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지롭다 Dec 20. 2023

습관적 '괜찮아요'는 이제 그만

상담 4회기

마음이라는 것이 참 재미있게도, 하룻밤을 지내면서 조금은 감정의 정리가 되었다. 학폭 사건은 내 삶에서 항상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드물게, 가끔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에 이 사건의 특수성에 대해서도 이해한다. 지난밤의 쓰레기통에 시간 버리기는 일상을 벗어난 상황에 대한 보호 반응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상담 선생님에게 학폭 때문에 어제는 하루를 망쳤다고 이야기했다. 좀 열심히 지내보려고 마음을 다잡던 차에 이런 사건이 터진 게 맥이 빠졌다. 상담사는 이 일로 인해 교직에 대해 더 회의감이 드냐고 물었다. 음.. 드나? 사실 학폭위를 열기로 결정하고 생활부장에게 일이 넘어간 뒤에는 내가 할 일이 정말 없었다. 힘든 업무를 맡게 된 생활부장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상담 당일, 그러니까 학폭 사건이 터진 다음날 가해 추정 학부모와 통화한 다음에 부르르 떨리는 분노가 있기는 했다. 그런데 상담에 오니 격렬했던 감정을 어느 정도 처리한 다음에 또다시 온화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뭐, 이제는 괜찮아요.


상담사는 내가 힘든 일을 겪고 그에 대해 힘든 정도를 많이 드러내지 않는 편이라고 재차 말해주었다. 그렇게 몸이 떨릴 정도로 답답하고 화가 났는데, 내가 그 사건에 대해 상담사에게 이야기를 할 때에는 미소를 지으면서 이야기를 한단다. 분노, 슬픔, 좌절, 어이없음과 같은 감정들을 내 안에서 한번 처리한 채로 그냥 이야기하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니 "괜찮아(요)."는 내가 자주 하는 말 세 손가락 안에 든다. 누군가 부딪혀도 "아쿠, 괜찮아요." 물건을 떨어뜨려도 "괜찮아, 괜찮아." 남편이 학교 일 힘들지 않냐고 걱정해 주어도 "괜찮아."


진짜 괜찮은지 아닌지 내 마음을 살펴보기도 전에 반사적 반응처럼 나온다. 불편하더라도 괜찮다고 말하고, 몹시 싫고 거부하고 싶더라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속으로 곪는 경우가 왕왕 있었던 것 같다. 속앓이를 하다 터지면 그 여파는 고스란히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갔다. 더 이상은 괜찮다고 말하지 못할 때 깊이 침잠해 갔던 것이다. 


그런데, 괜찮지 않다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건강하게 표현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을 수 있을까. 


어찌 되었건, 습관적 '괜찮아요'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자각이 들었다.


이전 05화 롤러코스터를 탄 일주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