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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라진 Oct 29. 2021

만삭의 딸을 이민 보내는 친정엄마의 마음가짐

2021년 4월 20일, 내 생일 다음날 아침이었다.


원래 불규칙적인 생리였지만 그날따라 느낌이 너무 쎄했다. 왠지 모르게 임신 테스트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동안은 혹시 이번엔 임신일까 하는 마음에 떨리는 마음으로 임신 테스트를 해보면 단호박 한 줄이었다.


그런데 웬걸, 이번에도 한 줄이겠지 하며 테스트기를 봤는데 떡하니 두줄이 떴다. 

테스트기 3개와 병원에서 피검사를 마친 후 나는 정식으로(?) 임산부가 됐다.


임신 전부터 남편과 스웨덴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계획하고 작년 12월에 비자를 신청했지만 1년이 다되도록 스웨덴 이민청은 깜깜무소식이었다. 


이민청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다 보니 반포기 상태가 됐고, 아기에 집중하자며 초보 엄마+초보 아빠는 마음 졸이고 또 설레며 임신기간을 보냈다.


그러다 9월 추석 무렵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스웨덴 이민청으로부터 비자 인터뷰 초청 이메일을 받고 거주허가 통지를 받았다. 10개월간의 기다림이 무색하게 2주 만에 후다닥 비자가 나온 것이다.


남편이 하고 있는 일 때문에 비자가 나오는 대로 스웨덴으로 이민을 가자 계획은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비자가 발급되고 출산 후 내년 봄, 여름 무렵엔 비자가 나오겠지 하며 그때 즈음 스웨덴으로 이사하자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플랜은 순식간에 변경됐다.


항공사에서 허용하는 임산부의 주수가 정해져 있고, 스웨덴에 도착해서 새로운 조산사를 만나야 하고 등등 여러 일들을 고려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출국까지의 타임라인은 단 3주였다. 


촉박한 시간 때문에 이런저런 감정을 추스를 새도 없이 3년 반 동안의 한국생활을 3주 만에 모두 정리해야 했다. 가족, 친구들의 도움과 정말 미친 스피드와 정신력으로 어느 정도 정리를 마칠 수 있었다. 


출국까지 일주일 정도 남았을 무렵 친정엄마 집에서 며칠을 머물렀다.


만삭의 딸이 곧 먼 타국으로 이민을 가는데 우리 엄마는 도통 슬픈 기색은커녕 아쉬운 기색도 별로 없어 보였다. 


철없는 딸은 농담 삼아 엄마에게 '엄마, 나 멀리 가는데 괜찮아? 안 슬퍼?'라고 웃으며 물었다. 


그러고 며칠 후 집 앞 공원에 함께 산책하며 엄마가 말했다. 


'우리 딸, 엄마가 딸 멀리 보내는데 별로 슬퍼하지 않는 거 같아서 서운해?
 
엄마는 너희 두 사람이 너희들의 미래를 위해 충분히 심사숙고해서 결정했을 거라 생각해. 그리고 그 결정을 엄마는 믿어서 크게 걱정이 안 돼.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역할들이 있잖아? 서로의 역할을 잘 해내면서 그 위치에서 행복하면 되는 거야.

이랬으면 저랬으면 서로에게 기대하면 피곤하기만 하지. 엄마는 우리 딸이 잘 해낼 거라 믿어.'


어떠한 조건 없이 전폭적인 지지, 믿음, 사랑을 받는다는 게 이런 기분이지. 그동안 내 인생의 팔 할은 엄마의 믿음 덕분에 단단하게 이뤄졌구나 번뜩 깨닫게 됐다.


그동안 이런 조건 없는 사랑을 받기만 하다 보니 정작 돌아보며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만삭의 임산부로 곧 엄마가 될 나 자신을 생각하면 나도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돼야지 하고 결심한다. 


출국 당일 아침, 텅 빈 공항에서 가족들의 배웅과 함께 작별하고 비행기를 기다리며 받은 엄마의 카톡 메시지에 눈물보단 안도의 미소가 지어졌다. 



멀리 떨어져 있다고 너무 슬퍼하기만 할 일은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본인의 역할들을 해내고 또 그 속에서 하루하루 행복을 찾아간다. 


무엇보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깝고 충만하기에 이로 써도 행복하고 감사할 이유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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