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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가 아니야

촬영 준비를 하며 느낀 사랑

by benow

가을과 함께 촬영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촬영을 앞두고 이제 본격적인 촬영 준비에 들어갔다. 혼자서 작업하는 시간이 많았다가 이제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처음에 막연하기만 했던 나의 영화가 점점 그림이 명확해져 간다. 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배경을 찾고, 배우들이 캐스팅되면서 내가 쓴 대사에 영혼이 실리기 시작했다.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제 본격적으로 사람들과 함께 답을 찾아가고 있다. 영화 촬영은 단 이틀이지만, 그날을 위해 달려온 이 시간을 꼭 남겨야겠단 생각을 했다.


우선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 대해 대략적으로 적어보자면,


시나리오


로케이션 헌팅


배우 캐스팅


콘티


의상/소품표 정리


그 외 제작 관련 일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현재 나는 배우 캐스팅까지 완료된 상태이고, 콘티 완성을 위해 촬영 감독님과 상의 중이다. 아직 프리 프로덕션 단계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이 과정을 거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다시금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영화는 역시 공동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준비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하나씩 답을 찾아가고 있다. 연출의 포지션에서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외로움도 당연히 있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을 통해 그걸 충분히 견딜 만한 힘을 얻는다.

tempImagesn2fP1.heic 함께 로케를 찾아주는 제작부 언니의 뒷모습

제작 과정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는 촬영 장소를 찾는 것이다. 촬영장에는 변수가 항상 많기 때문에 장소는 최대한 방해 요소가 적은 곳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특히나 장소 섭외를 할 경우에 많은 사람들의 허가가 필요하다. 이번에는 정말 감사하게도 친구가 운영하는 파티룸을 지원해 주었다. 그리고 카페도 필요했는데, 카페 사장님의 도움으로 2시간 동안 촬영할 수 있게 되었다. 나머지 야외 로케이션도 제작을 맡은 언니가 함께 도와주어서 원하던 장소를 잘 찾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의 협조 덕분에 혼자서 난항을 겪었던 로케이션이 이틀 만에 픽스가 되었다.

tempImagelIUTJw.heic 나의 촬영이 이루어질 홍대/상수의 파티룸

사실, 파티룸과 카페 모두 손해를 보면서까지 촬영에 협조해 주었다는 게 맘에 걸렸다. 친구의 경우는 파티룸의 수익을 포기한 것이고, 카페 사장님은 촬영일에 휴무임에도 불구하고 출근을 하신다. 그리고 제작을 도와주는 언니는 촬영 전날에 언니의 집을 숙소로 내어주겠다고 했다. 내가 유명하거나 검증된 감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촬영의 도움을 얻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나의 사비로 찍는 영화이기 때문에 돈을 최대한 아껴야 해서 아쉬운 소리만 늘어놓게 되는 이 상황이 안타깝기만 했다.


이런 상황은 로케이션뿐만이 아니었다. 촬영 감독님도 원래 받으셔야 하는 페이보다 훨씬 적게 받으시고, 영화를 도와주시기로 했다. 심지어 내가 최대한 제작비를 아낄 수 있도록 여러 방안을 함께 고민해 주셨다. 덕분에 나는 촬영 장비는 지원받아서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촬감님은 로케이션을 돌아봐주시며 내가 고민하는 부분들을 함께 해결하고자 노력해 주셨다. 어쩌면 만족스러운 환경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촬감님은 개인 시간까지 써가시며 함께 콘티를 고민해 주신다.


캐스팅된 배우분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디까지 솔직하게 써야 하는지 조심스럽지만, 현재 캐스팅된 모든 배우들은 원래 받아야 할 몫을 다 받지 못한 채 출연을 해주시기로 했다. 사실, 모두 경력이 화려했기 때문에 물어보기 조심스러웠다. 그렇지만 내 영화에 출연해 줬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었고, 나는 뻔뻔하게 출연 여부를 여쭤봤다. 내가 제시한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배우 분들 모두 함께 재밌게 영화 만들어 보자며 나를 다독였다. 그리고 라희 역으로 출연을 해주는 언니가 나에게 말했다. (언니는 이 영화에서 나의 페르소나였다.) “서연아, 나에게는 이게 2000만 원짜리 경험이야. 너무 고마워.”.


그리고 이 과정을 도와주는 스태프들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모두 바쁜 와중에 나에게 이틀이나 시간을 내주었다. 내가 지금 당장 해줄 수 있는 건 밥 사주는 것 밖에 없는데, 다들 밥이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그 어떠한 부담감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걱정해 주고, 응원해 주었다. 이렇게 큰 마음들 사이에서 나는 한 없이 작아졌다. 솔직히 혼자서 영화를 준비한다 생각하고 외롭다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서 얻는 것 밖에 없는데,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마지막으로 나의 짝꿍도 옆에서 큰 힘이 되었다. 내 짝꿍은 매우 다재다능한데, 연인이라는 이유로 나는 그의 모든 재능을 내 작품에 끌어다 썼다. 예전에 내가 찍었던 두 작품에서 의상 때문에 한이 맺혔는데, 이번에 짝꿍 덕분에 그 한을 풀 수 있게 되었다. 패션 학과를 나온 짝꿍을 믿고 나는 이번에 의상의 완성도를 높이는 게 가능해졌다. 그리고 본인의 사비를 써서 헤어 메이크업까지 해결해주려 했다. 나는 사실 헤어 메이크업은 생각도 못했는데, 내가 놓친 부분들을 세세하게 신경 써 준 덕분에 준비 과정이 더 치밀해졌다. 역시 뭐든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인가 보다.


원래 이번 브런치 글은 어떠한 준비가 필요하고 어떻게 만들어 갔는지 세세하게 쓰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이 준비 과정을 곱씹어보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건 아무리 봐도 감사함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이 영화의 시작이었기 때문에 절대 간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쓰기에 앞서 위의 이야기를 꼭 짚고 넘어가야 했다. 나의 세 번째 단편이 나오기까지 모든 과정은 꿈을 응원해 주는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 있는 결정체이다.


이 영화가 완성되고, 많은 시간이 흘러도 나는 이 날들을 절대 잊지 못할 거다. 이 모든 과정이 인생에서 자주 있지 않을 아주 진귀한 경험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은 벅차더라도 내 한계치를 넘는 책임감(?)을 가져보려 한다. 미숙하지만 그게 내가 현재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이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내가 단편 영화를 만드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어쩌면 이런 연대감이 그리웠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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