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자가 아닌 완료주의자의 일상
평소 워킹맘의 딜레마는 '그 무엇도 제대로 해내고 있지 못하고 있다'라는 지독한 괴로움에서 비롯된다.
오늘은 그 딜레마를 뒤로하고, 갈 곳 잃은 답답함과 짜증을 가만히 쏟아내 보려 한다.
요즘 내 일과는 아침 6시 기상, 7시 아이 등교, 8시 출근과 함께 시작된다. 그 날의 일을 집중해서 해치우고, 아이 저녁을 차리기 위해 약간의 눈치를 보며 퇴근을 한다. 여유롭게 나오면 참 좋으련만, 항상 빠듯하게 출발하다 보니 마음이 급해 아우토반을 실컷 내달려 집에 온다. 그러면 저녁 6시 20분쯤이다.
옷도 채 갈아입지 못한 채 부리나케 아이 저녁을 차리고, 한숨 돌리고 시계를 보면 7시 20분 정도가 되어 있다. 그 이후엔 간단하게 뒷정리를 한 후, 아이를 앉혀놓고 한시간 동안 영어공부를 시킨다.
그리고 나면 어느 덧 9시. 퇴근 후 밀도 있는 3시간을 보내고서야 육퇴를 한다.
그리고 비로소 시작되는 나의 저녁 시간..
요즘은 보상심리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든 이 시간에 구겨서 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든, 책을 읽는 것이든...
몇주간 이 생활을 이어오면서, 그래도 이 정도면 해외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 치고 그닥 버겁지 않다고 생각해왔는데, 오늘은 예외였다. 유난히 버겁게 느껴지고 힘들었다.
사건은 사소한 데서 시작됐다. 학교에서 가족 사진을 가져오라고 했다기에 한국에서 찍은 대형 스티커 사진을 보내자고 했더니, 아이는 바득바득 안 된다며 고집을 부렸다. 선생님의 리마인드 메일을 두 번이나 받은 터라 마음이 급했다. "일단 이걸 보내고 주말에 다른 사진을 인화해서 바꾸자"며 몇 차례나 회유했지만, 아이의 완강한 거부에 결국 진이 다 빠져버렸다.
이어진 영어 공부 시간. 일주일 넘게 가르친 개념을 도통 습득하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결국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이는 역정을 내며 울음을 터뜨렸고, 우리의 저녁은 그렇게 눈물로 마무리되었다.
아...오늘 너무 힘들다.
지난 밤엔 오늘의 숲체험을 앞두고 아이의 도시락을 준비해야 했다. 맛있는 도시락을 싸준답시고 밤 9시에 오븐구이 요리를 시작했다. 잘 익혔는지 확인하고, 환기시키고 이것저것 마무리 하다보니 10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한국 같았으면 휘리릭 유부초밥을 사주거나, 전날 쿠팡에서 주문해서 이것저것 조합해서 도시락을 쌌을텐데, 여기서는 모든 것을 DIY로 해야한다. 어젠 근교 도시 방문을 위해 운전도 오랫동안 하고, 온종일 아이를 끌고 다녔는데.. 돌아와서는 도시락 준비로 일요일 밤까지 쉬지 않는 내 모습을 보고 스스로 대견하다고까지 느꼈는데..아이가 고집불통에 짜증까지 내니 이 모든 것이 한방에 와르르 무너진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애를 쓰고 있는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의 팔할이 아이 교육 때문이었는데,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깊은 회의감이 엄습한다.
오늘 같은 날은 회사 일에만 몰두하고 집에 돌아와 온전히 쉴 수 있는 남자 주재원들이 너무나 부러워진다. 그들은 일찍 출근해 야근도 마음껏 한다. 나는 야근은 꿈도 못 꾸고 돌아와 아이의 공부와 밥을 챙겨야 하며, 그 와중에 일도 허투루해선 안 된다.
잠을 청하는 아이 곁에서 나의 고생을 낱낱이 털어놓고 났더니 마음이 후련하기보다 오히려 찝찝함만 남는다.
아이가 엄마의 노고를 조금만 이해해 줬으면, 짜증을 좀 덜 내고 고분고분해졌으면 하는 마음. 이 모든 것은 나의 욕심일지도 모른다.
꿈나라로 떠난 아이가 남긴 오늘의 메모에서 나를 향한 그녀의 마음을 읽고선 문득 미안해진다…
육아는 참 힘들다.
훗날 이 시간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것을 알면서도, 오늘의 나는 여전히 서툴고 미성숙한 엄마로 남는다.
엄마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
조금만 이해해주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