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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Hailey Feb 23. 2022

캐나다로 온 치과기공사

한국을 떠나 캐나다로 건너온 이유


*본 글은 정보성 글이 아닌 개인적인 경험, 생각과 느낌을 담은 글임을 미리 밝힙니다*


나는 캐나다 치과기공소에서 근무하는 치과기공사다. 한국에서 치기공과를 졸업하고 6년 간 일을 하고 캐나다로 건너왔다.


치과기공사(혹은 치기공사)가 어떤 직업인지 잘 모르거나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나도 이 직업에 대해 잘 몰랐다). 틀니, 인레이, 크라운(속칭 금니, 은니라고 하던 치아 겉에 씌우는 보철물), 그 외 다양한 교정장치 등을 치과에서 직접 만들지 않는다. 큰 치과라면 치과 내에 기공실이 있어서 몇 명의 치기공사가 상주하며 근무할 수도 있지만 보통은 치과기공소라는 기공물을 취급하는 곳과 거래를 하고 많은 치과기공사들이 여기에서 일한다.


한국에서 일했던 기간에 나는 치기공사로서 나름 여러 곳을 경험했다. 큰 대학병원 기공실에서도 2년 간 있었고, 개인 치과의 기공실에서도 1년 좀 안 되는 기간 근무했으며 치과기공소에서도 3년 이상 일했다.




한국에서 많은 직업이 그렇다 하지만 치기공사도 야근을 정말 많이 하는 직업 중에 하나다. 보통 아침 8시와 9시 사이로 정해진 출근시간은 있었지만 퇴근시간은 없었다. 밤 9, 10시까지 일할 때가 대부분이었고, 다양한 치과기공 분야 중 교정 치과기공사인 나는 일의 특성상 바쁜 겨울방학 시즌에는 새벽에 집에 가는 게 당연했다. 겨울 방학을 이용해서 치아교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점심, 저녁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일만 하면서도 새벽 6시에 퇴근한 적도 있었다. 몇 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는데 일이 끝나고 나니 토요일 새벽 6시였다. 지하철 첫 차도 지난 이미 날 밝은 새벽에 일이 끝나고 집에 와서 씻자마자 침대에 누워서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눈을 뜨니 이미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거실에서 나는 티브이 소리로 보아 무한도전이 하고 있었다. 얼마나 허망하던지.


초과근무 수당은 당연히 없었다. 어쩌다 일이 많다면 야근 며칠 할 수 있는 거라고 이해해보기라도 하지. 일을 하려고 사는 건지 살려고 일하는 건지, 매일매일이 말 그대로 지옥 같았다. 개인 시간 조금도 없이 회사에만 시간을 다 바쳐야 하는 생활이 '당연'시 되는 게 싫었다. 직장을 옮기면 되지 않겠냐고? 내가 다녔던 대학병원 치과대학, 개인 치과, 그리고 치과기공소 모두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배운 건 치과기공뿐인데 어디를 가나 이런 환경은 같았다. 내가 바라는 건 오직 정해진 퇴근시간뿐이었다. 가능한 일일까. 듣기로 다른 나라는 일과 삶의 균형인 워라밸이 맞는다던데 진짜 그런 걸까. 어떤지 경험해보고 싶었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영국 등 많은 나라를 놓고 고민했지만 선택권이 나에게 있는 건 아니었다. 다른 나라에서 일하려면 그 나라에서 일할 수 있는 비자가 필요했고, 현실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방법은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20대 후반으로 워킹홀리데이가 가능한 나이였다. 호주는 언제든 지원하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서 선발이 되어야만 갈 수 있는 뉴질랜드와 캐나다를 먼저 노려보기로 했다. 둘 다 안 되면 호주를 갈 생각이었다. 이 당시 재미있는 기억이 있다. 선착순으로 합격과 불합격이 나뉘는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 신청 당일, 성능이 좋은 컴퓨터로 지원해야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클릭되지 않겠냐며 같은 일을 하던 남자 친구가 PC방에 가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출근 전 아침 일찍 PC방에서 만난 우리는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신청 버튼을 눌렀다. 결과적으로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는 떨어지고 나중에 캐나다 워킹홀리데이가 붙었다. 다행히 같이 신청했던 남자 친구와 나란히 같은 나라에 올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캐나다에 오게 되었다. 기공소 한 책상에 앉아 해도해도 끝나지 않는 일 더미에 파묻혀 살던 그 당시, 캐나다에서 날아온 워킹홀리데이 합격소식을 알려준 인비테이션 이메일은 나에게 희망이었다. 지긋지긋한 야근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되어 주었으니까.


캐나다에서 일을 한 지도 벌써 6년 째다. 지금이라도 차근차근 이곳에서의 경험이나 느낀 점들을 적어보려 한다. 덧붙이자면 지금은 8시 출근, 4시 반 퇴근을 지키며 캐나다에서 잘 지내고 있다. 워라밸은 가능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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