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경제적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면 무엇을 할건가요?
나의 주양육자는 어머니였다. 나의 어머니는 전업주부였고, 나의 아버지는 워커홀릭이었으므로 나는 자연스럽게 내 성장과정에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이 아버지보다 월등히 더 많았다. 또한, 아버지와 함께 가족 모두가 여행을 가는 경우는 대부분 우리가 학업에 시달릴 필요가 없었던 아주 어린 시절이었으므로 나는 내가 기억하기 시작한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머니와 한 시간이 훨씬 더 많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나의 아버지가 꽤나 좋은 아버지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가족을 등한시 한적이 없었고, 어머니를 힘들게 하거나, 상처를 준 적도 없으며, 우리 가족 구성원 중에 가장 다른 가족에게 관심이 많고, 가장 여린 사람이었다. 그래서 난 살면서 아버지에게 상처를 받은 적이 없다. 다만, 함께한 시간만큼 함께 웃고 울고 싸우고 화해하는 각종 감정의 등고를 함께 겪은 어머니 대비 아버지와의 관계를 고민하거나 생각할 큰 계기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일을 시작하고, 사회에 나가면서 꽤나 자주 내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앞서 나의 아버지는 워커홀릭이라고 밝혔다. 내가 회사에서의 아버지를 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내 기억 속에 아버지는 회사를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간 적이 없었다. 나의 착각인진 모르겠으나, 나는 아버지가 일이 없이 집에서 뒹굴거릴 때보다 일을 하러 출근하러 갈 때 더 빛났다고 기억한다. 나는 어린 시절 저녁에 아버지를 본 기억이 잘 없는데, 나의 아버지는 내가 일어나기 전에 출근해서 내가 잠들고 나서야 퇴근하시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종종 그 시절의 아버지를 회상하시면서 아버지께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야근을 하는데도, 행복한 모습으로 야근을 할 수 있냐?"고 여쭤보셨다고 한다. 내 기억 뿐만 아니라, 어머니에게도 일을 하는 아버지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빛나 보였나보다.
어느 날 새벽 야근을 하다가 풀리지 않던 보고서가 어느 순간 '탁'하고 풀리는 순간이 있었다. 갑자기 전체 내용이 확연해지고, 내가 필요한 데이터들과 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해지던 순간. 그 순간은 새벽 두시까지 일을 했음에도 뿌듯하고 행복했다. 새벽 두시까지 일을 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이 일의 돌파구를 찾았다는 그 기쁨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에 야근을 해도 행복한 모습으로 하신다던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졌다. 또 어떤 날은 내가 정성을 들인 보고서에 대해 클라이언트와 상사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은 적도 있었다. 클라이언트가 보고자 하는 내용으로 짜임새 있고 깔끔하게 구성했다는 점을 칭찬받았다. 속으로 내심 기뻐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만 슬쩍 자랑을 했는데,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말씀 하셨다. "아빠 닮아서 보고서를 잘 쓰나보다, 네 아빠도 맨날 레포트 쓴다고 집에서 일하잖아." 그 때 나의 아버지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계속해서 일을 하고 계셨다.
한 친구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만약 네가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돈이 많다면, 넌 뭐 하고 살 것 같아?" 나는 잠시 고민하다, "오전에 카페 알바를 하고, 저녁에 취미생활을 하는 삶을 살고싶어"라고 답했다. 본인은 그런 기회가 생기면 마음 편하게 공부를 하고 싶다던 그 친구가 설명하길,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지향하는 바를 보여준다고 한다. 경제적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 우리가 하고 싶은 일, 그게 나는 '일'이였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취업을 할 때까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남들 다 어학연수로 가는 미국도 "나는 공부가 아니라 일을 하고 싶어!"서 한 회사의 인턴으로 갔고,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준비하던 4개월도 카페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직까지 일의 어떤 점 때문에 내가 이렇게 일을 사랑하고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에는 그냥 버리는 시간을 돈으로 치환할 수 있다는 생산성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경제적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도 내가 일을 하고 싶다면, 나는 일에서 어떤 만족감을 얻고 있기에 이렇게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걸까?
그러나 적어도 이 성향이 아버지에게로부터 왔음은 확실히 알 것 같다. "아빠 닮아서 보고서를 잘 쓰나보다, 네 아빠도 맨날 레포트 쓴다고 집에서 일하잖아."라고 말했던 나의 어머니는 굉장히 자유분방한 영혼이라 이렇게 책상 앞에 얌전히 앉아 고민하고 고민해서 보고서를 내놓는 일을 잘 하지 못한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의 저 말을 듣고 한 내 말은 "내가 아빠 닮아서 얼마나 다행이야, 엄마 닮았으면 이런 칭찬도 못 들어"였다. 그 말은 들은 어머니도 웃으며 인정하셨다. 어릴 때 나의 주양육자는 어머니였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고 나와 다른 어머니가 내 삶의 유일하고 영향력이 가장 큰 어른이었기에, 나는 어머니와 나의 간극을 자주 발견했다. 그래서 우리는 참 많이 싸우고, 또 싸웠더랬다. 20대까지 나를 가장 괴롭혔던 나의 마음 속 소리는 '나는 유별나고 이상한 사람이다'였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나의 많은 부분은 아버지에게로서 왔다. 물론, 어머니에게도 영향을 받은 성향이 있다. 대충 비중으로 따지자면 약 60%가 아버지의 성향, 약 40%가 어머니의 성향이 아닐까 싶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채우지 못하는 간극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괴로워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 탓인 줄 알았다. 내가 부족해서, 내가 못나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며, 나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하며 깨달은 점은 비록 나의 주 양육자는 어머니였으나, 나는 어머니에게만 키워지지는 않았다는 거였다. 내가 기억하는 시간 속에 집에 자주 없던 아버지, 함께 싸우고 화해하는 격정의 세월을 보내진 않았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내가 가진 줄 몰랐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나만의 장점이 있었다. 자유분방한 우리 어머니는 비록 책상 앞에 앉아 보고서를 쓰진 못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법을 빠삭하게 알고 이를 이용할 줄 아신다. 책상 앞에 보고서나 파고있는 나는 잘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딸이기에 세상을 그런 시각으로 볼 줄 아는 방법도 어느 정도는 익힐 수 있었다. 나는 나의 어머니가 나의 어머니라서, 나의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라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토록 다른 두 사람이 나에게 영향을 줘서 이런 장점도 가지고, 어떤 단점도 가진 나를 키워내지 않았는가.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은 나의 단점을 단점으로만 인식하지 않고, 단점에 가려졌던 내 장점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매일 조금씩 나를 더 알아가고, 배우고, 위로하면서 여전히 매일 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