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와 배움은 끝이 없다.
오늘도 긴 하루가 지나고 있다. 밖에서 노는 것만큼이나 아이들과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공간의 제약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유치원 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눈을 자꾸 비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원길에 병원에 가야지 했는데, 막상 두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려니 막막하기도 하고, 아이도 가기 싫다고 떼쓰는 데다가 눈 상태를 보니 크게 심각한 것 같지는 않아서 다음날 가기로 하고 그 날은 놀이터에서 놀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 날, 주말이고 하니 오랜만에 잡화점에 들러서 아이들과 소소한 쇼핑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늘 할 일들에 대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병원을 가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게 되었는데, 아이의 눈 상태가 크게 나빠 보이지 않았기에 오전부터 병원에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느슨해졌다. 게다가 아이는 전날 밤 잠깐 제안했던, 다X소에 가서 자동차 사기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던 터라 아이의 그 욕구를 해결하는 것이 먼저였다. 눈을 뜨면서부터 언제 자동차 사러 가느냐고 연신 물어대는 터에 아침밥을 해결한 후 아이의 바람대로 온 가족이 오랜만에 쇼핑 길에 나섰다. 버스를 탈까 택시를 탈까 고민하면서 걸어가는 길에 안과가 있는 상가건물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안과에 들렀다 갈까 하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가 아이에게 병원에 가자고 말을 건넸지만 아이의 머릿속은 이미 사야 할 자동차로 가득 차 있었기에 떼를 쓰면서 가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그런 아이를 보며 나는 또 느슨해졌고, 그래 뭐 돌아오는 길에 들러야겠다 싶어 일단 택시를 탔다.
흐린 날씨와는 달리 아이들의 기분은 한껏 들뜬 것처럼 보였다. 상가에 들어서자마자 많은 장난감들이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노래를 부르던 청소차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를 대신할 다른 장난감이 많았기에, 아이들은 제각각 장난감을 고르는데 정신이 없었다. 본인이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하나씩 고르는 것을 보면서 (왠지 가지고 놀 것 같지 않은 장난감을 들고 있는) 둘째 아이에게 재차 물었지만 선택을 바꿀 수는 없었고, 결제를 끝냈다. 아이들의 욕구가 해결되자 나의 욕구가 꿈틀대기 시작한 것일까. 잡화점 근처에 있는 샌드위치 집이 떠오르며 가자기 침샘이 고이기 시작했다. 남편의 나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고, 날은 흐렸지만 샌드위치를 먹으러 가는 나의 발걸음은 손에 장난감을 하나씩 든 아이들의 발걸음만큼이나 가벼웠다.
하지만 마침 점심시간에 이르러서 인지 가뜩이나 인기가 많은 샌드위치 집에는 대기하는 사람이 많았고, 주문하고도 2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남편도 고민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싶은 마음과 뒤이어 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에 떠밀리듯 일단 주문을 했다. 좁은 공간 턱에 아이들만 자리에 앉히고 우리는 서있었는데, 주문이 나오기 20분까지가 마치 1시간인 듯 느껴지면서 괜히 들어온 게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리에 앉자마자 첫째 아이는 언박싱의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새로 산 장난감 세트를 개봉했고, 그걸 본 둘째 아이는 형이 산 것이 탐이 났는지 자기도 달라고 보채기 시작했다. 첫째의 거부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자기는 무조건 똑같은 거 두 개 산다는 (연년생 두 딸을 키우는) 올케의 말이 머리를 스치며 후회의 감정이 들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둘째의 칭얼거림과 첫째의 방어 전략은 샌드위치를 먹고자 하는 나의 욕망이 과했던 걸까 싶은 마음을 불러으켰고, 샌드위치가 나오기 직전, 첫째 아이가 눈이 아프다고 칭얼대기 시작함과 동시에 오늘 나의 선택은 틀렸구나를 확신하게 했다.
일단은 병원부터 검색을 했다. 때마침 토요일이라 정확히 몇 시까지 진료를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찾아보니 오후 2시까지 여서 일단은 먹고 가도 되겠다 싶은 마음에 아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하지만 왜인지 아이는 갑자기 병원에 가자고 막무가내로 떼쓰기에 들어갔다. 마음이 급해진 남편은 선 채로 샌드위치를 허겁지겁 먹으며 순식간에 해치우는 신공을 보였고, 둘째 아이에게도 조금씩 나눠주면서 먹던 나는 다 먹지 못한 채로 남편이 다 먹자마자 우리는 서둘러 보따리를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그 와중에 따뜻한 라테는 왜 시켰던 것인지...
