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3회기, 문장 완성 검사를 뜯어 보다
지난 회기 상담에서, 거의 연체동물이 될 정도로 내 성격과 기질의 적나라한 실체(인내력 하위 1%.....!)가 까발려졌다. 상담을 받고 한 주 동안 지내면서 뭐랄까, 오기가 생겼다. '나 안 그런데? 나 바뀔 건데? 지금 좀 힘들어서 이렇게 나왔을 거야.'
아니나 다를까, 3회기 상담은 지난번 심리 검사 해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냐는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내 성격(기질)이 이렇게 엉망진창이라고 고정시키고 싶지 않아요, 이 성격 이 기질대로 평생 살면 인생이 좀 고달플 것 같은데... 약간 과장 되게 나오지 않았을까요? 등 횡설수설 답했더랬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에 지난번 상담에서는 실시한 네 가지 검사 중 문장완성검사에 대해서는 흘깃 눈길만 주고 넘어갔다. 그래서 이번 상담에서는 문장완성검사지를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문장완성검사는 내 생각과 관심사를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이기 때문에 특정한 주제에 대해 더 깊게 들어갈 수 있었다. 몇 가지 문장을 살펴보자 그동안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있던 것이 드러났다.
4. 나의 장래는_______
18. 내가 보는 나의 앞날은 ________
30. 나의 야망은 ________
28. 언젠가 나는 ________
42. 내가 늙으면 _______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위 문장들을 보며 어떻게 빈칸을 채웠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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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문장이다.
4. 나의 장래는 답답하다.
18. 내가 보는 나의 앞날은 알 수 없다.
30. 나의 야망은 10만 명을 살리는 것이'었'다.
28. 언젠가 나는 행복해지겠지?
42. 내가 늙으면 지구가 멀쩡할지 모르겠다. 기후위기 시대에 노년이면 퍽 고달프겠다.
그렇다. 나는 미래에 대한 낙관을 잃어버렸다. 30번 문장도 10만 명을 살린다니 언뜻 보면 좋은 목표라 생각할 수 있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이 문장에서 멈칫거리다가 고등학생 시절의 비전을 과거형으로 적어내었다. 옛날의 야망이다. 다시 말해, 지금은 야망이 없다는 뜻이다. TCI 검사에서 나왔던 낮은 자율성, 낮은 인내력과 다 연결이 되고 있었다. 나의 야망은 없다!라고 쓰기 민망하니 우회적으로, 그리고 방어적으로 저리 썼나 보다.
교직의 전망이 어둡고 점점 더 처우가 악화되고 있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교권 하락을 뼈에 사무치게 느꼈지만, 교직 사회를 넘어 대한민국 사회와 전 세계에 대해서도 암울한 미래만이 인류를 기다리고 있다 생각했다. 여름~가을 무렵에 유독 안타까운 소식과 화가 머리끝까지 나게 되는 소식, 인간성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되는 소식들이 많이 전해진 것 같다. 뉴스를 볼 때마다 감정 소모와 인류애 휘발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졌다.
지금도 힘든데, 미래에는 더 힘들어진다니, 이렇게 기진맥진한 지금이 내 인생의 가장 좋은 날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하니 매사에 의욕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조금은 본질에 가까워진 회기였다. 영문 모를 가라앉음의 영문 한 조각을 찾았다. 이제 나머지 조각들을 찾을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