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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김 Sep 29. 2024

길냥이? 아니오, 집고양이

김예지 몰라도 돼, 그냥 해 | 애써 나를 응원해보기

하기로 하면 합니다. 저는. 김예지 어록이 유툽 쇼츠에 다. 부럽다. 그녀와 나 뭐가 다른디. 눈코입 달린 같은 사람이. 나도 하기로 한 산책 닷새째라고요, 후훗.


실은, 네살 된 기쁨이 '바지가 젖었어'하는 소리에 깼다. 너무 어두워 한 새벽일줄 알았는데 어라, 5시45분.


새벽이라 어둡지만 기쁨이가 씩씩하게 자기 방으로 걸어가 바지를 찾는단다. 하필 정리한답시고 위치를 바꿔놔서 못 찾네. 혹시라도 어디 부딛히랴 불 켜주러 나가는 길 거실이 여전히 훅훅하고 습하다. 날씨앱 기온을 보니 25도에 체감 28도.


워크온 앱은 내가 6시간 17분 잤다고 친절히 알려준다. 누워있을 시간도 아니고 핑계가 없다. 게으름 피우고 싶은 하이디김아, 옷을 갈아입어라, 당장. 세이노도 그랬잖아, 나를 사냥하라.


기쁨이는 뽀송한 바지를 잘 찾았고 화장실로 가서 마저 쉬야를 했다.


그래, 곧 잘거야. 걔 걱정말고 널 걱정해.





5시 57분, 엘베에 오른다, 나란 녀석, 좔했어. 나 오늘따라 나를 엄청 응원하려고 애쓴다.


집 안 보다 한결 시원한 기온기분이 좋아진다.


진작에 일어섰어야 했을 시간은 5시 30분. 욕심이 지나친건가, 달성할 수 있을법한 목표를 놔두고 다섯시반이 뭐야 그래도 그런 욕심 좀 마음에 품고 살자, 뭐 어때.


지금 이 곳. 운동화를 낙엽은 발에 감기고 어느새 떠오른 해님 덕에 대낮같은데 아직 밤인 줄 알고 켜진 단지내 가로등 홀로 어색하다.


이 정도면 뭐 행복하다.


밤톨이가 뒤에서 나를 잡아당기는데 아이고 이 자세는 큰 건데 이렇게 빨리? 대성공.


혹시 모를 두 번째 응가를 위해서 배변봉지는 킵하기로 한다. 아직 아기라, 그런 적이 있다. 그때는 봉지를 이미 버린 뒤라, 가까이 있는 낙엽이 열일했다. 낙엽마저 고맙구나.


곧이어 쉬 성공. 뒤로 나를 끌던 밤톨이 이젠 더 그럴 핑계가 없겠지.


이제 속도를 조금 내기로 해보자

내 안쪽으로 걷다가 재미난 냄새가 왼쪽에 많은지. 바깥쪽으로 향하는 밤톨이를 위해 내 허리춤에 연결한 줄의 각도를 옮긴다.

6시 8분을 조금 넘긴 시간, 이마트 24점포 유리를 열심히 닦는 점주가 보인다. 아니 점주로 보이는 사람같다.편견인가? 새벽 알바가 유리 창도 닦을까? 새벽 알바를 해본 적이 없는 무지한 나의 짐작. 하기사 뭐 중년 남성이라고 사장이어야만 한다는 건 무슨 논리? 알바일 수도 있지. 진실은 마트 문 너머로.




바람개비 동산


6시 10분 내가 좋아하는 골목길이다. 여기서 쪼끔만 더 가면 바람개비 동산이 있는 상쾌한 산책코스가 시작된다. 사실 내게만 산책 코스였지, 등산복을 입고 한나절 둘레길을 떠나는 분들도 더러 보인다.

6시 13분 코스 진입 직전 밤톨이가 왜 내 줄을 땡기지.


한 번씩 그럴 때마다 내가 모르는 냄새에 꽂힌 건지. 내게 안 들리는 소리에 꽂힌 건지 사뭇 궁금해진다. 개가 듣는 주파수가 사람과 다르고 보이는 것도 다르다 하니. 이건 뭐 같은 공간에 있어도 걔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잖은가. 공상 그만,


입에 뭘 넣은 거 같지도 않은데 내 속도를 늦추네. 아기 강아지라 호기심이 매우 많다. 집에 사는 강아지도 둘째도 구강기. 땅에 있는 게 뭐든 입으로 혀로 맛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말씀.


입에 있는 고기 뼈를 뺀 적도 여러번이니. 이제 슬슬 강아지 견주 베테랑이 되어가는 것 같아 스스로 흐뭇하다.

6시 19분, 들고양이다. 사냥 중인가, 잠복 중인가. 여기가 너네 집이네. 그렇다면 넌 집고양이다. 내가 잠깐 들렀다 널 도촬했구나. 미안. 가던 길 가라.




6시 30분 반환점에 도달했다. 오른쪽 정강이 위쪽 근육이 출발할 때부터 약간씩 땡긴다. 어디에 문제가 생겼나 생각해 본다. 모르겠다. 댄스를 할 때 점프를 좀 줄여야겠다.


평소에 걷는 길이 아니반대편길로 올라갔더니 하행길인지 내려오는 분들과 많이 마주쳤다. 전망도 뷰도 그제와 다르다. 같은 길인데 늘 다르다.


밤톨이는 꼭 내리막만 되면 발걸음을 재촉한다. 지도 내리막은 벅찬가 중력을 나보다 더 많이 받나 빨리 내려가고 싶나 보다.


6시 35분, 마침 왼편으로 지나가던 한 분이 강아지 밤톨이 얼굴 한 번 내 얼굴 한 번 훑고 나서 웃으며 뭐라 뭐라 하는 듯도하다. 뭐지? 나랑 밤톨이가 닮았나!? 궁금증이 인다. 우리 둘 공통점을 찾았단건지, 들개가 귀엽게 생겼다 하신 건지, 진실은 다시 미궁으로.


여기가 산책 핫플입니다욧. 어제보다 사람이 많다. 러닝메이트처럼 보이는 가족들도 있고 성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복실복실 대형 개도 지나치고 오늘 나온 타이밍도 핫하군.





6시 41분 좋아하는 바람개비 동산 코스를 빠져나왔다. 이제 대략  몇 분 걸리는지 몸이 알 것 같다.


아이고 시원해라 짹짹짹도 반갑고 귀에 소리가 좀 들리네. 어제 한가위 저녁에 많이 먹어서 그런가 적지 않은 산책객들과 더 큰 세계와 조우한 느낌에 매우 느슨하고 기분 좋은 소속감을 느낀다.

6시 53분 다시 엘레베이터 탑승.


오늘의 산책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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