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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Oct 24. 2021

Q. 기후 변화 대책은 얼마나 평등한가?

1965년, 일본은 한국에게 독립 축하금 명목으로 10년간 연 3000만 달러를 무상 지원하겠다고 약속하였다. 45년이 지난 지금, 일본 정부는 당시 지급한 3억 달러로 한국에게 갚아야 할 빚은 다 갚았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당시 일본이 지급한 비용이 위안부 피해자,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한 '전쟁 배상금'이 아닌 독립 축하금 명목으로 지급되었으므로, 해당 금액이 식민지배로 한국에 끼친 피해를 전부 커버하지 못했다고 반박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게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그 크기는 어느 정도인가"와 "국가 간 피해 보상을 할 경우, 어느 정도의 보상이 적절한가" 의 질문이 있다. 일본이 한국에 끼친 피해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 일본이 자본과 토지를 독점하면서 한국이 받은 경제적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 일본이 40년대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는 동안 빈곤에 시달려야 했던 한국에겐 과연 어떤 배상이 적절하다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과거사를 '잊으라'고 하지만, 사실 과거는 과거만의 이야기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과거의 과오는 한 국가의 번영과 다른 국가의 가난에 영향을 미친다. 



선진국은 기후 변화에 얼마나 많은 책임이 있을까? 


기후 변화와 관련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갈등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것은 18세기 말 부터이며, 인류는 1880년대부터 석탄으로 전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본격적으로 기후변화에 대해 논한 것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약 100년 간 서방 국가들은 환경 오염을 생각하지 못한 채 신나게 탄소를 배출했다. 그리고 지금은 당시 탄소를 배출한 나라들이 앞장서서 '탄소를 줄입시다'라고 국제사회에 외치고 있다. 마치 학생 두세명이 교실을 실컷 어질러놓고는 다른 친구들에게 "교실이 너무 더럽네, 이러다간 같이 살지 못하겠어. 우리 이제 같이 치울까?" 라고 말하는 꼴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은 국가는 중국이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탄소 배출량이 가장 높은 나라는 미국이다. 유럽 연합은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을 합하면(저 동영상은 2017년까지의 자료를 근거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배출된 탄소의 절반 이상은 서방에서 나왔다. 소득에 따라 탄소 배출을 나눠 봐도 마찬가지다. 기후변화와 관련한 가장 유명한 보고서인 '스턴 보고서'는 "소득과 역사적 책임, 1인당 배출량에 근거해 계산하면 부유한 나라들이 2050년까지 1990년 배출량의 60~80%를 저감할 책임이 있다."고 서술한다.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비해 지구온난화와 기후 변화에 더 큰 책임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제 선진국이 지구에 끼친 그 '과오'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의 문제가 남아 있다. 


교토의정서에서 파리 협정으로 -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해결 책임 


기후변화와 관련한 국제적 합의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교토의정서, 그리고 파리 협정이다. 


교토의정서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란 1997년 UN회담에서 채택된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규정한 국제 협약이다. 정식 명칭은 "기후 변화에 관한 국제 연합 규약의 교토 의정서"로 2005년 발효되어 2020년 만료되었다. 1990년대 수준 대비 5.2% 감축된 온실가스 배출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교토의정서가 UN 모든 국가에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과한 것은 아니다. UN 기후협약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에 따라 기후변화를 해결할 것임을 약속하고, 온실가스 감축 의무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국가별 차등을 두었다. 


위 사진에서 부속서 1에 포함된 국가들만이 교토의정서에서 1990년 대비 평균 5.2%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축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부속서 2에 속하는 국가들은 모두 부속서 1에 포함된 국가들이나 경제 수준이 더 높은 국가들인데, 이들은 유엔기후변화협약(1992년 제정)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적응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재정과 기술을 지원할" 의무가 있다. 반면 위 부속서 1, 부속서 2에 속하지 않는 비부속서1 국가들은 교토의정서 체제에서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교토의정서가 개발도상국에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우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1) 부속서 1,2에 속하는 선진국들이 지난 탄소 배출에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 이기도 하지만, 2)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탄소 배출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위 사진은 2009년과 2019년 각 발전원별 발전단가 (LCOE - 앞선 포스팅에서 설명한 바 있다)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보여준다. 2009년 석탄은 천연가스를 제외했을 때 가장 값싼 발전원이었다. 한창 경제 발전으로 인해 에너지 수요가 늘어나는 개발도상국으로서는 석탄을 이용한 발전이 필수적이었고,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은 비용이 많이 들었다.  


