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란 파도를 즐기는 중입니다. EP 4
서른하나에 떠난 호주 워킹 홀리데이! 호주를 방랑하는 중입니다 :D
탑승 알림이 떴다. 오롯이 혼자 호주로 떠나 새로운 출발을 해야하는 시간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태국 행 비행기에 먼저 올라탔다.
이왕 떠나는 김에 한 나라라도 더 보고 즐기겠다는 일념 하에 스탑오버가 아닌 다구간의(심지어 경유 구간보다 다구간이 저렴했다) 여정으로 태국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호주로 가는 여정이었다.
여행을 좋아해서 여행으로 출장으로 여러 나라를 다녔지만 태국은 처음이었다. 사실 내가 그리 흥미를 가진 나라는 아니었는데 한국이 겨울이었던지라 여름이라는 계절이 그리웠다. 태국의 2월은 다른 달의 여름보다 많이 덥지 않다고 듣기도 했고... 그렇게 선택한 중간 경유지 태국이었다.
기내식 - 영화 - 수면의 3가지 패턴을 반복하다가 태국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했다. 정말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2월이라 그런가? 태국의 더위가 생각보다 괜찮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그건 비행기에서 막 발을 내딛은 나의 섣부른 판단이었다.
태국으로 입국을 하기 위한 줄이 얼마나 길고 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더딘지, 게다가 공항 안에 에어콘이 작동 되는 건 맞는지... 겨울의 옷차림에서 벗어나 여름의 옷차림으로 바뀐 상태였지만 태국의 밤은 더웠고 조용했다.
호스텔 방 안의 에어콘이 밤새 시원하게 작동되는 탓에 조금 서늘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방 문을 나서자 에어콘이 나오지 않는 복도와의 온도차가 상당했다. 문 하나만 넘어서면 태국의 습한 더위를 느낄 수 있는 태국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새벽에 호주로 출발하기 때문에 태국에서의 일정은 애매한 2박 3일 일정이었다. 태국에서의 첫번째 일정 테마는 '기분 전환'으로 미리 네일샵에 젤 네일아트와 젤 패디큐어를 예약해두었는데 운 좋게도 위치가 바로 호스텔 근처였다.
네일 샵에서 제공하는 시원한 아이스 라떼 한 잔 마시면서 한국 가격의 반도 채 안되는 가격으로 원하는 디자인으로 손과 발을 단장 했다. 일하느라 네일아트도 거의 일 년동안 못했던터라 오랜만에 상큼한 기분을 만끽하며 태국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는 태국어라고는 사와디캅(안녕하세요), 코쿤캅(고맙습니다)이 전부인 태국어는 읽지도 알아 듣지도 못하지만 혼자 여행을 선호하는 사람이라 전혀 무섭지 않았다. 원하는 정보는 거의 다 찾을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정보화 시대의 가장 큰 산물인 스마트폰이 내 손에 있지 않은가! 다만 한 달전, 친구들과 함께 일본 여행을 했었기에 오랜만에 혼자 여행이 조금 외롭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느긋한 성격상 여행 일정을 철저히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대충 큰 가지 정도만 정하고 발 길 닿는대로 돌아다니는 사람이다. 점심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태국 여행의 가장 큰 가지였던 수상 버스타고 왓포(Wat Po) 사원 가기 계획을 실행하러 선착장으로 향했다.
오렌지 깃발이 달린 가장 저렴한 수상 버스를 타고 짜오프라야 강 위를 달린다. 수상 버스의 모양이나 풍경은 다르지만 내가 좋아하는 베니스의 수상 버스 바포레토를 타는 느낌과 비슷하다.
수상 버스 안에서 강 주변의 있는 사원들이 보이는데 그 때 본 독특한 풍경들이 나에게는 태국의 이미지로 기억 될 것 같다.
