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 5분 집을 나섰다. 브런치보며 고치며 슬슬 걷다 보니 15분이 지났는데 엉금엉금 근처초등학교까지 왔다. 밤톨이가 응가를 횡단보도에서 하셨다. 공사 중인 도로에신호 없는보도라 인적은 드문데 몇번째였더라 참 난감하다.
그곳이 핫스폿이 돼버린 건가,괜찮아 잘했어.
사료를 한 알 주니 한 번 더 쳐다봐서 세 알 준다. 아쉽게도 응가할 때 사진을 찰칵했는데 너무 빨리 움직였어.
다음기회를 기다리기로 하자. 난 네가 응가할 때 젤 예쁘거든.
이 시간에 나오면 네가 응가할 때는 손전등을 켜야 하는구나,어둡다.
귀에 들리는 소리는 매미인가 귀뚜라미인가? 매미다. 눈에 보이는 아파트는 불이 하나, 둘셋.세 집에 불이 켜져 있구나, 3시 반에 깼던가, 나 오늘 왜 이러지.
앱을 보니 도합 5시간 잤길래. 좋아, 하이디김 일어날까? 했다. 어제 채 마무리 못한 글들도 있고. 그러나 에어컨을 켜지 않고 잠에 드니 여전히 무더워 딥슬립을 못한 둘째 기쁨이도 나도 더 누워서 잠을 청했다.
그새를 못 참고 몸을 일으키고는 '엄마, 나 시원하게 자고 싶어'하는 기쁨이, 잠들기 전에는 좀 춥다고 꺼달라 하더니 새벽에는 더워서 못 잔단다. 기쁨이 이놈, 변덕 변덕.
에어컨을 켜니 잠이 좀 드나 보다. 슬쩍 거실 탁자로 나와서 글을 좀 마무리할까 했더니, 다시 방에서 기쁨이 잠꼬대를 뭐라 뭐라 날 부르는 소리로 착각해서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옆에서 한참천장 보고 누워있었다. 엄마란 그저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될 때가 있다.
여기까지 5시 22분. 간밤에 있었던 일로 꽉 찬 머릿속을 비웠다.
초등학교는 지나왔고 솔* 아파트도 지났고 아구천이 보이네. 헬스클럽은 비운 듯싶고.나를 향해 걸어오는 사람을 피하려 차도로 둘러갔다.우린 어두운 데서 만나는 낯 모르는 사람이 젤 무섭지. 미디어 영향일까.
장미빌과무지개빌지나여기 컴* 미용실을 지난다. 한번 예약을 했다가 결국 못 갔다. 인테리어가 중요하단 말이지. 깔끔해.
그리고 신중앙빌에 이어 이마트 24를 지난다. 큰 달은 없다. 구름에 가려진 달님도 작지는 않다.비교라는 건 무서운 거,저 정도로는 큰 걸로 보이지도 않네.
아뿔싸! 슬리퍼 아니 슬리퍼를 끌고 왔다. 이거는 계획이 없었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한 시간 산책에 스레빠라니 정신이 있는 거냐, 하이드김.
구름에 가릴 듯 말 듯 하는 보름은 으슥하다. 지킬이 하이드로변신할 때 나오는 배경 같다. 저걸 한 번 찍어봐?
이게 최선인가 정녕. 삼성아 안드로이드야. 이게 최선이냐고 S22 Ultra야 조금 더 잘할 수 없었어?
아무래도사람보다 못한 게 기술이야 라고 늘 당당히 말해 본다. 육안에 담기는 이 예쁨을 고스란히 담지 못하다니, 고도로 발달한 기술로도 어렵다는 과학자들의 과제일까? 카메라 렌즈는 객관적이고 지나치게 과학적이고 내 눈으로 보는 달은 내 시력만큼 나와 달 사이 거리만큼 내가 얼마나 힘주어 보느냐에 따라 그 크기도 달리보이는 걸.
하얀색 줄이어폰을 귀에 꽂은 할아버지가 골목길 앞을 지나갔다. 그렇단 말은 그분은 이미 한 시간 전에 산책 코스를 다녀왔다는 뜻인가 아니면 나랑 반대로 코스를 도는 것인가? 지금 5시 26분 당황스럽지만 반갑다. 사람이 없는 골목길 여전히 무서운 상상을 부른다.
밤톨이가 갑자기 뒤에서 나를 조금 당겨도 무시한다. 아까 응가했으니까 색다른 냄새에 코가 팔렸겠지. 응, 괜찮아.
골목길 지나왔으니까 다음은 정사우나 헬스. 저기는 한번 가봐야 될 거 같아,우리집 바로 앞 도*은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아서 물때가 잔뜩,다시 가고 싶지 않다.
엄마네 집 근처에 낮은 가격에 사람 늘 많은 사우나는 그 깨끗함이 전국 최고다, 내 기준.
냄새도 무해하고 심지어 땀도 너무 잘난다. 그곳을 간지 매우 매우 오래되었구나. 무덥고 습한 날씨는 길어지고 사우나를 가지 않아도 바깥나들이만 해도 사우나 정도로 더운날들..
5시 30분 바람 동산 코스 진입. 와우 아주머니 세 분이 내 옆을 지나가셨다. 그 말인즉슨, 도대체 이분은 몇 시에 어디서 나왔을까 게을렀던 나야 좀 반성하라, 각성하라.5시 반은몇십 년간늘 잠들어 있는 시각이자, 깨지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하는 시간이었다. 할아버지 아주머니들의 일상을 살아내는 힘이 새삼 존경스럽다.
삶이 바뀌고 몸이 바뀌고 인생이 바뀌는 거 아니냐고 몇 년을 헛살았냐고. 자기에게 하는 말은 자성 반성 꾸지람 깨짐만 한 바가지다.
동화처럼 나왔다.
5시 35분,어둡지만 밝고 밝지만 어둡다. 이러다가 또 가로등이 어색하게끔 갑자기 밝아진다구, 오늘 일출은 6시 17분이랬다. 반환점에 일출이 되기 전에 도착할라나, 서두르고 싶은데 쓰레빠라니!신발이 짐스럽다.
아니 내입으로 슬리퍼를 신고 올라도 되는 코스랬지만 오른쪽 아니 왼쪽 허벅지가 평소랑 다르게 당기네.
5시 41분 반환점 도착, 아직 어둡다. 내려간다.
5시 48분 조증이 왔나 싶게 셀카 여섯 개를 연달아찍는다. 그 와중에 내 볼에 앉은 모기들아, 정신 차려.내피는 네 맛 내 맛도아니다고.
5시 53분 바람개비 동산 코스를 빠져나왔다.
5시 57분 켜진 가로등은여전해도 해님이 나온다. 그때쯤 씨유 편의점을 돌아 나왔다. 집에 가까워졌다는 것, 약 10분 예상.
아아, 지금이다. 6시 2분, 코랄 핑크와 애쉬 블루가 겹쳐진 구름을 배경으로 환한 가로등 색깔이 무색해지면서 일출의 환한 빛들이 조금씩 조금씩 우리를 감싼다. 오늘따라 하늘색인 하늘색이 아니다. 다변하고 다채롭고 깊다. 집에 걸어놓고 싶은 빛깔들.
엊저녁 놓쳤던 그 석양빛과 비슷하다. 열넷 된 우리 딸 해피가 색깔에 이름을 가르쳐 준다. 코랄핑크?그런 색이 있었어? 화장품 공부 열심히 하더니 색깔 공부도 절로 되었나 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