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가 죽던 날의 일기
전두환이 죽었다. 혼란스러운 시대의 추운 겨울날이었다. 아침 라디오에서 방탄소년단이 미국에서 얼마나 큰 상을 받았는지를 떠들던 그때, 남한의 전 독재자는 변기에 앉아 있다 세상을 떠났다. 같이 쿠데타를 일으킨 친구가 떠난지 약 한달 만이었다.
그가 죽던 때 나는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전날 회식으로 피곤한 몸을 부여잡으며 아무일 없는 것처럼 출근을 하고 컴퓨터를 켰다. 사무실에는 불편한 상사가 있을 뿐 나를 총으로 쏴죽이는 계엄군은 없었다. 오전 10시 회사 단체방에 누군가 "전두환 사망"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는 채팅창에다 전 독재자의 이름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불과 40년전 한국에 살던 사람들은 전두환을 비방하면 삼청교육대에 끌려갈 수도 있었다. 정부의 보도 지침을 어긴 언론인은 감시의 대상이 되거나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대학생들은 사상의 자유를 누릴 수 없어 탁 치면 억 하고 죽어버렸다. 그는 민주 국가에서 정당하지 않게 획득한 권력을 놓지 않으려 수많은 사람의 입을 막고 팔을 부러뜨린 사람이었다. 팔만 부러뜨렸으면 다행이었을지 모른다. 그가 대통령이 되던 해 광주에서는 몇백명의 민간인이 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 그는 가진 힘을 국민에게만 쓸 줄 아는 졸렬하고 비열한 인간이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끝까지 인정하거나 잘못에 대해 사과하지도 않은 파렴치한이었다. 1980년 목숨을 잃은 수많은 대학생과 청년들이 무색하게 그의 나이는 올해 아흔이었다.
회사 단톡방에 누군가가 드디어 죽었네, 언제 죽나 했더니. 라는 말을 올리는 것을 보자 문득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나의 친척 중에는 민주화 운동으로 감옥에 간 사람이 있다. 그는 운이 좋아 살았으나, 운이 좋지 않은 다수는 죽었다. 아무 죄 없는 생명이 정당한 국가권력을 외쳤다는 이유로 사라진 이후에도, 그는 골프를 치고 고기를 먹고 후대 대통령들의 알현을 받았을 것이다. 얼마나 좋았을까, 감옥에서 나와 국가 원로 대접을 받을 때에는? 세상의 아름다운 장면을 감상하고 멋진 음식을 먹으며, 자신의 허리를 필드 위에서 있는 힘껏 휘어가며 살아있음을 느꼈을까? 그의 꿈에 그때 죽어간 사람들의 모습이 나오기는 했을까.
어쩌면 그가 40년 전에 죽인 그 사람들도 오늘날의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가 그토록 무자비하게 계엄군에게 발포 명령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그들도 오늘의 추운 공기와 함께 지루한 화요일 아침 출근길을 맞는 평범한 삶을 누렸을 것이다.
자신의 삶만이, 본인이 안녕과 편안함만이 좋았습니까. 그래서 마지막 순간 그 변기 위에서 마감하는 삶은 어떻던가요. 살아있는 동안 한점의 후회와 뉘우침도 없이 끝끝내 유족들 마음에 상처만 남겨 놓으며 즐기던 삶은, 살아볼 만하던가요. 좀 더 살지 그랬습니까. 마지막은 더없이 비참하고 후회스럽기를 바랬는데, 겨우 연희동의 변기 위라니.
청와대는 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했다. 대선 후보는 전 대통령이니 조문은 가야하지 않겠나, 발언했다 3시간 후 발언을 철회했다. 야당 원내대표는 "개인적으로 조문하는 것이 인간적인 도리라고 생각한다" 발언했다. 그의 명복은 왜 빌어주며, 유가족에게는 왜 위로의 말을 전하나. 자신이 죽인 사람들 가족 생각은 털끝만치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왜 한치의 명예를 남기나.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 국가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적인 도리란, 편안하게 살다 간 그에게 있는 힘껏 죄를 묻는 일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