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다

소설 <혼불>에 상상 더하기

by 헤일리 데일리

때는 바야흐로 1930년대 일제 강점기.

종갓집 종손부로서 이제 막 시집간 여인 효원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혼불 1권 내용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상황: 시어머니는 저고리 하나를 던져주며, 내가 입을 것이니 새로 지어오라고 며느리에게 일감을 주었습니다. 당황한 며느리는 그래도 최선을 다해 바느질을 해서 완성을 하죠.



효원은 굳이 시어머니의 다른 저고리를 하나 주시라고 하여 그 본을 보고 싶은 생각까지는 없어, 그냥 그네식대로 바느질을 해나갔다. (혼불 1, p.234)



그러나 바느질 고수인 시어머니에게 그 미션은 그저 며느리를 잡기 위한 노림수였고! 저고리를 보자마자 마음에 안 든다고 냅다 바닥에 던지고 역정을 냅니다. 하필 저고리는 흙탕물에 빠지고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쩜 시어머니 심보가 이렇게 고약할까'라는 생각에 화가 났어요. 그리고 며느리는 왜 당할 수밖에 없는지... 고구마 같은 전개에 가슴이 답답해졌죠. 그래서 제 상상력이 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저 시어머니가 MZ 며느리를 만났다면? 바느질감을 본 며느리는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요?
이걸요?
왜요?





요즘 우스갯소리로 떠돌고 있는 'MZ의 3요'에요. 직장에서 업무를 받았을 때 이렇게 떳떳하고, 확실하게 표현을 한다고 해서 3개의 '요'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농담으로 퍼지고 있는 것이니 MZ분들은 노여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주관이 뚜렷하고 자기표현을 잘하는 세대의 특징이죠.


억지를 써서 본인이 주도권을 휘어잡으려는 이 시어머니는 3요를 시전 하는 며느리를 만나봤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열과 성을 다해 저고리를 지어오는 며느리를 만난 걸 다행으로 여겼을 텐데요.


아쉽게도 저는 소심한 성격상 그렇게 못하기에... 이런 사이다 전개를 상상해 봅니다.




이번엔 같은 소설 속 다른 상황 이야기예요.


상황: 종갓집 종손인 강모. 그의 할머니는 손주인 강모가 아들을 낳기를 간절하게 바라십니다. 하지만 강모는, 가문과 대를 이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에서 벗어나고자 하고... 도피처로 일본 유학을 택합니다.

일본에 가서 바이올린 연주를 배우겠다는 강모. 결국 그 계획을 들은 아버지는 노발대발하고 바이올린을 부수죠.



여기서 언급된 할머니에게는 종손인 강모 외에도 문중에 강학, 강태 등의 손자가 있습니다. 만약 제가 할머니라면? 강모의 마음을 안 순간 손자들을 불러 모아서 가문을 이을 사람을 선출했을 것 같아요. 자발적으로 의지가 있는 사람, 그중에서도 경쟁에서 살아남은 아이를 가문의 대표로 뽑는 것이죠. 물론 손녀도 경쟁 체제에 포함입니다! 참고로 <토지>를 읽어보면 윤씨부인의 손녀 서희는 가문을 이어받아 대들보 역할을 멋지게 해내었습니다.


물론 전통과 대를 잇는 것이 중요한 일이지요. 하지만 이미 조선 후기엔 신분제가 많이 무너졌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회가 혼란한 시점에 적장자가 무슨 소용일까요. 목숨 부지도 어려운데 말입니다.


뭣이 중헌디.



신분적 차별이 있던 그 시절. 이 소설 속에서는 이씨 양반과 거멍굴 사람들로 극명하게 나뉘어, 하층민의 처절한 삶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지금 이 시절이 감사할 뿐입니다. 내가 그때 당시 거멍굴 사람이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기 때문이죠. 오늘의 대한민국에 감사하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