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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Feb 16. 2021

[서평] 글로벌 그린 뉴딜

이제 정말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온다




바야흐로 지속가능성의 시대다. 그 전에는 환경/인권단체들에게서만 언급되던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이 주식 시장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신재생에너지 ETF가 등장하고, ESG가 매일경제 매거진 표지를 차지했다. 정말로 지속가능성이 돈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1970년대 침묵의 봄이 출간된 이후 국제사회는 계속해서 인류의 영속을 위해 어떤 액션 플랜이 필요한지를 고민해왔고, MDGs의 부분적 실패를 거울삼아 2015년 드디어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수립하였다. 그때부터 지속가능성은 단순히 환경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우리의 삶 전체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으로 자리잡았다. 이제는 조직도/콘텐츠도/산업도 '지속가능한지'를 따지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환경 파괴로 인한 외부 효과를 고려하는건 당연한 일이다.


'글로벌 그린 뉴딜'은 이 지속가능의 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설계해 나가면 좋을지 제시하는 제레미 리프킨 교수의 논픽션이다. 2019년 발간되어 신작이라 할 수는 없으나, 한국에서 그린 뉴딜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2020년 중반 부터이니 우리에게는 새로운 내용이 많다.


 새로운 것들은 삶 전체를 바꾼다

  - 물론 그 전체가 정말 전체는 아닙니다만


본래 뉴딜(New Deal)은 1930년대 미국의 경제 부흥을 위해 루즈벨트 대통령이 추진한 일련의 경제 정책을 이르는 말이다. 경제 재건을 위해 노동/금융/인프라 부문의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여 근본적인 변화를 추진한 정책의 총체를 뜻한다고 봐야 할 듯하다. 뉴딜 정책의 의의는 미국 사회의 생애주기 전반을 관리/감독하는 정책 및 기관을 새로 마련하였다는 데 있다. 뉴딜 이후로 미국 사회에서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고 일하는 환경이 체질적으로 변화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린 뉴딜은 지금까지 인류가 구축해온 산업혁명 이후의 산업 구조를 전면적으로 변화시켜, 앞으로의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한 새로운 산업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 이는 계속되는 탄소 배출과 그로 인한 기후 변화가 자연재해, 생태계 교란, 그로 인한 토양 황폐화 등의 문제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자는 방식대로 계속해서 삶을 유지해나간다면, 머지않아 인류 전체가 살기 힘든 환경에 놓일지 모른다. 마치 미국 대공황 이후 사회의 전반적 체질 개선이 필요했던 것처럼, 지구에도 메스를 들이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제레미 리프킨은 그 변화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산업의 변화만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록 탄소 제로 사회로의 전환이 주눅 들 정도로 과중한 과업이라는 광범위한 동의가 정치 스펙트럼 전반에 깔려 있기는 하지만, 지구상의 생명을 파멸시킬 수 있는 기온 0.5도 추가 상승을 막고 인류가 지구와 관계를 재설정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길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중략) .. 전 세계적인 그린 뉴딜 대중운동과 동시에 부각된 탄소 버블과 화석 연료 좌초 자산의 발생 전망은 향후 20년에 걸쳐 탄소 제로에 가까운 생태 시대로 인프라가 전환될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 탄소 버블: 탄소를 발생시키는 기업 및 자산이 시장에서 과대 평가된 상황

* 좌초 자산: 수요가 줄어들어 채굴되지 않고 남게 되는 모든 화석 연료 & 송유관 & 해양 플랫폼 & 저장시설 &에너지 생산 설비 및 모든 산업


사실 기후변화의 뚜렷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를 믿고 싶지 않아 하거나, 그리 급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나, 혹은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그리 쉽게 될 리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린 뉴딜이라는 아이디어가 실행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산업혁명 이후의 세계 역시도 인프라 건설에서부터 쌓아올린 인공적인 시스템일 뿐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공장의 전기화는 대량생산 제품의 시대를 위한 길을 열었다. 그러한 제품 가운데 중심은 자동차였다. 전기가 없었다면 헨리 포드는 저렴한 자동차를 제조해 수백만명의 미국인에게 제공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 증가한 연료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발생기의 석유산업은 탐사와 시추에 박차를 가하며 전국에 걸쳐 송유관을 깔았고 조립라인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백만 대의 자동차에 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소천개의 주유소를 세웠다.


작가는 현재 제조업의 기반이 되는 자동차 및 석유산업을 우리가 흔들 수 있다면, 많은 자본 및 산업 역시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자세하게는 연료 - 자동차(혹은 이동수단) - 인프라 - 주거로 이어지는 이 life cycle 전반을 우리가 탄소 제로화할 수 있다면, 인류의 대부분은 더이상 탄소를 배출하지 않고도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작가는 걷잡을 수 없이 성장해버린 소비사회에 대한 설명은 빠뜨리고 있다.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에서 저자가 주장했듯이 우리가 입고 먹는 모든 것은 지구를 병들게 하는데 일조한다. 제레미 리프킨은 이 소비사회(+유통)이라는 거대한 줄기를 배제한 채 주거 이동의 측면에서만 삶을 다루고 있다. 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본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꺼낼 수는 있으나, 한편으로 그가 구상하는대로 그린 뉴딜이 실현될 수만 있다면 우리가 기후변화를 획기적으로 늦출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자본주의는 그대로 놔둬라

   - 이상적 보수주의자, 한계일까 가능성일까?


이 책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바로 제레미 리프킨이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환경문제의 해법을 제시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사회적 자본주의', '새로운 자본주의'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개선되어야 할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는 기본적으로 자본은 지속가능성을 향해 움직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주식/투자를 좀 더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해 나간다면, 그린 뉴딜은 달성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몇몇 학자들이 자본주의 체제 하 기후변화 해결은 불가능할 것이라 예견하는 것과 달리, 꽤나 자본주의의 기능에 우호적인 모습이다. 정부 혹은 국제사회의 파워 게임 역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보았을 때 긍정적인 시나리오로 흘러갈 것이라 감히 예상하는 듯하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혹은 국제사회의 역할 이전에 산업 주체들의 자발적 행동을 강조하는 것, 경제 주체들이 이익을 쫓아 행동하면 사회 문제는 기업가정신 혹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 모두 굉장히 자본주의적인 마인드이다. 그는 심지어 세계의 노동자들이 전세계 자본의 주요 소유주가 되었다고까지 서술하고 있다. (대부분의 인프라 투자가 연기금으로부터 나오기 때문) 저 대목에서는 정말로 '뻥치고 있네'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환경과 진보를 외치지만 실상 자본주의가 그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치 더불어민주당 같은 보수주의자였던 것이다.


한편으로 이런 그의 보수적 접근 방식이 사실은 가장 많은 가능성을 내포한 해결책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예전 한 교수님은 진보가 겉보기에 굉장히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것 같아 보여도, 실은 굉장히 과거 집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해주신 적이 있었다. 가장 보수적인 사람은 그래서 가장 미래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우리가 기후변화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야,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아마 언제나 그랬듯 자본이 없는 사람/지역은 소외될 테지만)


'글로벌 그린 뉴딜'은 명확한 한계점을 갖고 있다. 기후 변화에 대해 지나치게 인프라 개선의 측면에서 얘기했다는 점, 행동자본주의의 너무 밝은 면만을 보여주며 마치 이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처럼 서술했다는 점 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현재 살아내고 있는 이 인프라를 어떤 방식으로 개선할 수 있는지 서술했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한 책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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