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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지롭다 Dec 06. 2023

“무엇에 대해 말해보고 싶으세요?”

상담 1회기, 개방적 탐색의 시간

“무엇에 대해 말해보고 싶으세요?”


첫 상담일, 상담사분이 내게 건넨 첫마디이다.

그래, 나는 무엇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지?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마음을 가다듬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걷잡을 수 없이 가라앉은 마음을 가누기 어려워하던 중, 교원 마음 방역 심리상담 지원에 관한 공문을 발견했다. 교육청 연계 상담 기관 중 직장 주변이나 자택 주변, 혹은 자신이 직접 선택한 곳에서 8회기까지 무료로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게 해 준다나. 신청 방법도 주어진 링크로 들어가 간단한 질문에 답만 하면 되었다. 


신청 양식에는 현재 마음 상태는 어떠한지, 상담을 통해 기대하는 점이 무엇인지 등을 묻고 있었다. 지금 나에게 있어 내면의 문제가 가장 도드라지게 튀어나온 부분은 어디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첫째, 교직에 대한 회의감

둘째, 우울감 (+내 우울과 감정 기복을 다 받아주는 남편에게 미안함)

셋째, 스마트폰, 도파민 중독     


신청서를 작성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교육청 교원치유지원센터에서 연락이 와서 지정한 상담 기관의 연락처를 받고 첫 번째 상담 일정을 잡았다.(사실 작년에도 지인이 귀띔해주어 신청했었는데, 그때에는 예산 조기 소진으로 지원을 받지 못했었다. 아마 올해 예산이 대폭 증액된 모양이다.) 첫 상담은 2주쯤 뒤인 10월부터 시작해 보기로 하였다.          




“OOO님은 무엇에 대해 말해보고 싶으세요?”     


그걸 왜 저에게 물으시는지... 이렇게 전문적인 심리 상담을 받아보는 것은 처음이라 나도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이 질문을 들으니 마치 현지에서 처음으로 만난 여행 가이드가 갑자기 “어디로 가볼래요?”라 묻는 느낌이었다.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가 교사와 학생의 관계와는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 비슷한 면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교사가 하는 일은 가르칠 내용이 정해져 있고 이를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보니 상담의 ‘내용’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내담자에게 개방적으로 던져버리는 이 과정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떠뜸떠뜸, 신청 양식에 적었던 말들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추석 연휴와 개천절까지 지나면서 꽤 오랫동안 쉬면서 마음의 어려움들이 많이 희미해진 것 같아 상담을 꼭 받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시작하니 다시금 감정들이 조금씩 올라오더라.     


지난 서이초 사건 이후로 방학 내내 집회에 참석한 이야기, 9.4를 지나왔지만 바뀐 것은 없다는 생각, 앞으로의 교직 생활은 더욱 암울할 것 같다는 말들을 담담히 이어갔다. 집회에 참여하고 안 좋은 뉴스들 때문에 더 부정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서 9월에는 더 이상 집회를 가지 않았다는 것도.


상담사는 교직 상황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물어보았다. 이 당시에는, 집회를 여러 차례 참석을 했지만 바뀌는 것이 없다고 느껴져 무력하다고 이야기했다. (4회기쯤 지나 다시 생각해 보면, 집회는 힐링이다. 다녀오고 나면 오히려 마음에 희망적인 생각이 든다. 집회를 몇 차례 불참했을 때 느낀 불편감을 방어하려고 그렇게 말한 것 같다.)


또, 일련의 일들로 인해 증폭되기는 하였으나 내면의 기저에 우울감이 있는 것 같다. 보통은 11월쯤, 개학한 지 시간이 좀 지나고 방학까지도 시간이 꽤 남은 시점에 에너지 소진으로 우울감이 오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방학 때에도 감정 소모가 커서 별로 회복이 안 되어 9월부터 녹초가 된 것 같다.     

 

이러한 우울감의 근원에 대해 찾아보기 위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장 배경에 충격이 될 만한 사건이 있었나? 부모님의 양육 태도는 어떠했나? 부모님이 조금 엄하시고,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갈 때 지역이 달라져 적응에 어려움이 조금 있기는 했다, 만, 이 정도의 일들은 다들 흔하게 겪지 않나? 내 마음속에 트라우마를 남겼을만한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찾기 어려웠다. 힘들기는 한데, 왜 힘든지 그 원인을 찾기가 어려웠다.          



교직은 침몰하는 배 같다, 기후위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같은 이야기를 잠잠히 듣던 상담사는 마음이 힘든 원인은 아직 잘 모르겠으나, 미래에 대한 나의 관점이 매우 어둡다고 했다. 오늘은 대화를 통해 내면의 상태를 파악했으니 다음 주까지 여러 성격 검사와 스트레스 검사 등을 실시한 뒤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고, 우리에게 주어진 8회기의 상담 기간 동안 차차 다루어보도록 하자고 마무리 짓고 짧은 1시간의 상담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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