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꼭 와야 해” 그 말의 이유
“엄마, 내일 나 보러 와줄 수 있어?”
딸아이의 물음에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하필이면 다음 날 회사에서 중요한 보고가 잡혀 있었다.
그날은 아이의 학교에서 처음으로 학부모들을 초대해 프로젝트 결과물을 보여주는 날이었다.
매일매일을 정신없이 쳐내며 살다 보니, 학교 행사가 있다는 사실조차 전날 퇴근 후에야 알게 된 나. “엄마, 내일 나 보러 와줄 수 있어?“라고 묻는 딸아이에게 선뜻 답하지 못하고 “일정을 한번 봐야겠네”라며 응수를 했다. 속으로는 ‘꼭 가야 할까’ 잠시 고민이 스쳤는데, 아이는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꼭 와서 봐줬으면 좋겠어. 내가 이 학교 와서 처음으로 만든 작품인데 엄마가 꼭 와야 해… 그리고 다른 애들은 엄마들이 다 온다고 했단 말이야.”
하아… “다른 엄마들은 네 엄마처럼 그날 중요한 보고가 잡히지 않았잖니”라는 대답이 입가에서 맴돌았지만, 다행히 반차를 쓰고 후다닥 복귀하면 보고 타이밍을 얼추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급하게 밤늦은 시간 상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음 날 아침 아이와 함께 학교로 향했다.
매일 한 시간씩 셔틀버스를 타고 가는 길을 처음으로 직접 데려다줘보니, 이 먼 길을 매일 오갔을 아이가 짠하면서도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도 감지 카메라가 있는 구간도 친절하게 알려주는 딸을 보니 언제 이렇게 컸나 싶고…
등교 후 아이들은 입구의 놀이터에서 놀다 수업에 들어간다. 평소 친하게 지낸다는 친구 몇 명에게 다가가 “나는 OO 엄마야, 우리 OO랑 잘 놀아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며, 영어가 부족하지만 지금처럼 잘 놀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너무도 고맙게 카르멘이라는 친구가 내게 대답해주었다.
“OO 영어가 계속 좋아지고 있어요!”
곧이어 그 친구의 엄마도 만났는데, “제 딸이 OO 영어가 늘고 있고, 이해하는 감각이 있다고 얘기하더라고요”라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우리 아이의 영어 실력을 평가해 줄 만큼 관심을 가져주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전시를 둘러보았다.
전시의 주제는 ‘에너지(위치 에너지, 운동 에너지)의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과 그에 어울리는 시를 창작하는 것. 아이들은 각자의 부스를 방문한 학부모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설명했다. 아직 영어가 서투른 아이에게 영어로 작품을 설명하는 건 무리였기 때문에, 작품 설명을 기록한 종이가 있었고, 그 종이는 반은 한글, 반은 영어로 채워져 있었다. 패드의 통역기를 동원해 나름대로 한글로 초고 작업을 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영문 작업을 한 것이었다.
‘네가 어떻게든 애를 써서 만들어냈구나.’
과제를 이해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텐데, 힘들게 이해하고 작품으로 승화시킨 모습을 보니 온갖 감정이 교차했다.
안 그래도 요 근래 학교에서 야외 활동이 있던 날, 아이가 혼자 밥을 먹었다고 했다. 그것도 내가 물어봐야 겨우 꺼낸 이야기였다.
“그래, 어떤 날은 혼자 먹기도 하는 거지. 하지만 다음엔 친구들 곁에 껴서 먹어봐.”
나는 일부러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지만 마음 한켠이 은근히 쓰였다.
그런데 정작 아이는 그것 때문에 대단히 속상해하거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오늘의 작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과정 중에 이해가 안 가고 답답한 부분이 분명 있었을 텐데, 매일 학교 다녀오면 즐거웠다고 말하는 아이는 제 혼자 미세한 좌절의 순간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꿋꿋하게 매일의 학교생활을 해내고 있는 딸아이가 짠하면서도 너무도 대견했던 하루.
그제서야 왜 그렇게 엄마에게 그 작품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조금 더 먼저 헤아려주고, 조금 더 많이 칭찬해주기로. 우리 딸이 얼마나 장하고 대견한지 말해주기로.
지금 애쓰고 있는 시간들이 성장의 과정이라는 것을 너는 알까.
그 앎과 상관없이, 너는 이미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한 사람인 것 같다.
고마워,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