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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Nov 18. 2021

라떼를 외치는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추억과의 이별을 결심한 여자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기를 반복하며 주변 사람을 지루하게 만드는 사람을 두고 우리는 '라떼'라는 말을 쓴다. 대학 동아리 뒤풀이에 종종 출몰하는 고학번 선배들이 좋은 예시다. 오래 전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그들의 이야기에는 대학 시절의 행복하고 찌질했던 순간만이 담길 뿐이다. 후배는 선배의 말을 듣는 척 하면서도 과거를 되풀이하는 그들의 모습에 작은 한심함을 느낀다. 나 역시 그랬다. 대학 시절의 무용담을 늘어놓는 선배로부터 최대한 먼 자리에서 뻥튀기를 먹으며 "나는 절대 저런 선배가 되지 말아야지" 자신만만한 말을 내뱉기 바빴다. 본인이 조만간 그런 선배 중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으로 지낸지 2년이 되어간다. 업무 단체방으로 가득찬 메신저를 보며 한숨을 짓는 게 일상이 됐다. 별다른 약속도 없는 주말 저녁 일정을 마무리할 때면 예전에 찍어뒀던 활기 넘치는 사진을 넘기고는 한다. 별안간 나의 20대 초중반 시절이 지금에 비해 지나치게 찬란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점점 술자리에서 대학시절 이야기를 늘어놓았던 선배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면서, 그들과 비슷하게 행동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한다. 아, 우리 그때 진짜 재미있었는데. 그때 진짜 바보같았지. 그래도 귀여웠어, 안그래? 그땐 아무것도 몰랐잖아. 너 그때 진짜 웃겼었는데. 지난 시절을 이야기하는 것에는 끝이 없지만, 오늘 밤 술자리에는 끝이 있어야만 한다. 토요일의 낭만을 놔두고 월요일의 현실로 돌아가는 일에는 한숨이 추가된다. 과거는 묻어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왜인지 자꾸만 과거를 언급하고 싶어진다. 나에게 과거가 충분히 쌓여서일까, 아니면 나의 현재와 미래에 재미있는 일을 기대하기 어려워져서일까? 


유년기에는 의무도 생계의 걱정도 없이 누구나 공평하게 성장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은 '그때가 좋았는데' 회한에 젖지 않는다. 흥미진진한 캠퍼스 라이프를 꿈꾸는 청춘은 뒤를 돌아보려 하지 않는다. 사람이 본격적으로 라떼를 외치는 시기는 생업 전선에 뛰어든 다음부터일거라 짐작한다. 인생에 재미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 무렵, 문득 과거가 찬란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땐 참 좋았었는데, 참 다들 재미있게 아무 생각없이 놀 수 있었는데. 일례로 오징어게임의 설계자 일남은 유년시절의 순수함을 그리워하며 오징어게임을 시작했다 고백한다. "돈 많이 벌어도 재미있는게 없다네" 그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400명의 사람을 죽인다. 


일남처럼 오징어게임을 벌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동아리 뒤풀이에서 찬란했던 그 시절을 향락 속에 추억할 뿐이다. 옛날 아름다웠던 나의 모습을 끊임없이 감상하거나, 괜히 어린 사람을 두고 그때를 낭비하지 말라며 자신의 유년 시절 자랑을 늘어놓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괜히 초라하고 추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자꾸만 라떼를 찾는 상사는, 추억팔이만 일삼는 선배는, 옛날을 미화하는 오징어게임의 보스는 아름답지 않다. 우리는 seize the day를 외쳤던 키팅 선생과 현재를 축복처럼 살라던 유명 유튜버의 말을 기억한다. 나이가 들어도 추해지지 않으려면 과거와 이별해야 한다. 그 언젠가 유행하던 드라마의 여주인공도 말하지 않았는가, 추억은 아무런 힘도 없다고. 


문제는 과거와의 이별이 그 무엇보다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점이다. 네이버 클라우드 속 전 애인과의 사진처럼, 과거는 계속해서 현재를 유혹한다. 과거의 기억이 쌓여 내가 기력 없는 어른이 되어갈수록, 찬란했던 시절은 이곳에 파묻히라며 손짓한다. 


과거와 어떻게 잘 이별할 수 있을까? 지나간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겠거니 넘어가며 현재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를 즐기기 위해 과거에 비해 점점 더 나은 내 모습을 만들어갈 수도 있다. 성장 또 성장을 외치며 사는 삶이다. 과거의 나에 비해 미래의 내가 계속해서 나아질 수가 있다면 과거를 굳이 추억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그러나 자신을 계속해서 성장시키는 것은 필연적으로 과도한 나르시시즘과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기 쉽다. 인간 육체의 본질인 쇠락을 애써 무시하다가 중년의 위기를 겪는 이야기를 많이 보지 않았나. 결국 과거에 비해 점점 더 나은 내 모습을 만들어가겠다는 다짐은, "놓치지 않을 거에요"라 외쳤던 화장품 광고 속 구호만큼이나 공허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남이 말한 '재미'를 쫓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달고나를 깨먹은 사람 100명을 총살시키는 종류의 쾌락을 누리진 못할지라도, 어른이 되며 조금씩 쌓이는 자산으로 현대 사회의 재미를 충분히 누릴 수는 있다. 매일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할 수도 있다. 밤마다 클럽에 가서 쾌락을 나눌 상대를 찾아도 좋을 것이다. 조금 꺼려진다면 현대인에게 주어진 합법적 마약인 쇼핑은 어떤가. 인생의 무상함을 명품이 해결해줄 수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SNS는 명품 하울과 후기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재미는 하루를 넘기기가 힘들다. 자극은 더 많은 자극을 원하게 만들 뿐이라, 계속해서 스케일이 커져야 한다는 점도 단점이다. 결정적으로 체력과 돈이 너무 많이 든다. 평범한 소시민이 오랜 기간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수요일 밤 퇴근 후 책상 앞에 앉아 과거와의 이별을 생각한다. 계속해서 나아질수도, 계속해서 쾌락을 쫓을 수도 없다면 우린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무언가를 사랑해야 할까.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할까. 어떤 오늘과 내일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내가 나의 오늘과 내일을 만드는 게 가능하긴 한 걸까. 깊은 생각에 잠기다 결국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 과거와 이별하기 위함이라는 걸 깨달아 가고 있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게 하기 위해 지금의 내가 먹고 자고 글을 쓴다는 걸. 지금 살아가는 이 순간도 언젠가 추억이 된다면, 사실 추억이야말로 이 세상의 모든 힘을 다 가진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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