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시기가 있다.

by 이유진

항상 이맘때 쯤이면 목련이 탐스럽게 폈다가 지곤 한다. 아파트 단지 내 곳곳에서 혹은 공원에서 목련을 마주하게 되면 반가워지는 지금과 달리 예전에는 목련을 참 싫어했다. 지금 보면 참 탐스러운 그 꽃망울이 왜 이렇게 꽃잎이 큰가 싶었고, 흰색도 노란색도 아닌 색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꽃잎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사람들이 밟아 누렇게 짓이겨진 모습은 눈쌀을 찌푸리에게 충분했다. 이러 저런 이유로 나는 목련꽃을 좋아한 기억이 없는데, 이상하게도 언젠가부터 목련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작년인가. 아파트 단지 내에 흐드러지게 핀 그 꽃이 정말 예뻐 보인 날이 있다. 추운 겨울을 이기고 이른 봄에 피어난 꽃을 보면서 참 예쁘다 생각했다. 아직은 찬 봄바람에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꽃들이 춤을 추는데 새파란 하늘과 흔들리는 그 꽃망울이 어찌나 탐스러운지. 선명하지 못해 별로라 생각했던 꽃잎 색마저 푸른 하늘과 어울려 오묘하다 느껴질 만큼 참으로 예뻐 보였다.


벚꽃처럼 줄지어 심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 심어져 장소에 따라 개화시기가 조금씩 다른 것도 목련을 감상하는 큰 즐거움이 되었다. 같은 아파트 단지임에도 빛이 잘 드는 곳은 먼저 피었다가 빛이 잘 들지 않는 곳은 이제야 피는 곳도 있는데, 이미 져버려 아쉽다 느껴질 때에 다시 새로운 꽃망울이 피어있는 곳을 찾으면 그렇게 반갑게 느껴질 수가 없다. 게다가 홍목련을 만나게 될 때면 그것 또한 새롭고 반가운 일이라 요즘 나는 길을 걸으며 목련나무가 어디에 있나 찾게 된다.


그렇게 관심을 가지다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되었다. 목련이 피는 시기가 되면 아직 피지 않은 목련 나무를 찾게 되고 그 나무에 있는 겨울눈을 보게 된다. 털이 소복한 겨울눈을 보면서 이곳에는 언제 꽃이 피려나 기다리게 되었고, 꽃이 활짝 피고 다 떨어지고 난 뒤 새파란 잎이 자리 잡을 때면 손바닥만큼이나 넓은 그 잎을 보면서 '아, 이 나무가 목련 나무였구나'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나에게 참 이상한 일이었다. 예전에는 꽃이 피어야 목련 나무인 줄 알았던 것을 이제는 나뭇잎을 보면서도 그것을 인지하게 되었고, 오며 가며 그 잎들을 찾고 있는 나를 볼 때면 내 모습이 참 낯설게 느껴진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의 외모도 생각도 점차 달라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어 진다.


자연스레 우리 아이들의 성장을 생각하게 된다. 아직 학교도 가기 전의 어린아이들이지만 그들 역시 신생아 갓난쟁이 시절과 비교하면 많은 것이 변했다. 외모는 물론이며 하는 행동들도 날이 갈수록 변화한다. 그들이 배우고 있는 것들은 누구보다 빠르고 첫째가 내 말투를 닮아있는 것처럼 둘째 아이는 형의 몸짓과 행동들을 닮아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내가 걱정하던 것들은 하나둘씩 자연스레 고쳐지고 있다. 예를 들면 첫째 아이가 기저귀를 떼고서도 한 동안 대변을 변기가 아닌 기저귀에다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곤 했는데,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데도 잘 고쳐지지 않아서 여간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때가 되면 하겠지 싶으면서도 염려가 되었는데, 어느 순간 변기에 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혼자서도 척척 알아서 하게 됐다. 둘째 아이도 마찬가지다. 첫째가 커 온 과정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걱정하는 일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 해결되고 있다. 문제는 나의 조급한 마음과 쓸데없는 걱정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꽃이 피고 지는 시기가 모두 다른 것처럼, 내가 이제야 목련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에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아이들은 물론이며 모든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해내고, 이뤄가는 시기가 각자 다르겠다 싶어 졌다. 물론 빠르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고 느리다고 해서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도 말이다. 물론 꽃이 피기 위해서 적절한 햇빛과 물이 공급되어야 하는 것처럼 마냥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될 일이겠지만 적어도 다른 아이와 비교하며 아이를 채근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다짐했다.


각자의 시기가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싶어 진다. 기다림의 미학이 모두 아름다울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그 꽃은 피어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자식에게 그런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먼저 부모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싶었다.


마지막으로 목련만 보면 절로 떠오르는 시 한 편을 소개해본다. 학창 시절, 시를 왜 배우는지 그저 지루하게만 여겼고, 그저 선생님이 알려주는 대로 밑줄 치고 뜻을 받아 적던 나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 뜻이 절로 이해가 되는 것이 참으로 오묘하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김영랑




*표지 사진 : Photo by Aaron Burde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