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을 위한 평화, 경제, 그리고 인프라
한 지역에서 풍부한 물자를 다른 지역에서는 풍부하나 이곳에서는 희귀한 물건으로 바꾸는 일이라는 점에서 무역은 항상 돈 벌 궁리 하는 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전 세계로부터의 물건을 한 곳에서 볼 수 있기까지, 인류는 아주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오늘은 자유무역이 전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으며 인류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1. 군사적 평화: 평화의 시대에 무역이 있다
무역은 평화로운 시대에 융성한다. 달리 말해 무역은 군사적 긴장 상태가 완화된 시기에 융성하게 되어 있다. 언제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항구에 상인들이 모여들 리가 없다. 당장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물건을 팔 상인은 없다. 무역이란 기본적으로 국경을 넘는 일을 수반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국경을 넘는 데 아무런 애로사항이 없어야만 번성할 수 있다.
국제정치경제학계에는 Trade Follows the Flag, 직역하여 무역은 국가를 따른다는 이론이 있다. 오늘날 WTO의 전신이 된 GATT가 2차대전 이후 서방 국가들 사이에서 창설되고, 1년 뒤 GATT의 주요 멤버인 서방 국가를 주축으로 한 NATO가 결성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치군사적으로 가까운 나라들 사이에 무역이 증진될 가능성이 크다.
평화로운 시대가 무역을 만들 뿐 아니라, 무역이 평화로운 시대를 만드는 데 거꾸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무역은 여러 국가간 관계를 상호의존 상태로 만들어 섣부른 군사적 도발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삼성물산의 대표 프로젝트로 불리는 온타리오 태양광 발전단지 프로젝트에는 단순 삼성물산 뿐 아니라 캐나다 민간기업과 전력청 모두가 개입되어 있다. 태양광 시설의 소재 공급, 운송, 유지보수를 위한 업체들까지 계산하면 프로젝트 하나에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엮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민간의 무역이 활성화됨에 따라 국가는 단일 이해관계에 따른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지며, 안보 조치에 조금 더 보수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2. 경제성장: 무역, 그리고 부유한 국가
무역은 경제 성장을 촉진시킨다. 아래 두 그래프를 보자.
<WORLD GDP>
<전세계 무역량>
전세계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한 1990년대 및 2000년대 초반, 무역량의 증가와 함께 세계 GDP 역시 가파르게 증가하였다. 앞서 언급한 컨테이너의 등장에 힘입어 세계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더 많은 물건을 나르게 되었고, 이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고용에도 기여했다.
무역량의 증가에 따른 경제성장을 누린 국가의 대표주자가 바로 한국이다. 북한과의 전쟁 이후 기본적인 생산 능력을 갖추지 못했던 남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팔 수 있는 것을 생산하는 일"이었다. 이는 최초에 면방 산업, 이후 철강, 자동차, 화학 등 2차 산업으로 부가가치를 더해갔다. 6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한국이 이룩한 경제 성장은 한강의 기적이라고도, 혹은 수출주도성장전략의 결과라고도 불린다. 어느 쪽이든 무역량의 증가가 고용과 경제 성장을 촉진시키고, 그에 맞춰 일반 시민의 생활의 질을 높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무역이 경제 성장 및 부흥에 영향을 미친 것은 비단 20세기의 일 만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 서방 국가 위주의 국제 정세에 익숙하지만, '중세'라고 생각하던 시기(10세기에서부터 18세기까지) 가장 부흥했던 지역은 중동 그리고 중국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대도시들은 대부분 실크 로드(중앙아시아에서 중국까지의 육상 교역로)에서의 무역을 통해 수입을 벌어들였다. 유라시아에서 가장돈이 많은 사람들은 원거리 무역을 하는 상인들이었고, 이들은 실크 로드의 상징인 비단 뿐 아니라 도자기, 향신료 등 전세계의 사치품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나르며 이익을 거둬들였다.
3. 인프라: When there is a way, there is trade
이제 이곳의 물건을 내다 팔 준비가 되었다 - 국경에서 총을 맞을 리도 없고(평화), 내다 팔 물건도 충분히 생산되고 있는 상황(경제). 그렇다면 질문은 이곳의 물건을 "어떻게" 저곳으로 이동시킬 것인지이다. 여기에서 무역을 위한 인프라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인프라 - infrastructure-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이나 생활의 기반을 형성하는 중요한 구조물"이다. 우리는 주로 도로, 항만, 전력 등 도시를 이루는 뼈대를 두고 인프라 라는 말을 쓴다. 국가의 인프라 건설은 시민들의 편리한 생활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보다 많은 물건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효율적으로 이동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다.
한국의 인프라 발전에는 아픈 역사가 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인해 한국은 강제로 항구를 개항하게 되었고, 일본은 항만을 이을 수 있는 경인선, 경부선 등의 철도 노선을 개통하여 한국으로부터 식량, 석탄, 수산물 및 임산물을 수탈해갔다. 이는 무역이라기보다 수탈에 가까운 행위였지만, 일본이 한국의 자원을 이용하기 위해 인프라 개방 및 건설이 필수적이었다는 사실 하나는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프라(에너지, 철도, 항만)등을 잘 갖춘 국가는 수출량과 무역 수지 방면에서 긍정적 효과를 누릴 수 있으며, 반대로 인프라가 부족한 저개발 국가는 인프라가 잘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역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일례로 사방이 육지인 국가들(landlocked countries) 중 저개발된 국가들(브룬디,아프가니스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은 해상 운송이 아닌 육상 운송에 의지에 무역행위를 해야 하는데, 이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운송료 및 운송 시간 측면에서 불리함을 뜻한다. 월드뱅크 및 다양한 국제기구에서 무역 인프라 개선에 많은 비용을 투입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무역에 필요한 조건들을 생각하다보면 1,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국가들이 평화/경제 성장/인프라 측면에서 개선을 이뤄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또한 이쯤 되면 과연 약 100년간 이어지고 있는 이 체제가 과연 영원할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세계는 지금처럼 계속 멋진 인프라를 기반으로 평화와 경제 성장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