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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Jul 04. 2024

푸드 에세이를 써보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굴튀김, 나의 배추전처럼 

최근 한은형 작가의 "우리는 가끔 외롭지만 따뜻한 수프로도 행복해지니까" 를 읽었다. 푸드 에세이라고 해서 말랑말랑한 느낌일 거라 생각했고 정말 그랬다. 글을 못쓴 건 절대 아니었고, 재미난 생각도 가득하지만, ~했던 것이다. ~라는 것이다. 라는 말이 너무 자주 나와서 읽는데 불편함을 느꼈다. 그러나 오늘의 글은 이 책이 너무 재미있었다 혹은 너무 재미없었다는 감상을 말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다. 오늘의 글은 이 책을 계기로 글을 어떻게 써야하는지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썼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잡문집> 이라는 에세이에서 자신에 대해 정 쓸게 없으면 굴튀김에 대해 쓰는 데에서부터 시작해보라고 조언한다. 이 책의 좋은 영향도 바로 음식에 대해 쓰는 에세이가 이런거라면, 나도 쓸 수 있겠는데? 하는 이상한 자신감을 주는 데에 있었다. 


원고지 4매 이내로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제 생각에 그건 굳이 따지자면 의미 없는 설문입니다. 다만 자기 자신에 관해 쓰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예를 들어 굴튀김에 관해 원고지 4매 이내로 쓰는 일은 가능하겠죠. 그렇다면 굴튀김에 관해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 당신이 굴튀김에 관한 글을 쓰면, 당신과 굴튀김의 상관관계나 거리감이 자동적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끝까지 파고들면 당신 자신에 관해 쓰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이른바 나의 '굴튀김 이론'입니다. 다음에 자기 자신에 관해 쓰라고 하면, 시험 삼아 굴튀김에 관해 써보십시오. 물론 굴튀김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민스 커틀릿이든 새우 크로켓이든 상관없습니다. 토요타 코롤라든 아오야마 거리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든 뭐든 좋습니다. 내가 굴튀김을 좋아해서 일단 그렇게 말한 것뿐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중 
추운 겨울날의 해질녘에 나는 단골 레스토랑에 가서 맥주와 굴튀김을 주문한다. 그 가게에는 다섯 개짜리 굴튀김과 여덟 개 짜리 굴튀김, 이렇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정말 친절하다. 굴튀김을 많이 먹고 싶은 사람에게는 굴튀김 큰 접시를 내어준다. 조금만 먹어도 되는 사람에게는 굴튀김 작은 접시를 내어 준다. 나는 물론 여덟 개짜리 굴튀김을 주문한다. 오늘 나는 굴튀김을 배불리 먹고 싶으니까. 
굴튀김에는 잘게 채 썬 양배추가 푸짐하게 곁들여 나온다. 달착지근하고 신선한 양배추다. 원하면 추가로 주문할 수도 있다. 추가 요금은 오십 엔이다. 그러난 나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나는 정말로 굴튀김 그것이 먹고 싶어서이지 곁들어나온 양배추를 먹으로 온 게 아니니까. 처음에 수북이 담아준 양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접시 위의 튀김옷에서 아직도 지글지글 소리가 난다. 작지만 아주 멋진 소리다. 내가 보는 앞에서 주방장이 막 튀겨냈다. 큼지막한 기름 냄비에서 내가 앉은 카운터 자리까지 옮기는데 불과 오 초도 걸리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는 - 예를 들어 싸늘한 해질녘에 갓 튀긴 굴튀김을 먹는 경우에는 - 속도는 큰 의미를 가진다. 
젓가락으로 그 튀김옷을 둘로 툭 자르면, 그 안에 굴이 여전히 굴로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겉보기에도 굴이고, 굴 외에 그 무엇도 아니다. 빛깔도 굴이요, 형태도 굴이다. 그것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느 깊은 바닷속에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꼼짝도 않고, 밤낮도 없이 단단한 껍데기 속에서 굴다운 것을 (아마도) 생각하며 지냈다. 그런데 지금은 내 접시 위에 있다. 나는 무엇보다 내가 굴이 아니고 소설가라는 사실이 기쁘다. 기름에 튀겨 양배추 옆에 누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쁘다. 내가 일단 윤회전생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도 기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다음 생에 굴이 될지도 모른다니,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것을 차분하게 입으로 가져간다. 튀김옷과 굴이 내 입 안으로 들어간다. 바삭한 튀김옷을 씹을 때의 감촉과 부드러운 굴을 씹을 때의 감촉이 당연히 공존해야 할 식감으로 동시에 감지된다. 미묘하게 뒤섞인 향이 축복처럼 입 안에서 퍼져간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나는 굴튀김을 음미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짬짬이 맥주까지 마실 수 있다. 그런 것은 한정된 행복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당신은 말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최근에 내가 한정되지 않은 행복을 맛본 게 언제였을까?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한정되지 않은 것이었을까?
나는 생각해본다. 그러나 결론은 좀처럼 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도 얽혀 있기 때문에 그리 간단히 결론지을 수는 없다. 굴튀김 안에서 무슨 힌트라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나는 한동안 남은 굴튀김 세 개를 골똘히 응시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나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중

