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버렸다.
크리스마스에도 서점은 아름다운 커플들로 북적였다. 한숨을 내쉬며 복잡한 인파 속에서 재빨리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인턴 자기소개서를 써 볼까. 정규직 보장이 안되더라도 혹시나 모든 기업에 다 떨어졌을 때를 대비해 '총알'을 만들어두는 게 중요했다. 취업 사이트를 기웃거리며 쓸 만한 인턴 공고를 물색했다. 매일 접속하다 보니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따로 입력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로그인이 되어 있었다.
그 순간 익숙한 진동소리가 들렸고, 마음이 조금 내려앉는 것이 느껴졌다. 이메일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이 진동을 취업 준비 기간 동안 충분히 들었다. 어떤 것은 좋은 소식을, 그리고 대부분의 것은 좋지 않은 소식을 가져왔다. 심장이 빨리 뛰었지만 확인하지 않으면 알 도리가 없었다.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검지로 두들겼다.
축하합니다 귀하는..
아, 이건 합격이 틀림없었다.
시끄러웠던 크리스마스의 서점이 고요해지는 듯했다. 이메일을 읽고 또 읽어도 합격했다는 내용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인턴 자기소개서 페이지를 닫았다. 아, 이제 나 일할 수 있구나. 돈 벌 수 있구나. 왜인지 눈물이 조금 나는 것 같았다.
"엄마 나 xx기업 합격했어. 방금 이메일 확인했어. 나 이제 여기 안 살아도 돼. 이 기업에서 기숙사 준대."
당장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우선 밖으로 나갔다. 한겨울이었지만 전혀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시트콤의 주인공처럼 동네 사람들! 저 취업 성공했어요!라고 말하며 뛰어다니고 싶었다.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도 기뻤지만, 무엇보다도 취업 준비를 한번 더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쉐어하우스에서 더 이상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기뻤다. 공동 화장실과 분리수거함이여, 밤늦게 들리는 수다여, 방 안에서 넷플릭스 볼륨을 쉽게 올리지 못하던 날이여 안녕. 난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아니 그 모든 굴레와 속박을 향해 떠날 것이다. 서울에 입성한 이래 가장 따뜻한 크리스마스였다.
나는 스물여섯의 겨울에 한 기업에 취직했다. 취업을 준비하며 살았던 곳은 학교 앞 쉐어하우스였다. 본가로 돌아가서 준비할 수도 있었지만 취업 박람회나 면접 스터디를 하려면 서울에 있어야 한다며 서울에 남아있기를 고집했다. 생활비도 아무것도 없었지만 부모님은 6개월 간은 우선 서울에 살게 해 주겠다는 관용을 베푸셨다. 그때는 이 쉐어하우스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그리고 이 기업에서 주는 기숙사에만 들어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줄 알았다.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서 오피스텔 전세로 들어가야지. 내 집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내가 아는 부동산은 월세와 전세밖에 없었다. 어차피 서울 집은 비싸니까, 계속 전세로 살게 되지 않을까?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살아가던 2019년이었다.
2020년 입사 후 회사 기숙사에 살면서부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 연봉의 여섯 배를 줘야 겨우 방 한 칸 전세를 구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부터 안일한 생각에 금이 갔다. 기숙사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끝나면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다시 취업 준비를 할 때 살았던 쉐어하우스 정도였다. 이미 회사에서 과장, 차장 직급을 단 상사들은 자기네들 집값이 두배 뛰었다며 기뻐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나, 왜 여기서 일하고 있는 거지? 순간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지금껏 살아왔던 수많은 방들이 생각났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기업에 취직을 하면 사람다운 집에 살 수 있는 거 아니었나. 혼란은 깊어졌고, 신입사원의 근로 의욕은 떨어졌다.
이 글은 취업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경험한 어느 사회초년생의 회고록이다. 스물여덟, 올라가는 자산 가격의 그래프 앞에서 글을 쓰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돌이켜보니 나와 아버지는 일자리와 학업에 치여 지금까지 주거지를 택하기보다는 쫓아 살아오고 있었다. 나와 내 가족을 비롯한 많은 지방 사람들은 마치 등 뒤에 집을 이고 다니는 달팽이처럼 전국을 이동했다.
이 책을 통해 나와 비슷한 많은 달팽이들에게는 공감을, 그리고 부동산을 투자 자산으로만 보는 사람들에게는 약간 비뚤어진 생각을 전달하고자 했다. 내 삶은 공짜이니, 씹고 뜯고 맛보고 (가능하다면) 즐겨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