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란 파도를 즐기는 중입니다. EP 5
서른하나에 떠난 호주 워킹 홀리데이! 호주를 방랑하는 중입니다 :D
나는 비행기 타는 걸 좋아한다. 공포증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비행기 타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나의 첫 비행기 탑승은 고등학교 2학년 제주도 수학 여행 때였다. 요즘은 해외 여행이 예전보다 많아지고 수학 여행도 해외로 나가는 학교가 비일비재한 시대가 됐지만 10년도 더 된 나의 학창시절에는 아니었다. 비행기를 수학 여행 때 처음 접한 친구들이 많았으니 활주로를 달리다 비행기가 상공으로 이륙한 순간에 다 같이 설레는 마음으로 소리를 질렀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비행기를 탔던 나는 어른이 되어서 여행으로 출장으로 수 십번도 넘게 비행기에 올랐지만 매 순간이 아직도 설레인다.
호주로 가는 9시간 동안 아주 푹 잤다. 새벽 비행기를 타기도 했지만 호주와 한국은 시차가 거의 없기 때문에 시차 적응 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이 먹고 자고 먹고 알차게 보냈다.아침 기내식을 먹고 난 뒤에 비로소 잠에서 완전히 깰 수 있었는데 정신이 좀 맑아지고 나니 곧 있으면 호주 그리고 영어 전쟁터에 던져진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급하게 영어 공부를 더 할 심산으로 미국 드라마를 틀었는데 보다가 식곤증으로 다시 잠이 들어 버렸다.
역시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건 눈꺼풀이다.
도착 예상 시간보다 20분 일찍 게이트로 나온 나는 호주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실감도 하기 전에 굉장히 짜증나는 일이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공항 와이파이로 공항에서 시내까지 들어가기 위해 한인 택시를 예약했는데 도착 예정 시간에 맞춰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기다렸는데 시간이 지나고 늦어도 연락이 없었다. 메세지를 보내봐도 답장도 없었다.
20분이 넘게 지나 온 답장에는 애초에 공항 근처라던 사람이 오는 길에 경찰한테 붙잡혀서 여권 검사를 당하고 있다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차라리 오지 못할 것 같으면 못 온다고 솔직히 말하면 될 것을 변명만 줄줄 말하며 본인 메신저에 프로필 사진을 없애고 함께 적혀있던 택시 회사 이름을 바꾸고 있는 꼬라지가 참으로도 못나보였다. 일부러 당일 예약이 변경되는 등 계획의 차질을 만들기 싫어서 한국에서 예약하지 않고 호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호주 그룹 채팅에서 바로 연락달라는 사람을 찾아 예약한 거였는데도 취소 당했다!
나는 덕분에 공항에서 1시간 넘게 시간을 버렸다. 은행이 문을 닫는 오후 2시 전에 시내에 도착하기 위해 무거운 짐을 이끌고 공항을 달렸고 가까스로 공항 전철에 탑승해서야 숨을 고를 수 있었다. 해외에서 특히 호주에서 한국인 믿지 말라는 말을 첫 날부터 뼈저리게 체험한 순간이었다.
전철에서 내려 센트럴 역 밖으로 나오니 예약한 호스텔이 정말 바로 맞은편에 위치해 있었고 호주 청년이 내 짐을 모두 옮겨주어서 호스텔 입구에 있던 계단 몇 개를 캐리어와 함께 낑낑거리며 오르지 않아도 됐다.
아슬아슬하게 문 닫기 직전에 방문한 은행에서는 이 곳에서 수령하기로 한 호주 은행 카드를 오늘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브리즈번에서 보내는 시간은 딱 이틀 밖에 없다는 상황을 설명하니 내일 예약을 하고 바로 카드를 받을 수 있도록 은행원이 다른 지점으로 연락해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긴 영어 문장과 전문적인 용어를 만들어 써야하는 은행 업무 대화에 탈탈 털리고 2차로는 핸드폰 유심 개통을 위해 찾은 대리점에서 하루치 영어 사용량을 초과했다.
호주에 도착해서 열어 본 캐리어에서 제일 먼저 찾은 건 엄마가 가방 속에 숨겨놓은 편지였다. 엄마가 떠나기 전에 편지를 써주기로 했었는데 공항에서 직접 주지 않아서 엄마가 바빠서 잊어버린 줄 알았다. 입국 심사를 받으러 들어가기 전에 엄마가 편지는 캐리어 안에 넣어 놨다고 알려주셨다. 나도 몰래 편지를 써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왔다는 사실을 알려드렸다. 태국 짐은 다른 가방에 따로 챙겼었고 호주에서 읽고 싶은 마음이라 호주에 도착하는 날까지 꾹 참았었다.
나는 봉투에 적힌 사랑하는 딸에게라는 단어만 읽고도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엄마가 써준 편지를 보면서 호스텔 침대 위에서 눈물 한 바가지를 쏟은 그 밤은, 호주에서 보내는 첫째 날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