태국에서는 왕궁과 사원에 들어가려면 복장 제한이 있다. 여성의 경우 짧은 바지나 치마를 입으면 안되고 민소매도 착용할 수 없는데 대체 이 습한 태국에서 어떻게 긴 바지를 입고 여행을 하는 게 가능할까?
긴 바지를 입고 여행이 가능하지 않았던 사람으로써 사원 입장을 핑계로 태국에서 코끼리 바지를 샀다.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말하는 냉장고 바지로 패턴도 색깔도 다양했는데 내 마음에 쏙 드는 청록색 컬러가 들어간 코끼리 바지였다.
사람들이 더 많이 간다는 왓아룬(Wat Arun) 사원이 아닌 왓포 사원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무려 길이 46m, 높이 15m의 태국 최대 크기라는 와불상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딱히 종교랄 건 없어서 무언가 곤경에 처했을 때 고민이 있을 때 신을 찾는 사람은 아니지만 외가 쪽에서 절을 종종 방문하기 때문에 나도 시간이 맞으면 가끔 엄마와 이모들과 절을 가기도 한다. 사실 엄마에게 사진으로나마 와불상을 보여주고 싶어서 방문하는 마음이 컸다.
절은 시끄럽지 않고 조용한 편이라 가끔씩 절을 들를 때면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 들어 새로운 도전을 하기 전에 작은 마음의 평화도 필요했다. 물론 여행객들에게 왓포 사원은 소문난 관광지라 조용할 것이라는 기대는 일찍이 접었지만 말이다.
사원은 이곳저곳 둘러볼 곳이 참 많았다. 알록달록한 사원의 컬러와 건축물도, 구석구석 놓인 각기 다른 불상과 탑들도 볼 거리가 많은 곳이었다.
와불상은 누워있는 그 크기가 사람을 압도할 수 밖에 없는 크기였다. 누가 어떻게 이것을 만들었을까 하는 여러 개의 궁금증이 생겨나는 거대함이었다.
108배 대신 불상을 둘러 싼 108개의 항아리에 동전을 넣고 소원을 빌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었지만 나는 따로 소원을 빌 생각은 없었다. 물론 소원이 없는건 아니지만... 모든 와불상을 볼 수 있는 먼 발치에서 가족들이 건강하고 무탈한 호주 생활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랐다.
긴 바지 입고 사원을 잠깐 돌아다녔을 뿐인데 덥고 습한 날씨에 에너지가 쭉쭉 떨어졌다. 빠르게 사원 출구로 빠져 나오면 일반 보도블럭이 깔려있는 길로 이어지는데 사원을 막 나온 여행객들이 길 위에서 다들 바지를 벗고 있었다! 나도 반바지 위에 입었던 긴 바지를 사람들 사이에 합류해 자연스럽게 벗고 사원을 입장하면 주는 시원한 물 한 병을 그 자리에서 다 마셨다. 그리고 그 날 내가 샀던 바지는 호주를 돌아다니는 내 캐리어 한 쪽에 아직도 자리하고 있다.
이 후의 여행은 딱히 일정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태국 여행과 비슷했다. 쇼핑을 하고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고 바쁜 사람들 사이에서 여유를 부리면서 커피도 마셨다. 해산물을 안 좋아하는데 태국을 방문했으니 먹어야 한다는 해산물 요리들 중에서 뿌빳퐁커리 딱 하나만 골라 먹어 보았다. 생각보다는 입에 잘 맞아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호주로 가는 새벽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가기 전에는 전신 마사지도 받았다. 그간 쌓였던 피로를 풀고 떠나고 싶었다. 공항으로 갈 때는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 갔는데 상당한 무게의 짐과 밤 늦은 시간임에도 여행객이 많아 험난한 길이었다.
태국 여행은 워낙 짧기도 했었지만 인상적이거나 엄청 즐거웠다라는 기분이 지금 내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은 이유는 알고 있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당시 내 마음 한 켠에 자리하고 있었던 새로운 호주 생활에 대한 불안함이 그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