시계를 보니 1시 20분,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도로는 이미 꽉 막혀 있었다. 선택할 순간이었다. 이 근처의 병원을 갈지 아니면 동네 다니던 병원을 갈지, 동네 병원을 간다면 무엇을 타고 갈지를. 그래도 가던데 가는 게 낫지 않겠냐는 결론을 내리고 지하철을 택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지하철을 타는 것은 여러모로 소모적인 일이었지만 꽉 막힌 도로 사정을 보니 택시나 버스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역으로 뛰기 시작했다. 남편의 손에는 내가 차마 다 먹지 못한 샌드위치와 커피가 들려있고, 나는 두 아이의 손을 붙잡았다. 지하철의 많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결국 남편은 어찌어찌 첫째 아이까지 안아 들었고, 나는 둘째를 안아 든 채 우리는 뛰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 이후로는 엘리베이터를 적절히 활용하는 바람에 무사히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착한 병원은 문이 닫혀있었다. 병원 앞에 걸린 안내표지에는 토요일 진료시간은 2시가 아닌 1시로 적혀 있었다!(인터넷의 정보는 틀린 것이었다.) 아뿔싸. 순간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그놈의 샌드위치가 뭐라고 그걸 먹겠다고 거기서 20분이나 기다린 건지, 게다가 제대로 먹지도 못할 것을 뭐하러 먹으러 갔을는지부터 해서 아까 집에서 나올 때 병원에 들렀다 왔어야 했다는 후회까지 거슬로 올라갔지만 아무 소용없는 것이었다.
후회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후회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빠르게 다른 병원을 검색했고 전화해서 정확한 진료시간까지 확인했다. 지금 오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남편은 둘째와 집으로 가기 하고 나는 첫째 아이를 데리고 버스를 타고 병원을 찾아가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단순한 꽃가루 알레르기였지만 다음날 휴일인걸 감안하면 안약이라도 타 온 것이 다행이었다. 진료를 받으면서도 내내 어제 갔어야 했다는 후회를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흐렸던 날씨는 어느새 푸른 하늘을 드러냈고, 어느새 날이 풀린 건지 내리쬐는 햇빛이 뜨겁다고 느껴졌다.
돌아오는 길에는 날씨가 따뜻하고 좋아서 아이와 손을 잡고 걸어왔다. 걸어오면서 기분이 좋아진 아이를 보며 아까 왜 그렇게 갑자기 아프다고 떼를 썼을까 싶어 졌다. 아마 눈의 간지러움이 장난을 사고자 하는 기대에 뒤쳐져 있다가 그 기대가 충족되니 드디어 그 간지러움을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가 치솟았을 것이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에서 '인정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키클롭스를 자극하는 과오를 저지른 오디세우스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는 대목이 있다.(상당히 흥미진진하다.) 풍족한 먹거리와 그저 편히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되었던 그는 단지 낯선 곳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죽음에 처하게 될지도 모르는, 어찌 보면 아주 멍청한 짓을 저지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저 장난감을 사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병원을 갔더라면 아마 그 난리 북새통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샌드위치를 먹기로 한 것은 멍청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었다. 어쩌면 굳이 택시를 타고서 장난감을 사러 잡화점에 가기로 한 결정에는 근처의 샌드위치 가게가 포함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이의 욕구만큼이나 나 자신에 대한 욕구가 채워져야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아이를 낳으면서부터 일어난 짜증과 화내기의 반복은 결국 서로의 욕구 충족 대결이었던 것 같다. 그들의 욕구와 나의 욕구 사이의 충돌은 일상이 되었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결국 그것의 적절한 균형감, 즉, 내 욕구의 조절이었다. 잘 맞추다가도 한 번씩 무너지기도 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내가 다 받아주지 못할 때, 혹은 내가 참아도 될 것을 참지 않고 나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애쓸 때, 아이도 나도 조금은 힘들어졌다. 다행히 아이들이 자라면서 조금씩은 이전에 비해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고, 좀 더 현명한 협상가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보다 더 큰 자녀를 둔 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힘들어질 수 있을 것도 같은 걱정은 든다.) 일단은 그들보다 좀 더 이성적인 사고를 가내가 해야 할 일은 먼저 아이에게 더 중요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얼마나 더 배우고 더 인내해야 하는 것인지. 때로는 답답할 때도 있지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 앞에서 ‘원숭이가 우끼끼끼 했어’ 하며 예쁘게 웃어주고 있는 아이를 보며 그 마음을 달래 본다.
*표지 사진 : Photo by Engineer9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