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에서 컵라면 먹어봤어유?
시월의 마지막 날, 지리산 천왕봉을 등정하기로 했다. 인천에서 중산리 대피소까지는 차로 네시간 반, 등산을 시작하려면 적어도 새벽 일곱시에는 산에 올라야 한다. 새벽 두시 반이 되어 경부고속도로를 탔다. 까만 도로위에는 옛날 팝송과 차 한대만이 덩그러니 달렸다. 지리산에 다다를 때쯤 되니 동이 트기 시작했다. 건물과 차로 바글거리는 인천과는 새삼 다르게 고요한 아침이었다. 이제서야 한반도 남쪽 끝자락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중산리에서 시작해 천왕봉을 찍고 칼바위를 거쳐 하산하는 코스다. 아침 여섯시 사십분에 도착했는데도 벌써 버스는 만원이었다. 단체로 온 관광객과, 패셔너블한 등산복으로 온몸을 무장한 젊은이들도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이 높은 산을 올라가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버스는 사람을 꽉 차게 태우고 등산로 초입으로 안내했다. 이제부터는 버스도 택시도 전동 킥보드도 없었다. 오직 두 손과 두 발로 해발 1900m의 천왕봉으로 올라가야 했다.
모든 산이 그렇듯, 지리산도 초입은 가벼운 운동 정도라 생각하고 걸을 수 있는 수준이다. 중산리에서 법계사까지의 길은 꽤나 완만하다. 높다랗게 자란 나무들 사이에서 가을 풍경을 즐기고, 아침의 새 소리를 만끽할 수 있다. 왼쪽으로 흐르는 계곡 물이 얼마나 차가울지 상상해본다. 새벽이라 약간 배가 출출한 느낌이 들지만, 어차피 등산은 다이어트에도 좋으니 아직 간식을 먹는 건 이르다.
본격적인 고통은 법계사에서부터 시작된다. 가파른 경사에 발 디디기 애매한 돌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숨만 푹 나올 뿐이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계단이 반갑게 느껴질 정도다. 분명 2km만 가면 된다고 했는데, 2km면 뛰어서 15분이면 가는 거리 아닌가. 한발 한발을 내딛는 다리는 천근 만근이다. 이때부터는 배가 고플 때마다 간식을 입에 넣게 된다. 다이어트고 뭐고 몸에서 즉각적인 에너지를 요구하는 단계가 온 것이다.
다시는 등산 안해. 아무 의미도 없는거. 풍경은 사진으로만 보면 되지, 굳이 눈으로 담겠다고 새벽 두시 반에 인천에서 일어나서 차를 타고 미쳤다고 여길 왔을까. 그렇다고 내려가기엔 이미 올라온 높이가 상당하다. 어느새 몸은 적응해서 자동으로 움직이는 것만 같다. 자, 힘내세요 여러분! 다 왔습니다! 먼저 정상을 찍은 등산객의 우렁찬 목소리가 귀를 때린다. 등산의 후반부는 항상 운동이라기 보다는 악과 깡으로 버틴다는 말이 어울리는 듯하다. 사점(death point)를 넘어버려 이상하게 자동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 다리는 덤이다.
그리고 천왕봉에 오르면, 세상으로부터 1900m 떨어진 그 높은 봉우리에 올라서 신선이 된 기분을 느끼면, 그 고통은 어느샌가 사라지는 것이다. 문득 나 같은 작은 미물이 이 높은 곳에 올라올 수 있게 해준 하늘에 감사하며, 이 풍경을 고작 사진 따위로 보려 했던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반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근육통과 굳은 어깨는 어느새 망각한 채로.
혹자는 등산이 정복욕의 소산이라고 한다. 높이 높이 올라가고 싶어하는 인간적인 욕망이 우리를 그 끝까지 기어코 가게 만드는 것이라고. 그러나 등산을 계속하게 되면 어느새 어떤 봉우리를 정복했다는 느낌이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님을 깨닫는다. 정상 위에 오르는 그 순간에 느끼는 감정은 정복보다는 성취의 감정일 것이다. 이 산에 오르기 위해 참아낸 고통, 내가 디딘 돌의 개수와, 포기하고 싶었음에도 인내했던 그 순간들. 자연의 한가운데서 느끼는 고양감은 덤이다. 그래서 산 위에서 사람은 특히 이타적으로 변한다. 먹을 것을 나눠주고, 뒤이어 올라오는 사람에게 수고 했다는 말을 건네게 된다. 올라오는 등산객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거의 다 왔다" 며 하얀 거짓말을 한다. 우리 모두의 성취를 축하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준다.
우리는 왜 등산을 할까? 왜 아무 의미 없는 저 꼭대기에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것일까? 나는 사실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만들기 위해 등산을 시작했다. 세상의 인정 없이 내가 나를 기특하게 만들 수 있는 시간을 찾고 싶었다. 아무 의미 없는 꼭대기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게 전부일지라도, 내 몸은 그 과정에서 느낀 고통을 알고 있으니까. 그걸 극복하고 보게 된 풍경을 눈에 담았으니까.
몸으로 느끼는 원초적인 기쁨도 등산의 즐거움이다. 가장 맛있는 컵라면, 가장 달콤한 초코바를 맛보고 싶다면 천왕봉에 오르면 된다. 쉬고 있어도 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한 세시간 정도 산을 올라보아도 좋을 것이다.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면,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면. 이번 주말에는 산에 올라 보시라.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이 스르르 잠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허벅지와 종아리에는 고통을, 내 눈과 머리에는 자연을 담은 채로.
일요일 오전 열 한시에 다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인천으로 돌아오며 다음에는 어느 산을 갈지 고민한다. 천왕봉에 도착하기 전 "다시는 등산 따위 하지 않으리" 했던 다짐은 온데간데 없이, 추워지는 밤공기와 짧아지는 해가 야속할 뿐이다. 백록담을 올라야지, 설악산도 좀 내공을 키우면 올라갈 만 할거야. 나이가 서른 다섯이 되면, 히말라야에도 갈 수 있을까. 다시 도로에는 차 한대와 2000년대 댄스곡만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천왕봉에 오르기 전과 후의 인생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어떤 작은 의미 하나만이, 지쳐 쓰러져 잘 만큼의 원초적인 피곤함이 남았기에, 기꺼이 다음 고통을 견딜 준비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