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완벽했던 어느 일요일
지잉지잉. 일어나라고 보채는 손목시계 알람에 잠이 깼다. 밖을 보니 날이 밝은지 한참 된 듯하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나는, 언제 일어날지 몰라 주말에도 알람을 줄지어 맞춰놓는다. 그중 제일 마지막 알람에 눈을 뜬 것이다. 오늘은 일요일 아침이다. 어젯밤 자기 직전, 이전에 읽은 책을 독서노트에 잠깐 정리하려고 노트북을 열었는데 하다 보니 생각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어버렸다. 시계를 보니 10시 반이다. 순간 왜 이렇게 늦게 일어났나 싶었지만 오늘은 캐나다 서머타임이 시작된 날이라 내가 자는 사이 새벽에 한 시간이 사라져 버렸다. 시간이 바뀌지 않았다면 9시 반에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였다. 억울하게도 꿀 같은 주말을 한 시간이나 잃었지만, 덕분에 늦잠을 잤다는 사실에 합리적인 이유가 되어 주어서 죄책감을 살짝 덜었다.
일어나자마자 유튜브를 보면서 짧은 요가로 몸을 풀었다. 청소기를 켜고 밤새 쌓인 먼지를 빨아들이며 개운한 마음을 되찾았다. 그리고 집을 나와 오랜만에 한인마트에 들러 한국 음식을 이것저것 사 왔다. 외국에 있으니 먹고 싶은 한국 음식을 아무 때나 접할 수가 없다. 작정하고 한인마트에 가야만 살 수 있는 음식들이 있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다. 마트에서 돌아오자마자 점심으로 사 온 만두를 먹었다. 기분이 좋다.
배도 든든해졌으니 책을 볼 요량으로 커피를 한 잔 타서 전기장판이 틀어져 있는 따뜻한 침대로 들어갔다. 내가 사는 지역은 3월도 긴 겨울 중에 있기 때문에 아직 춥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는 전기장판이 필수다. 침대에서 이불을 무릎까지 덮고 앉아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으니 키우는 고양이가 천천히 다가왔다. 한참 동안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책을 보니 이번에는 가만히 티브이를 보던 남자 친구가 붕어빵을 구워서 가져다주었다. 바람이 센 까닭에 방 창문이 흔들린다. 밖은 아직 추운 겨울, 따뜻한 침대에서 커피와 간식을 먹으며 책과 고양이와 함께하는 일상. 순간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다 모였네!'
최근 몇 년간 코로나 때문에 여행다운 여행을 못 갔다. 일과 집, 지겨운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코로나가 풀리면 제일 먼저 어디로 여행을 갈 것인지 자주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여행 갈 목적지가 떠오를 때마다 비행기 표를 찾아보고 숙박할 곳과 맛집도 알아보곤 했다. 그동안 코로나는 종식되지 않고 확진자는 늘었다 줄었다, 그에 따른 규제들도 심해지기도 하고 느슨해지기도 하며 반복되었다. 다른 한국 친구들을 만날 때에는 여행도 여행이지만 한국은 도대체 언제 갈 수 있는 거냐며 푸념했다. 당장 할 수 없는 걸 바라면서 아쉬워하고 실망하기만 했다. 언젠가 코로나로 인한 규제는 풀릴 것이고 여행도 곧 가능해질 텐데. 내가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은 바로 옆에 있었다.
저녁으로는 오전에 사 온 당면을 넣어 만든 찜닭을 먹고 잠시 티브이를 보다가 다시 따뜻한 침대로 들어왔다. 이불을 덮은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하루를 되짚어보며 글을 쓰고 있다. 여행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만족스러운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