한은형 작가의 푸드 에세이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굴튀김론을 듣고 있으면 어떤 음식을 가지고 자신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생겨난다. 그리고 내 인생에 중요했던 음식은 무엇이었는지, 그 음식을 먹을 때의 공기는 어땠고, 그 맛은 어떻게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는지를 계속해서 생각하게 된다. 음식은 그 날의 기분을 좌우하고 나아가 나의 인격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나에 대해 설명하고 싶을 때 굴튀김에서부터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 


아래의 글은 굴튀김론과 한은형 작가의 에세이를 접한 후 영감을 받아 쓴 나의 배추전 에세이이다. 흥미롭게 읽어주셨으면 한다. 


<배추전과 해방감의 상관관계> 

명절 전날이 되면 우리 가족은 여느 가족과 마찬가지로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전을 부친다. 시장에서 생선과 배추, 오징어 등의 재료를 사와 깨끗이 손질하고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 그 위에 집안에 있는 모든 부르스타와 프라이팬을 알맞은 자리에 셋팅한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해두어도 전을 모두 부친 다음날이면 바닥에서 기름 냄새가 올라오고는 한다. 갖은 재료로 부친 전이나 튀김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요리는 배추전이다. 특히 갓 부쳐낸 따뜻한 배추전과 다 식은 배추전은 그 어떤 전보다 큰 맛의 차이를 보인다. 생선이나 다른 재료는 튀긴 후 그 다음 날이 되어도 재료의 짭짤함이나 튀김옷의 고소함이 오래 유지되는 편이지만, 배추의 경우에는 그 바삭함과 고소함, 단맛이 부쳐낸지 몇시간만 지나도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토록 전쟁같은 전부침의 노동 현장에서 갓 부쳐낸 배추전을 먹기 위해 주의를 기울인다. 


배추전은 꽤나 쉽게 만들 수 있다. 부침가루와 물을 섞어 적당히 묽은 반죽을 만들고, 거기에 소금을 쳐서 살짝 짠맛이 나게 조정한다. 배추 이파리 하나를 통째로 반죽에 풍덩 빠뜨리고 조금 덜어낸 다음 식용유로 달궈진 팬 위에 배추를 올리고 구워내면 된다. 완성된 배추전은 사각사각 정사각형 모양으로 잘라 고춧가루, 식초, 간장, 쪽파, 올리고당을 섞은 양념장에 푹 찍어먹는다. 요즈음은 전과 함께 낮에 간단하게 막걸리 한 잔씩을 곁들이는 풍습도 생겼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부터 우리집안에는 무언가를 제재하거나 어떤 행동을 못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크게 없어졌다.  우리 여기에다 막걸리도 같이 먹으면 안 될까? 라고 내가 제안하면 이견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갓 구워낸 배추전과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명절 전날 오후 네시. 흥이 조금씩 올라온다. 노동 현장 역시 서서히 마무리를 향해 달린다. 


