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하루의 끝에 나에게 줄 수 있는 선물로 가장 멋진 것은 무엇이 있을까? 평소 갖고 싶었던 물건을 살 수도, 즐겨 걷던 공원을 걸어도 좋을 것이다. 어떤 이는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 놓고 알몸으로 몸을 힘껏 늘어뜨리기도 한다. 나는 힘든 일이 계속된 날이면 마트에 가서 5만원어치 장을 본다. 와인 한병에 치즈, 바게트, 문어나 새우 등을 가득 담고 집에 돌아온다. 프라이팬을 달구고 올리브유를 둘러 마늘과 고추, 토마토를 볶는다. 향이 올라올 때쯤 해산물 겉을 익힌다. 치즈를 접시에 담고, 와인을 한잔 따른다. 그 모든 수고스러운 일을 하는 도중에 일에서 겪었던 자괴감이나 자책감 같은 것들이 옅어진다. 그래 뭐 이정도면 살만하지. 정말로 살만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오늘은 슬픔을 위로하는 음식에 대한, 그것도 한국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H 마트에서 울다>는 암으로 한국인 어머니를 잃은 후 H 마트에만 가게 되면 울게 되는 이유에 대해 쓴 한국계 미국인 뮤지션 미셸 자우너의 에세이이다. H 마트는 한아름 그룹의 슈퍼마켓 체인으로 한국 및 동양계 식료품을 취급한다. 어설픈 라면이나 녹차 모찌만 진열된 미국에서 제대로 된 미역과 콩나물, 붕어싸만코를 살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라고 봐도 무방하다. 암으로 어머니를 잃은 저자는 H 마트에서 "어떤 미역을 사야 하는지를 물어볼 사람을 잃은 지금, 내가 과연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를 질문한다. 단순히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넘어 모성애 대한 속깊은 이야기와 한국/미국 사이의 겪은 문화적 혼란 등을 다룬 이 에세이는 '21년 5월 발간 이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및 버락 오바마의 추천 도서 리스트에 오르며 유명세를 타고 있다.
<기생충>의 열풍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듯 한국계 작가/연출자의 콘텐츠가 최근 3년간 메이저한 관심을 받고 있다. 넷플릭스 전세계 1위 자리를 거머쥔 <오징어 게임>이 식상해질 때쯤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가 애플 TV 오리지널 시리즈로 기획되어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기생충>과 <오징어게임>이 계층적 갈등을 다뤘다면, <파친코>와 <H 마트에서 울다>는 보다 사적인 갈등을 다룬다. 고향을 떠나 흩어진 가족원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화적 갈등, 진보하는 세계에서 어딘가 모자라 보였던 부모 세대. 그 중심에는 뒤틀린 마음을 가진 한국인 어머니의 사랑이 있다.
저자의 어머니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지긋지긋한 어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사랑과 온화함으로 가득하기보단 어딘가 꼬여 있고 한이 맺혀 있다. 머리카락을 연신 귀 뒤로 넘기며 살을 빼라느니 피부를 가꾸라느니 지적을 일삼았던 그녀를 우리는 자주 미워했다. 어린 미셸은 백인 친구 니콜 가정에 방문하는 날 그녀의 어머니와 백인 어머니가 얼마나 달랐는지를 체감한다. 친구 같은 엄마와 딸. 커리어와 가정 생활 모두를 완벽하게 유지하는 백인 여성을 보며 그녀는 집 안에만 있는 어머니를 남몰래 부족하다 판단한다.
어떤 모성이 완전하겠냐만은, 한국의 모성은 그 중에서도 특별한 구석이 있다. 가정에 소홀할 수 밖에 없었던 근로 환경/ 자식의 교육 수준에 따라 일정 성과가 보장되는 사회 풍조는 자식에 대한 소유욕과 지나친 간섭으로 이어졌다. 정해진 길을 벗어나는 데에 대한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 자식의 세속적 성공을 맡겨놓은 것마냥 구는 동양인 부모의 이기적인 모습은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에 단골로 등장하는 웃음 소재다. 다시 말해 우리는 그동안 웃기에 바빴다. 그들의 사랑을 멸시하고 시대가 더이상 그렇지 않다면서 코웃음치기만을 반복하고는 했다. 그러나 <파친코>와 <H 마트에서 울다>에 등장하는 촌스러운 어머니의 일생을 따라가다 보면 그 모든 행동에 사실 사랑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H 마트를 읽다>를 읽으며, 결국 내가 경험한 가장 커다란 사랑은 무조건적인 천사의 사랑이 아니라 모자라지만 사랑스러운 인간의 사랑에 불과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저자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먹였던 수많은 한국 음식을 떠올린다. 기름진 갈비탕, 시원한 미역국, 대학 기숙사로 배달되던 즉석밥, 라면과 할머니 냉장고에서 꺼내먹던 반찬들. 어머니의 사랑에 화답하고 싶어 "Jinjja masisseo!"라고 얼굴을 찡그리던 순간. 저자는 어머니의 죽음 후 묘비 문구 중 하나인 "Loving"을 "Lovely"로 수정한다. 그녀의 사랑이 완벽했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충분히 사랑스러웠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한 것이므로.
그리고 우리의 사랑도 대부분 그렇지 않은가? 완전한 인간에게서 받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현실에 있기나 했던가? TV 광고 속에 나오는 것처럼 구김살 하나 없는 웃음이 과연 사랑의 전부였던가? 책은 독자로 하여금 내가 받았던 혹은 누군가에게 주었던 불완전한 사랑을 자주 떠올리게 한다. 불완전한 채로 사랑받고 싶어 상처를 보였던 순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해 비밀을 남겨놨던 모습들. 완전하게 표현하지 못한 감정과 언어의 자리에는 우리가 좋아했던 음식이 남는다. 그녀는 엄마를 기억하기 위해, 혹은 한국인으로서의 모습이 자신 안에 남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김치를 담그고 잣죽을 끓인다.
책은 따뜻하고 모범적인 사랑을 그리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결점을 계속해서 지적했던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어 몸부림치던 딸. 낯선 타국에서 딸 하나만 보고 버텼던 어머니, 그리고 그 둘과 그다지 가깝지 않았던 아버지. 나는 이 책을 읽고 문득 엄마를 향한 딸의 사랑이, 딸을 향한 엄마의 사랑보다 더 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스개소리로 "딸은 엄마를, 엄마는 아들을, 아들은 아내를 사랑한다."고 중얼거리며 나의 엄마를 떠올렸다. 우리의 사랑이 만약 책으로 쓰여진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딸은 지랄맞다고, 엄마는 무뚝뚝하다고 손가락질을 할까? 나 역시 이상한 사랑을 누군가와 주고 받고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도 있을까? 어쩌면 사랑하는 만큼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싶은 욕망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상하고 가학적인 가족의 역학관계에 빨려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피곤하고 진절머리나고 때로는 견딜 수 없어도,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