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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Feb 26. 2022

[죽은 자의 집 청소] 누군가의 존엄한 마지막

검은색 넥타이와 길에 늘어선 화환, 육개장과 똑같은 브랜드의 알로에 주스. 두번 절을 하고 향을 피운다. 완장을 찬 검은색 양복의 중년 남성, 하얀색 머리핀을 꽂고 분주하게 음식을 나르는 여자들. 한국의 장례식은 하나같이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직장 상사가 상을 당했다. 갑자기 사내가 분주해졌다. 차기 임원이 될 거란 소문이 자자하던 사람이었다. 조문 봉투가 이리저리 복도를 오갔다. 그를 따르던 팀원들은 3일 내내 장례식장을 지키겠다고 했다. 고인의 얼굴을 한번도 본 적이 없으면서도 장례식장을 지키는 것은, 장례식장은 죽은 자를 위한 자리가 아닌 살아있는 자를 위한 자리이기 때문이며, 그 살아있는 자가 권력을 가진 자이기 때문이리라. 


권력을 가진 자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곳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장례식장은 한국에서 가장 가부장적인 문화가 남아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딸을 두명 둔 아버지가 고인이 되었을 때 사위가 상주를 차게 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운구와 조문객을 맞는 역할이 자연스레 양복을 입은 남자에게 돌아가는 모습은, 육개장을 나르는 여성의 어떤 사회적 지위를 무시하는 역할을 한다. 고인을 위한 장례식이 아닌 살아남은 이를 위한 장례식 문화가 계속되는 것도 인간을 하나의 개별적 존재로 보기보다 어떤 가족관계의 한 부분이라 보는 전근대적 문화가 잔존해있는 결과일 것이다. 


정상 가족이라는 말이 구태의연한 말으로 취급되고는 있지만, 아직 한국은 정상 가족 밖의 개인을 상상하고 배려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의 장례 관련 법률은 장례를 치를 수 있는 대상을 고인의 직계 가족과 형제로 한정하고 있다.  조카나 친구가 대신 장례를 치뤄줄 수 없으며, 관련하여 2021년 무연고 사망자의 70%가 사실은 완전한 무연고가 아니었다는 기사도 발간되었다. (관련영상) 가족이 없는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별도의 장례 절차가 없으며, 시신을 처리하는 절차만 수행한다. 


과거 한국은 연도 없이 죽은 사람의 존엄성까지 챙길 여유가 사치인 국가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산업이 발전하고 습관처럼 외쳤던 빨리빨리가 드디어 통한다고 생각했던 순간 한 쪽에서는 곪아가는 마음들이 있었다. 여성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제대로 책임지지 못했다. 돈이 없거나 모종의 이유로 정상 가족으로부터 밀려난 사람들은 존엄함을 챙기지 못했다. 정상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단단하게 만들수록, 그 밖의 사람들은 추운 삶의 마지막을 보낸다. 한국의 노인 중 40% 가까이에 되는 인구는 빈곤 상태다. 1인가구 청년 고독사는 증가하고 있다. 임원 아들을 둔 고인은 아들 부하 직원의 시중을 3일 내내 받을 수 있으나, 가족과의 연이 끊긴 사람의 시체는 그 누구도 제대로 수습해주지 않는다. 


김완 작가의 <죽은 자의 집 청소>는 특수청소부로서 고독사를 맞이한 사람의 자리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죽은 자리를 완전히 밀폐하고자 했던 사람, 방을 쓰레기더미로 채운 사람, 고양이의 시체와 전기가 끊긴 방,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죽은 후 청소 견적을 물었던 남자. 이들과 우리는 과연 다를까. 나는 몸과 마음이 지친 어느날 방을 가감없이 어질렀던 내 모습과, 부모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무시하고 이불 속으로 침잠했던 밤을 기억한다. 우리 모두는 세상 앞에 약해질 때가 있다. 


누군가는 감정을 벗어버리고 냉정해지라고 말할지 모른다. 세상은 원래 그렇게 무서운 거에요. 사회는 원래 이렇게 냉정하고, 불평등합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요 몇년 새 그런 메시지가 팽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TV 드라마를 통해 극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즐겼고, 강자의 거침없는 flex에 환호를 보냈다. 나는 그 모든 장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원룸에서 홀로 죽어갔다는 청년의 배달음식을, 중년의 소주병을, 노인의 재활용 박스를 떠올리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정해지기란 참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치 마소서(시70:5)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 자니라(잠17:5)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에게 있도다 (마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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