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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라진 Nov 25. 2021

한국 vs 스웨덴 산부인과 비교체험 극과 극

처음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건 올해 4월, 내 생일 다음날이었다.


산부인과에서 초음파를 통해 첫아기의 심장소리를 남편과 들은 후, (왠지 훈장 같기도 한) 내 이름이 적힌 산모수첩도 받아왔다.


한국에서 쭉 검진을 다니다가, 임신 29주 차에 스웨덴으로 이민을 오면서 재밌게도 한국과 스웨덴의 극명히 다른 산부인과를 체험 중이다.


복지천국이라 불리는 스웨덴이지만, 의료복지에 있어서는 공공서비스로 운영되기에 우리나라처럼 빠른 의료서비스를 기대하는 건 어렵다는 걸 익히 알고는 있었다. (스웨덴에서 일반 의료진찰을 받기 위해선 예약 후 한 달 대기는 기본이다)


매번 산부인과에 갈 때마다 함께했던 남편은 이미 한국과 스웨덴이 어떻게 다를지 짐작이 됐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염려와는 달리, 막상 두 나라를 모두 경험해보니 장단점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1. 한국의 압박수비 임신생활 vs. 스웨덴의 느긋한 임신생활

한국은 정기검진을 가게 되면 무조건 해야 하는 절차가 있다. 바로 산모의 혈압과 몸무게 체크.


평소에 워낙 활동적이어서 임신 중에도 요가, 수영 등의 운동을 꾸준히 했지만 몸무게가 검진하러 갈 때마다 꾸준하게 늘었다.


너무 억울했다. 내 일평생 살찌는 거에 대해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과자나 단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먹는 것도 양도 평소처럼 건강하게 먹는데 말이다.


임신 초기에 입덧을 하면서 가장 큰 도움이 됐던 게 바나나였는데, 자다가도 속이 안 좋아서 일어나면 침대 협탁에 바나나를 놓고 한입 먹어야 잠이 들었다. 바뀐 거라곤 그게 다였다.

입덧으로 고생한다며 절친이 바나나를 한 박스 보내줬다 ♥

매번 검진받을 때마다 몸무게가 많이도 아니고 얄밉게 조금씩 늘어나니, 의사도 내 몸무게를 자꾸 언급했다. 이게 어찌나 스트레스였는지. 


임신하기 전 평소의 나보다 오히려 더 철저하게 관리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유튜브 같은 걸 봐도 임산부 식단관리에 관한 컨텐츠들이 정말 많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압박감이 나를 힘들게 했다. 물론 급격하게 체중이 늘면 좋지 않으니 백번 이해는 한다만 몸무게는 뭐 얄짤없는 분위기다. 몸무게는 임신기간 중의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반면, 스웨덴은 이런 부분에 더 느슨하다. 검진 때 항상 중요하게 체크하는 건 혈압과 철분 수치이다. 그 외에는 나의 신체적인 변화(?) 보다 감정적인 부분을 더 중시하는 것 같다.


얼마 전 검진을 가서 스웨덴 조산원에서도 처음으로 몸무게를 쟀다. 내가 늘어난 몸무게에 스트레스받는 모습을 보였더니 조산사 왈 '스트레스받는 게 더 안 좋아요. 그냥 평소대로 먹고 많이 걸으세요' 라며 날 위로해줬다. 


또한 한국에선 배 속에 아기가 너무 커지지 않을까 식단에 조심하는 분위기가 강한데, 스웨덴은 어떻게 먹던 유전적으로 큰 아기는 크고 작은 아기는 작게 태어난다는 거다. 거참 맘 편하다. 하하



2. 한국의 '의사 위주' 커뮤니케이션 vs. 스웨덴의 '산모 위주' 커뮤니케이션

한국에서 정기검진으로 병원을 방문하면 길어야 10분 남짓한 의사와의 면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가 의사에게 질문을 하면 '뭐 이런 걸 물어보냐'는 민망하고 시큰둥한 태도였다. 당연히 돌아오는 답변도 굉장히 기계적이었다.