교토 의정서는 세계에서 가장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인 미국이 2001년 발표되기 전 탈퇴하면서 '반쪽짜리 기후협약'으로 불린다. 미국 뿐 아니라 캐나다(2011년)와 일본, 러시아(2012) 역시 연달아 탈퇴하면서 감축할 수 있는 탄소량 자체가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가입한 국가들의 탄소 배출 감축량은 2012년 당시 본래의 목표를 넘어섰다고 한다. 


파리협정 


파리협정은 2020년 교토의정서가 만료되며 새로 발효된 국제 기후변화 협약으로, 교토의정서를 잇는 새로운 기후변화체제대응 체제라고 볼 수 있다.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개발도상국의 탄소 배출 감축 내용이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교토의정서가 발효될 당시 경제규모는 컸으나 개발도상국이라는 이유로 탄소절감 의무를 지지 않았던 중국, 인도, 한국과 같은 나라도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을 제출해야 했다. NDC는 한국어로 '국가결정기여'로 번역될 수 있으며,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 국가별로 자발적으로 설정한 목표를 뜻하는 말이다. 특정 국가군을 정해놓고 해당하는 국가에게 탄소 배출 할당량을 정해주었던 교토의정서와 다르게, 파리협정은 국가들이 알아서 감축 목표를 설정하도록 하는 bottom-up 방식을 취했다. 전체 목표는 탄소배출으로 인한 온도 상승이 2도 이상 되지 않도록 탄소 배출량을 유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은 BAU유형의 목표로, 2030년 감축 노력이 없었을 경우 배출되는 탄소량보다 37%를 감축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일본과 EU등은 절댕량으로 기준년도에 배출된 탄소 대비 특정 비율을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NDC를 제출한 국가는 총 189개이고, 당사국이 아닌 국가는 이란, 터키, 에리트레아, 이라크, 남수단, 리비아, 예멘 등 7개국이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EU등 주요국이 모두 파리협정의 당사자이며 탄소 배출 목표를 제출하였다. 


교토의정서와 달리 파리협정은 모든 국가의 탄소배출 감축을 규정하고 있으나, 모든 국가에 대해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위 표를 보면 선진국들은 대부분 탄소배출 절대량을 감축해야 하는 반면, 개발도상국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목표 설정이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 책임 소재에서 자유롭지 않은 선진국들은 이전 수준의 탄소배출량보다 반드시 더 적은 양의 탄소를 배출해야 하지만, 비교적 책임 소재에서 자유로운 개발도상국은 반드시 그래야 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파리협정이 남겨놓은 문제들 - Are we leaving behind the poor?  


그렇다면 이제 개발도상국 입장에서 파리협정에 가입하고 탄소배출 절감을 위해 노력하는 정책 방향이 과연 경제성장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볼 시간이다. 파리협정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기후위기 대응이 개발도상국에게 더욱 불평등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19세기, 20세기의 환경오염 주범인 국가들에 의해 이미 기후 불평등이 심화되었는데, 개발도상국에게 탄소 배출 절감을 요구하는 지금의 국제체제가 더욱 그 불평등을 가중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UN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는 핵심 사상으로 Leave No One Behind를 내세웠다. 지금의 기후위기체제가 특정 사람들을 leaving behind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논의 역시 필요하다. 


