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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Nov 15. 2020

세상을 떠나고 싶은 날이 많아지면

비혼 여성에게도 미래가 있나요? 

얼마 전 트위터 타임라인에 슬랩의 '조용한 학살이 시작되었다'라는 동영상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90년대생 여성들의 자살률이 다른 세대에 비해 굉장히 높아, 이것이 세대 하나의 특징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저도 얼마 전 갑자기 문득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어, 이 동영상을 보며 괜히 마음이 더욱 불편해졌습니다. 이상한 것은 그리 힘들다고 말할 수 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음에도 그런 생각이 주기적으로 든다는 점이었습니다.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회사에 다니고, 가족과 친지는 모두 무탈하며, 친구 관계도 좋은데 말이죠. 오히려 재수를 결심했을 때나 취업 준비를 할때는 지금보다 훨씬 마음이 힘들었는데도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마음이 특별히 힘들지도 않은데 그냥 제가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자살을 하고 싶다'라기보다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말이 더 정확한 것 같습니다. 특별히 힘들지는 않지만, 그냥 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감각이라고 하면 이해하실까요. 


동년배 여성 코미디언의 자살 소식을 접하면서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왜 그렇게 그만두고 싶었을까, 어떤 괴로움이 있었을까, 자꾸만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유명인들의 자살 소식 이후에 '우울한 느낌이 든다면 여기로 전화하세요'라는 TV 광고가 나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친구가 한명 사라진 기분, 그녀가 겪었던 세상의 무거움이 나에게까지 전이되는 기분. 


우리에게 미래가 있나요? 


이런 마음이 계속 드는 건 아마도 더이상 기대할 미래가 없기 때문일 겁니다. 재수를 할때나 취업 준비를 할 때는 불안하고 괴로운 마음이 들었어도 다음에 할 일이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공부하는 것이 고통스러워도 대학에 입학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달성했을 때 나는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취업 준비를 할 때에도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하루 빨리 취업을 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간절하게 무언가를 원하고 있는 사람은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에게는 딱히 그런게 없네요.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대로, 부모와 사회가 정상이라고 말하는 상태로 도달하기 위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지만, 이제 다음 이뤄야 할 목표가 사라진 느낌입니다. 개인적으로 결혼을 하고 싶지 않은 비혼 여성이라 더욱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일에서 어떤 성취감을 얻기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고, 그렇다고 개인적인 뭔가를 이뤄내기엔 퇴근 후 시간이 마땅치 않습니다. 어떤 돌파구가 없이 나 혼자 꽉 막혀버린 길을 뚫고 나가는 기분. 나만 혼자서 이렇게 애쓰면서 삶을 유지하고 있다는 감각.


사실 이뤄내고 싶은게 없는 건 아닙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저도 제 집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높아져버린 전셋값과 아파트값을 보면서 그 목표를 입에 올리기조차 힘들어진 것이 현실입니다. 안정적인 월급쟁이에게도 자기 힘으로 집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결혼을 해서 청약에 당첨되거나, 고소득 직종의 남자를 잡아(?) 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을 하거나. 둘다 딱히 제겐 끌리지 않는 선택이네요. 우리 사회의 집 마련이라는 것은 결혼해서 정상 가족을 꾸리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무엇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슬랩의 위 동영상에도 제가 겪는 종류의 막막함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국가가 가족 단위의 복지를 늘릴수록 여성 청년의 자살률이 증가한다는 통계자료를 인용합니다. 국가가 자신을 다른 이들과 동등한 구성원으로 대우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사회입니다. 마치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 집을 마련하거나 정부 정책의 지원 대상에 포함되기 위한 하나의 허들처럼 느껴집니다. 코로나19 피해를 지원하기 위한 재난지원금 역시 개인이 아닌 가구 단위로 지급되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결혼과 출산, 그리고 자녀를 가진 주재원을 위한 혜택이 잘 되어 있기로 유명합니다. 아이를 낳지 않거나 가족을 꾸리지 않는 직원은 회사로부터 월급을 덜 받고 일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새로 태어나는 아이와 가족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주는 정책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저와 같이 인생을 홀로 근근히 버틴다고 느끼는 90년대생 여성들이 아주 많다면, 그리고 인생의 막막함이 대책없이 뛰어버린 부동산 가격과 가부장적인 사회로 인해 더욱 크게 느껴진다면, 뭔가가 바뀌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삶을 끝내건, 한국을 떠나건, 모여서 눈물을 흘리건, 같이 집을 사건, 같이 집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국회 앞에서 시위를 하건, 어떤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장 쉬워 보이는 선택, 삶을 끝내는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겠지요. 시간과 공간이, 몸뚱이와 관계가, 즐거움과 행복조차도 분절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하나의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삶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아름답고 삶은 흘러갑니다. 태양이 뜨고 별이 집니다. 사람들은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고 싶은 날이 많아지면 단순하고 좋은 것들을 생각해 봅니다. 버티기 위해 뭐라도 글을 써 봅니다. 오늘도 저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무사히 잠에 들기를, 삶을 살아가기 위한 용기를 얻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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