜봐 온 인물이었다.


“Coltrane은 단순한 색소폰 연주자가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진실을 찾으려는 사람’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도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내가 하고 있는 음악이 정말 진실한가? 내가 진정한 길 위에 있는가?”


Coltrane 사후 Rollins는 음악 활동은 거의 중단한 채 인도와 미국 국내로의 여행을 통해 철학, 요가, 선불교, 도교 등에 몰두하는 두 번째 잠수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Coltrane은 내게 어떤 방향성을 제시했지만, 나는 같은 길을 그대로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진실을 찾고 싶었다.”


Rollins는 2012년 이후로 대중 앞에서 공연하지 않았으며 폐섬유증으로 인한 재발성 호흡기 문제로 2014년 정식 은퇴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은퇴한 2014년 네덜란드에서 “Sonny Rollins-Morgen Speel Ik Beter”라는 제목으로 다큐멘터리가 방영했다. 제목을 해석하면 “내일은 더 잘 연주할 거야”라고 한다.


신(John Coltrane)은 1967년에 산화했으니 나와 같은 공기를 호흡하지 못했지만 거인(Sonny Rollins)은 비록 더 이상 발자국을 남길 수 없지만 나와 같은 공기를 호흡하고 있다. 아직도. 비록 그를 본 적도 없고 직접 연주를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의 큰 족적을 찾아 들으면서 새삼 신기하게 느껴진다.


연주는 Max Roach의 드럼 빌드업으로 시작한다. 전형적인 스윙이 아니라 칼립소 리듬을 타악기로 접근하는 방식이 특이하면서 독창적이고 신선하게 느껴진다. 이후 Coleman Hawkins의 영향인 듯한 호방 하면서도 Sonny Rollins의 세련된 테너가 자신이 만든 메인 멜로디를 연주한다. Max Roach는 반복적 패턴의 리듬을 연주하면서도 중간중간 악센트와 포인트를 주고 있으며 중반 멋진 드럼 솔로도 연주한다. 이 곡에서 Rollins 못지않게 Roach의 드럼은 곡 전체를 규정하는 탁월한 연주를 했다. Tommy Flanagan은 간결한 진행과 그루브를 유지했고 피아노 솔로와 Rollins의 테마 연주로 끝을 맺는다.


St. Thomas는 이 음반에서 처음 연주되었다. 별도의 사전 리허설은 없었다고 알려져 있고 녹음 때 사실상 즉흥적 결정으로 세션 당일 바로 연주되었다고 한다.


1950, 60년대에 발매된 재즈 음반들은 대부분 음반 제작 프로듀서들이 제목을 정했다. Saxophone Colossus라는 음반 제목도 Prestige 레코드의 프로듀서 Bob Weinstock이 지은 것으로 Rollins는 너무 거창해서 다소 부담스러워했다고 한다. 이 음반 라이너 노트를 기고했던 평론가 Ira Gitler는 Rollins의 연주가 압도적인 '거대한 조형물' 같다고 묘사했는데 음반 표지 이미지 와도 정확히 일치한다.


1930년생이니 94세이고 9월 7일 95세가 되신다.

연주가 힘드셔도 오래 사시길.


https://youtu.be/fdakJqKPRDE? si=l125 jlvrYbJauo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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