1) 늘어나는 전기 수요, 저렴해지는 재생에너지 


전력 발전 측면에서 봤을 때, 개발도상국에게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은 긍정적일 전망이다. 2015년부터 개발도상국에 투입되는 재생에너지 관련 투자는 선진국을 능가하였다. BNEF(Bloomberg New Energy Finance)에 따르면, 개발도상국 국가들이 설치하는 재생에너지 설비도 2년 연속 선진국보다 많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은 태양 에너지를 많이 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발전 설비를 설치할 수 있는 넓은 부지를 확보하고 있다는 면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다.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는 현재의 추세처럼 2030년에는 중국/아프리카/중남미 지역의 에너지 수요의 절반 이상을 재생에너지가 차지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설비 건설 및 투자는 재생에너지의 증가하는 전기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고용을 창출하고 국민의 기초 생활수준을 높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다만 개발도상국 및 기후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2009년 국제사회는 개발도상국의 재생에너지 전환을 촉진시키기 위해 녹색기후기금(GCF)를 창설하고 연간 1000억 달러의 기후기금을 모으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모인 금액은 100억 달러 규모였으며, 그 중에서도 융통할 수 있는 자금은 70억 달러에 불과했다. UNEP의 기후변화 적응 보고서는 기후변화를 위해 필요한 금액이 연간 700억 달러 규모에 해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현재 국제사회는 해당 문제 해결을 모두 사적 영역(투자)에 맡겨놓은 것이나 다름 없다. 현재 재생에너지 발전/인프라 구축 부문이 집중 투자를 받고 있다고 해서 기후 난민과 기후변화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피해 보상을 해주는 것은 아니다. 


2) 탄소세를 위시한 국제고립주의, 이대로 괜찮을까? 


두번째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기후변화를 빌미로 한 무역 장벽의 건설이다. 지난달 유럽연합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탄소국경세'를 도입한다고 밝혔으며, 미국 워싱턴에서도 탄소세 관련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은 해당 조치가 기후변화를 빌미로 한 '그린 워싱'이며, 필요시 무역 조치를 통한 다른 보복 조치가 있을 수 있음을 공표하였다. 이에 맞서 중국은 철강 수출세를 도입하고 수출 환급세를 폐기하며 자국 내 제조업을 보호하고 나설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최근 나타나는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결국 기후변화는 명분일 뿐 자국 산업 보고가 각 국가의 궁극적인 목표였는지 아쉬움만이 남는다.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의 개발도상국은 당장 탄소세가 부과되는 품목을 수출할 수 밖에 없는 나라들이다. 이들 국가에 당장 탄소세를 부과하는 것이 기후변화의 속도를 늦추는 효과를 낳을 수 있을까? 탄소세에서 시작되는 신보호무역주의가 하나의 기조로 자리잡는다면 내수가 탄탄하지 않은 개발도상국은 가장 빨리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기후변화로 인해 저소득층 및 개발도상국에서의 피해가 더 크게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이러나 저러나 우리는 더러운 교실에서 같이 살고 있다. 학생은 늘어나고 교실 온도는 계속 올라가는데, 지금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누가 먼저 교실을 치워야 하는지 논의하는 것일까, 아니면 교실을 더럽힌 사람은 따로 있는데도 그냥 잠자코 교실을 치우는 일이 중요할까? 그렇게 학급을 청소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우리는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해 줄 수 있을까? 민간기업의 '책임 투자' 혹은 '녹색 채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명백하다. 그렇게 태양과 나무와 사람과 정치는 같이 나아가야 한다. 그 누구도 뒤에 남기지 않도록. 


참고자료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006102.html

선진국 주도의 ‘녹색전쟁’…개도국은 넘지 못할 ‘신무역장벽’인가?

https://www.financialexpress.com/opinion/the-gap-with-green-goals/2241366/

The gap with Green goals 

https://about.bnef.com/blog/developing-nations-assume-mantle-global-clean-energy-leadership/

Developing Nations Assume Mantle of Global Clean Energy Leadership 

http://www.redian.org/archive/154952

기후 불평등은 기후변화 적응의 격차에서부터

https://ourworldindata.org/cheap-renewables-growth 

Why did renewables become so cheap so fast? And what can we do to use this global opportunity for green growth?

http://www.energy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488

[분석] 2018년 글로벌 재생에너지를 분석한다 - ③ 투자·가변성 해소

https://en.wikipedia.org/wiki/Renewable_energy_in_developing_countries

Renewable energy in developing countries

https://www.fs-unep-centre.org/wp-content/uploads/2019/11/Global_Trends_Report_2016.pdf 

GLOBAL TRENDS IN RENEWABLE ENERGY INVESTMENT 2016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973772.html#csidxb0cf7ae707fcaa3865c1044d725c3e8

기후변화, 문제는 돈…끝나지 않는 선진국 vs 개도국 책임 논란

https://www.me.go.kr/home/file/readDownloadFile.do?fileId=130470&fileSeq=1&openYn=Y

교토의정서 이후 신 기후체제 파리협정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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