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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Jan 01. 2021

나의 2020년

어느 모범생의 새해맞이  

2018년의 마지막 날을 기억한다. 새해가 되는 순간 커다란 탁자에 앉아 깨끗한 다이어리를 폈던 순간을. 정해진 답이 있는 것처럼 2019년에 내가 할 일을 하나 둘 적어내려갔던 모습을. 새로운 시간의 탄생은 사람을 조금 더 살아있게 만들어준다. 나는 어디엔가 악에 받쳐 있기도 했고, 또 어딘가 행복으로 가득차 있기도 했다. 창밖의 해운대 바다는 나의 도전을 받아줄 듯 환하게 빛났다. 다이어리의 첫 페이지는 적군을 향해 달려가는 장군처럼 늠름한 모습을 자랑했다. 


2020년의 마지막 날은 2018년과는 많이 달랐다. 나는 탁자가 아닌 거대한 술상 앞에 앉아 있었다. TV에서는 좋아하는 영화 프로그램이 나왔다. 가게 점원이 추천해준 와인이 맛이 없었는데도 계속 잔을 채우고 싶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톡방이 새해인사로 시끌벅적한 뒤였다. 새해를 기념하지 못하고 술에 취해 있었다는 게 별로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2020년의 마지막 날이 게으르고 의욕 없었던 나의 1년을 요약하는 그림같이 느껴졌다. 


올해의 시작은 기쁨이었다. 새로운 공간과 사람들이 쏟아지는 하루하루가 벅찼다. 처음으로 내 힘으로 얻은 기숙사에 짐을 풀어놓고 괜히 아무것도 없는 창 밖을 핸드폰으로 찍었던 기억도 있다. 이제 회사에 다니니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고 어리석게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 괜히 어떤 셔츠를 입을지 갸웃거리는 시간이 즐거운 적도 있었다. 지금은 회사에 입고 다니는 옷 따위에 신경을 쓰지 않지만. 


그 기쁨은 한국 사회에서 요구한 일을 다 해냈다는 뿌듯함으로부터 왔다. 기억이 닿는 데에서부터 나는 어딘가로부터 무엇이 되라는 압박을 받아오면서 살아왔다. 그 압박은 무겁지만 때로는 안정적이어서, 충실하게 굴복하기만 하면 된다는 간편함이 있었다. 나에게는 항상 3년 단위의 다음 목표가 있었다. 중학교 1학년때부터 "더 좋은 곳으로 가야 한다"는 말으로 모든 학생들을 옥죄던 레이스는 포기하지 않고 달리게 해준 원동력이 되었다. 선생님들은 인자하게 웃어주었고, 대학 선후배들은 취업을 했다는 소식에 축하를 보내줬다. 그리고 2020년, 그 압박이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다. 3년 후 해야할 일이 정해지지 않은 무한대의 레이스, 아니 그냥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무한한 자유는 정제되지 않은 에너지로, 시간을 통제하지 못해 오는 나태함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기쁨은 얼마 가지 못해 공허함이 되었다. 매일이 어딘가 텅 비어버린 기분으로 가득찼다. 오로지 출근길 어스름한 햇빛이 행복이 되었다. 회사 건물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어딘가 다른 나 자신으로 무장하여 계속 에너지를 소모했다. 돌아오는 퇴근길에는 기쁨을 느낄 새가 없었다. 계속 영혼을 채울 음식을 찾으며 살았다. 입사 동기들이 부르는 술자리도 더이상 반갑지 않았다. 방 안에 틀어박혀 뭐라도 먹으면서 나를 채우기 바빴다. 


다시 한없는 욕심으로 가득차 공허함을 느낄 틈도 없었던 2018년 12월 31일을 떠올려본다. 그때 나를 움직이게 했던 것은 한국 사회의 그 레이스가 주는 안정성이었을지도 모른다. 교과서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문제집의 중요단 단어에 밑줄을 그었던 그때의 모습은 마치 끝없이 돌을 굴리며 그 돌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시지프스 같았다. 


모범생이었던 날을 고백하며 2020년을 보내주기로 했다. 단정하고 성실해서 계속 달콤한 칭찬만 받았던 날들을. 2020년은 나의 아름다운 모범생 시절을 보내줬기에 행복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2021년 세상의 모든 모범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새해 복이 아니라 더 많은 자유와 삐딱함일지도 모르겠다. 레이스 후 남아 있는 넘치는 에너지를 길바닥에 버리지 않기를 예수님과 알라신, 석가모니와 이름 없는 귀신들에게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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