전을 부치는 일은 할머니, 우리 어머니, 그리고 숙모 세 명의 일이었다. 나는 도우려 해도 설거지나 필요한 도구 옮기기, 노동자들을 위한 커피 타기 등의 부차적인 일만 해왔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결혼 하면 실컷 할 일이"라며 내가 노동하려 하면 한사코 말렸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기대에 반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고, 덕분에 서른이 넘어서까지 명절에 고향에 얌생이처럼 내려와 배추전이나 홀랑 집어먹는 손녀가 되었다. 예전에는 배추전만 먹었다지만, 이제는 막걸리까지 홀로 콸콸콸 머그컵에 쏟아내 들이킨다. 


나는 요즘 고소한 맛의 막걸리에 빠져있다. 느린마을 막걸리가 대표적인데, 장수 막걸리나 지평 막걸리와는 달리 약간은 크림 같은 질감을 가지고 있으며 맛 역시 조금 더 고소하고 달달하다. 막걸리와 같은 술은 깔끔한 느낌으로 먹을 수 없기 때문에 향이 아닌 질감과 맛으로 골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무튼 그렇게 갓 구워낸 전과 느린마을 막걸리는 참으로 조화롭게 어울린다. 살짝 그을린 배추의 이파리 부분을 양념장에 찍어 한입 물어내고 막걸리를 함께 들이킨다. 따뜻한 배추전과 시원한 막걸리의 쾌감은 익히 경험했으면서도 다시금 오감을 즐겁게 한다. 그렇게 흥이 살짝 올라오면 가족간의 대화에도 시덥잖음과 유쾌함이 더해진다. 


할아버지는 9년 전, 그러니 내가 스물 둘일 때 돌아가셨다. 낚시를 즐기고 하얀 바지를 즐겨 입으시는 멋쟁이셨다. 그러나 가장의 위엄을 그래도 지켜야한다고 생각하셨는지, 엄청나게 따뜻하거나 유쾌하게 이야기를 건네신 기억은 별로 없다. 그는 내가 좋은 대학에 간 것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서울대나 연세대에 가지 못한 일을 안타까워하셨다. 도무지 서울대에 갈 성적이 되지 못했던 나는 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슬퍼했었다. 그는 꽤 오랜 기간 투병 생활을 했고 마지막에 암이 급속하게 퍼져서 사망하였다. 그리 나이가 많지는 않았다. 나는 할아버지의 돌아가신 나이도 잘 모른다. 할머니는 60대에 과부가 되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우리는 부쩍 아무렇게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술을 한잔 곁들이기도 하고, 그의 장례식이 끝난 마지막 날에는 다같이 모여 교촌 허니콤보를 배달시켜먹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생전에는 집에서 할머니가 요리한 음식을 먹었던 기억이 거의 다였다. 나는 상실감과 함께 약간의 해방감도 느꼈다. 그의 기준에서 그렇게까지 좋지는 못한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자유로움의 강도도 커졌다. 직장생활을 하는 나에게 뭐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내쪽에서도 가족의 기대에 그다지 부응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어떤 도리를 완수해야겠다고 생각하지도, 특정 나이가 되었으니 결혼을 서둘러야 한다는 압박감도 크게 느끼지 않았다. 아마도 집안의 어른이었던 할아버지가 계시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나는 '시집가면 실컷 할테니 전부치는 건 시키지 말자'며 묵묵히 전을 부치는 어머니의 옆에서 갓 부쳐낸 배추전을 홀랑 집어갔다. 정사각형으로 뜨거운 배추전을 자르고, 막걸리를 콸콸 따라 아버지와 잔을 부딪힌다. 티브이에는 가정을 버려두고 자연을 찾아 떠난 남자의 섬 생활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자연으로 돌아간 그 남성을 짐짓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찰한다. 나는 더이상 죄책감을 느끼는 대신, 익숙한 쾌락에 빠지기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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