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본래 이 책은 오르는 집값에 대한 지방 청년의 생각을 담아내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뉴스에서는 오르는 집값에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있다 말하지만, 그 많은 사람 중 어떤 사람이 있는지, 그리고 그 절망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에 어떤 대해서는 잘 묘사하지 않고 있었다. 집값이 몇 퍼센트 올랐는지, 올해는 얼마나 오를 것이고 내년에도 과연 오를 것인지에 집중했다. 그러나 나와 같은 지방 출신 청년이 부동산에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절망과는 거리가 있다. 그것은 계속해서 스스로의 쓸모를 증명해야만 한다는 어떤 자기 착취의 감정과 비슷하다.
부동산은 결국 안정적 주거지가 없는 사람들에게 존재 자체만으로 내야 하는 비용이 된다. 집은 내가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내가 버텨 나가는 곳으로 바뀐다. 이 쪽방에서 저 쪽방으로, 나는 내가 여기 있을 가치가 있는 사람임을 계속해서 증명해나가며 이사했다. 학교 기숙사는 학점이 높은 학생에게만 있을 자격을 주었다. 학점이 높지 않아 학교 앞 원룸 기숙사에서 지내려면 또다시 학생이라는 명분이 있어야 했다. 사원 기숙사에 들어가려면 그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의 자격을 먼저 얻어야 했다. 그 자격을 얻으려면 간절해야 했다. 노력하고 성실해야 했다. 어떤 대단한 성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방에 살 자격을 얻기 위해서. 똑같은 장소에서 공부하고 일하면서도 이주민들은 계속해서 주거의 불안을 느끼고 있다. 그 사이 그들의 마음 속에는 크고 작은 기스가 쌓인다. 누군가는 크면서 얻는 성장통이라고 했다. 나는 잘 모르겠다. 우리가 아파야 했던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걸까.
정부는 앞으로 청년을 위한 임대주택을 더 많이 짓겠다고 했다. 그 임대 주택은 또다시 청년에게 물을 것이다. 너는 이 곳에 들어오기 위한 어떤 자격을 갖추고 있느냐고. 당신은 충분히 가난한가? 일자리가 없는가? 부모가 혹시 돈이 많지는 않은가? 충분히 간절하고 가난해야만 그곳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모든 사람을 다 들여보낼 수는 없지 않느냐고,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느냐고.
지금도 수많은 지방의 청년들은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에 입학했다는 동네 언니 오빠들의 플랜카드를 보며 꿈을 꾼다. 부동산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내 앞에서도, 그들 앞에서도 쌩쌩 달릴 것이다. 그들과 나의 20대는 커다란 캐리어, 택배비, 부동산에 들락거리는 시간들과 집이 좁아 커피숍에서 지불해야만 하는 수많은 오천원으로 채워진다.
누군가는 열심히 뛰어서 저 전차에 몸을 실으라고 말한다. 지금이라도 할 수 있다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는 것이 성공의 길이라고. 나 하나에게는 좋은 일일지 모른다. 많은 빚을 내서 지금이라도 기차에 올라타고, 다같이 누리는 승리를 만끽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에 투자하라고 말한다. 자신이 투자한 부동산이 좋은 수익률을 내면 기분이 좋을 것이다. 자본 소득은 늘어나고, 우리 가족은 잘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전차에 올라타 있는 사람들이 부유해지는 만큼, 그리로 흘러들어오는 이주민들의 몸과 마음은 더욱 가난해질 것이다. 우리는 뭐라 말할 것인가? 이것이 당신의 꿈의 댓가라고, 냉혹한 현실을 일깨워 줄 것인가? 간절한 눈빛과 성실한 태도를 증명하라고 할 텐가?
본래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별로 없었다. 그냥 내가 여기 있을 자격만 주면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내가 집을 이토록 여러번 옮겨야만 했던 이유를 생각하면서부터였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시작된 이주의 역사가 왜 나에게로, 내 동생과 나중에 태어날 나의 아이들에게로 옮겨 가야 하는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실 계속 집에 가고 싶었다.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었다. 나의 살던 고향으로, 내가 원래 있었던 곳, 나의 쓸모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그러나 일자리와 경제와 학군은 우리를 계속해서 더 좋은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부추겼다. 전차는 한쪽 방향만으로 흘러갔고, 그곳에 탑승하는 자만이 뒤쳐지지 않을 수 있었다.
빠르게 달리는 부동산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지방의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있다. 서울로 입성하는 벽은 높아지고, 서울 외의 대안이 없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물질적, 정신적 에너지를 빼앗긴다. 나는 더이상 서울을 동경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그리 일찍부터 원룸살이를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을 원한다. 부동산이 우상향하는 걸 막지 못한다면 적어도 청년들이 일찍부터 독립할 필요가 없었으면 좋겠다. 세상에 단 하나의 말을 던질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우리에게도 집에 갈 기회를 달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