항상 병원에 대기하는 산모들도 많아서였을까. 의사는 산모의 상태가 어떤지를 묻기보단 그날 찾아온 환자들을 처리하는 게 더 급급해 보였다.

(다른 산부인과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연찮게 그 병원에 3명의 다른 의사들을 만났는데 다 비슷한 경험을 했다.)


우리가 다니는 스웨덴의 조산원. 각 조산사들마다 이름과 함께 방이 따로 마련돼있다.

스웨덴에서는 임신을 하면 가장 먼저 조산사를 만난다. 출산 전까지는 조산사에게 정기검진을 받고, 추후 출산 전문병원에서 출산을 한다. 


나는 남편에게 정기검진이 끝날 때마다 '오늘도 심리상담 잘 받았다'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한다.


기본 40분 정도 면담이 이뤄지는데, 항상 첫 질문은 '요즘 기분이 어때?'이다. 


첫 방문 때는 이런 질문을 난생처음 받아봐서 당황스러웠다. 그 이후 이어지는 질문들은 '요즘 잠은 잘 자니?', '먹는 건 잘 먹니?' 등 산모에 대해 많이 물어본다. 


너무나 편안한 분위기라 시간이나 분위기의 압박감 없이 편하게 질문도 한다. 처음 스웨덴에 도착한 후 조산사와의 면담을 마치고 나왔는데, 남편과 나는 동시에 질문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다며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었다.


출산을 약 5주 앞둔 우리 부부에게 특히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처음 아이를 맞이하는 우리 부부에게 겁먹지 말라며. 하하



3. 한국의 최첨단 의료장비 vs 스웨덴의 아날로그식 검진

한국의 최첨단 의료장비는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매번 산부인과에 방문할 때마다 초음파를 봤다.


초음파를 통해 아기의 심장박동수는 물론 머리 치수, 아기의 사이즈, 몸무게까지 모두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 초음파는 아기가 잘 자라나 염려되는 우리 부부의 걱정을 말끔히 해결해줬다. 


임신 초기, 중기에 입체 초음파도 2번이나 했었다. 특히 입체 초음파를 보면 아기 표정까지 얼마나 생생하게 아기를 볼 수 있는지 입이 떡 벌어졌다.  

한국에서 본 마지막 입체 초음파. 우리 아기가 이뻐서 얼마나 뚫어져라 쳐다봤는지 모른다


무엇보다 정부 임신 지원금 60만 원까지 고려하면 초음파 검진비용이 그렇게 부담되지 않는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스웨덴에선 임신 중 이런 최첨단 의료서비스를 기대하기 힘들다.


초음파는 초기와 중기에 각 한 번씩 2번이 최대이다. 이 외에 초음파를 확인하고 싶다면 사설 초음파 기관에 가서 따로 비용을 내고 봐야 한다. (참고로 스웨덴에서 임신기간 동안 발생하는 의료비는 0이다.)


처음 조산사를 만난 날, 우리 부부가 한국에선 초음파를 매번 정기검진 갈 때마다 봤다고 하니 아주 놀랬다.


스웨덴에서 실시하는 정기검진은 매우 아날로그식이다. 조산사는 손으로 내 배를 만져가며 아기의 위치를 확인하고, 줄자로 내 배의 크기를 측정하여 아기가 잘 자라고 있는지 추측(?)한다.


그리고 아기의 심장소리는 오로지 심장박동수만 측정할 수 있는 기계로 측정한다 (기계가 얼핏 봐도 90년대쯤 나온 것 같다)


너무 최첨단 시대에서 갑자기 원시시대(?)급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것 같아서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이제 임신 막바지이고 아기가 잘 자라고 있다는 안심 때문일까. 아날로그식 검진이 싫지만은 않다.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그치만 첫 임신에 임신 초기였다면 다른 마음일 수도)


계획하지 않게 한국과 스웨덴의 산부인과를 몸소 비교 체험하는 것이 참 재밌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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