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2회기, 심리 검사 후기
2회기 상담을 받기 전, TCI 심리 검사와 MMPI-2 검사, 문장 완성 검사, 정식 MBTI 검사를 받았다. 참고로, TCI 검사는 기질 및 성격 검사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기질’과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성격’을 파악하는 검사다. MMPI-2 검사는 정신건강과 관련된 진단을 명확히 하려는 목적으로 개발된 검사라고 한다.
상담 선생님은 검사를 실시할 때에 고민하지 말고 즉각 떠오르는 답변을 선택하고, 또 가능하다면 한 자리에서 모든 검사를 끝내는 편이 신뢰도가 더 높다고 했다. 그래서 몇 시간 정도 걸리냐 물으니 2시간은 넉넉하게 잡으라고 말씀하신다. 어이쿠, 2시간이라니, 꽤 길다.
주말에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책상 앞에 앉았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더 잘하고 싶기 때문에, 열심을 다해 나 자신을 몰아붙인다.’ - 아니요!
‘종종 실제보다 일이 더 어렵거나 위험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 약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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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생각하지 않고 기계처럼 키보드를 누르며 TCI 140문항, MMPI-2 567문항을 30분도 안 되어서 주파했다. 문장 완성 검사와 MBTI 검사까지 마치니 1시간이 조금 넘어 있었다.
우선, MBTI 검사는 자가보고식에 마지막 장에 결과 요약을 스스로 하기 때문에 결과를 바로 알 수 있었다. 16 Personalities에서도 나왔지만, 내 성향은 ENFJ가 나왔다. 올해 초에 같은 검사지를 해 보았을 때 E가 21이 나왔었는데 숫자가 약간 떨어졌다. 예전부터 E와 F는 뚜렷하다 생각하고 NS와 PJ는 왔다리 갔다리 하던 게 결과지에 그대로 나왔더라.
그런데, 조금 의심을 해 보자면, MBTI에 워낙 많이 노출되어서 어느 문항을 찍어야 어떤 성향이 나올지 메타인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엄밀한 의미에서 정확히 내 성격을 나타내기보다는, 내가 되고 싶은 나의 성격을 반영했을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결과들은 어떻게 나왔을지 궁금해하며 상담실에 들어섰다.
한 주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뭐, 별일 없었어요. 특별한 일이 있었나요. 늘 비슷한 것 같아요. 으레 하는 말들이 잠깐 오간 뒤 성격검사 해석을 들었다.
MMPI의 스트레스 요소들은 무난하게 다 평균선 안쪽에 나왔지만 다른 사람의 인정이 중요하다는 요소가 평균선 안쪽 최상단에 위치해서 검사 결과가 살짝 오염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괜찮은 사람으로 보여야 하기 때문에 솔직하게 답하지 않았을 수 있다.
TCI 검사는 결과를 보는 게 낯 뜨거울 정도였는데, 일부만 가져오면 아래와 같다.
힘든 일을 꾸준하게 해내서 무언가 성취해 내려는 마음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강제적으로 교사에게 부당한 책임이 많이 지워지는 상황 때문에 반발심이 들어 돈 받은 만큼만 일해야지 라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점점 무엇을 위해 가르치고 있는지 목적의식이 희미해졌다.
스스로에 대한 유능감도 많이 떨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교직에 대한 회의, 가르치는 일에 대한 자신감 하락, 그리고 허구한 날 스마트폰만 붙잡으며 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 총체적으로 결합되어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많이 낮아진 상태였다.
거진 10년 전에 대학생활문화원에서 TCI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에는 자극추구가 높아 일을 벌이는 것은 좋아하는데 걱정도 많은 편이라는 결과를 받았었다. 엑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사람이라나? 다시 검사를 해 본 결과는 이전과 사뭇 달랐다. 이제는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걱정은 여전히 많다.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어 그냥 브레이크를 꾹 밟고 있는 모양새였다.
게다가 친밀감은 높은데 자립성이 많이 부족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이 매우 중요하지만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어려워한다. 책임을 피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문장완성검사에서 내 글씨체가 일관되게 아주 정갈하고 또박또박하다고 하였다. 자기 통제의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안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억지로 엄하게 자신을 다잡고 있는 거라나?
음..! 내 성격이 이따구라니, 꽤 심각하게 여겨졌다. 그동안 심리 검사를 살짝 피해왔던 이유 중 하나는 굉장히 별로인 나의 모습을 직면해야 할 것 같아서였는데 결국 맞닥뜨리고 말았다. 이 정도로 낮은 인내력은 드물게 보인다며 약간 당황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담 선생님의 표정이 자꾸 재생된다. 게다가 인내력은 어떻게 바꿀 수 없는 기질 요소이다. 이걸 어쩐담. 위대한 쇼맨의 배우들은 당당하게 This is me! 라 외친다만, 일단 나부터 이런 나를 받아들이고 싶지가 않다.
타고난 기질이 토양이고 성격은 그 위에 자란 식물에 비유한다면, 내 기질은 거의 황무지 급이었다. 내가 기질 흙수저라니.. 조금 더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마음을 잘 가누려고 심리 상담을 신청했는데 뒤통수가 얼얼하다. 심리 상담, 이대로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