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 알고 있다는 태도의 위험함에 대해
학교에서 우쿨렐레 강사 선생님의 수업이 배정되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그간 온라인 수업을 하다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되면서 대면 수업으로 전환되었다. 아이들과 선생님과의 처음 대면 수업이 있던 날, 나도 처음으로 우쿨렐레를 배워볼 기회를 가졌다. 우쿨렐레를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상당히 흥미가 생겼다. 대학시절 음악을 전공하던 동기들이 클래식 기타를 들고 다니던 것이 생각났다. 기타에서는 코드만 알면 된다고 했던 친구들의 말도 떠올랐다. 티브이나 영화 속의 인물들이 기타 연주를 하는 장면부터 캠프파이어할 때 들려오던 기타 연주 소리까지 여러 개의 기억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선생님께서는 기본 코드 두 개를 먼저 알려주셨다. 그리고 <연가>노래를 부르면서 연주 시범을 보이셨는데, 한 손으로 코드를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줄들을 내려 튕기면서 하나의 음악이 완성된다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4/4박자 곡이라 한 코드에 네 번 줄을 튕기면 됐다. 몇 번의 코드를 움직이니 음악이 완성됐다. 그것이 나는 참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배운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는 각각의 음들을 눌러야지만 연주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기타가 바이올린과 비슷한 현악기라 그런지 그 부분이 더욱 색다르게 다가왔다.
어쨌든 현을 누르면 되는 거니 바이올린을 배운 나로서는 손가락 굳은 살도 있으니 괜찮겠다 싶어 졌다.(물론 바이올린도 손 놓은 지가 꽤 됐음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클래식 기타보다는 훨씬 작은 사이즈라 그런지 부담도 덜했다. ‘오, 이거 나도 쉽게 할 수 있겠다’는 뜻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음계를 하나씩 집는 것이 아니라 코드를 누르는 것은 여러 개의 현을 를 동시에 눌러야 하는 것이고, 플랫 간격도 꽤나 넓어서 누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말이 있었다.
여러분, 어렵지 않죠?
처음에는 나도 코드를 누르느라 정신이 팔려서 인지를 못했는데, 반복되는 선생님의 말에 “헐, 엄청 어려운데.” 하는 혼잣말이 나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교실에서 저 말을 꽤나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렇다. 나 역시도 수업 중에 아이들에게 설명을 하면서 “이건 별로 어렵지 않죠?” 혹은 “이 부분은 별로 어렵지 않아요.”라는 말을 로봇처럼 재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로 놀라운 발견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부담 갖게 하지 않으려고 하는 말이었는데,(우쿨렐레 강사님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리라) 막상 내가 배워야 하는 학생의 입장에 서고 보니 “어렵지 않다”는 그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래전에 보았던 오디션 경연대회 프로그램들이 떠올랐다. 여유만만하게 앉아있는 심사위원들과는 달리 아주 초초한 마음으로 심판대(?)에 서 있는 참가자들. 긴장감에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들이 얼마나 떨리는 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아이들과 나의 관계도 그럴 것이다. 나에게는 아주 어렵지 않은 일들을 아이들은 아주 어려운 마음으로 겪어가고 있었다. “선생님, 이건 어떻게 해야 해요?”, “선생님, 어려워요.”, “선생님, 이건 못 먹어요.” 아이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리는 것만 같았다.
몸은 무럭무럭 자라 덩치가 산 만한 아이들이지만 아직은 배워가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시기이다. ‘어렵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어쩌면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배움은 누구에게나 늘 어려운 것인데, 단지 나는 정답을 다 알고 있다는 이유로 그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우위에 서게 된다. 가끔은 내가 잘해온 지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있는데, 그것이 그들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겠다 싶어졌다.
어렵다는 생각으로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일단은 차근차근 알려주는 것이 필요했다. 내가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과정을 생략하는 것이 아니라 스텝 바이 스텝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짚어주는 것. 이건 어쩌면 가장 기본인 것인데, 내 입장에서 가르치려 들면서 잊고 있었던 건 아닌가싶은 반성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 번에 안되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자꾸 도전하게 하는 것. 아이들이 지금 학교에 와서 배워야 할 것은 높은 성적을 이루는 스킬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자꾸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가는 것이다.(물론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몇 번만에 성공하느냐 보다 도전 끝에 결국 성공 경험을 직접 느끼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결국 우리 인생은 평소 습관으로 만들어진다. 올바른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반복하는 것이 필요하고 내가 할 일은 그런 반복의 경험을 자꾸 제공하는 것이었다. ‘어렵지 않아요’라는 말 대신 ‘어려울 수 있지만 자꾸 연습하다 보면 나아질 것’이라고 말해주어야겠다. 처음부터 잘하는게 아니라 ‘하다보면 잘하게 되는 것’임을 알려주어야겠다. 결과가 중요한 세상이지만 땀 흘리는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결과는 없고, 비록 그 결과가 기대치에 못 미치더라도 스스로가 겪어낸 과정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악기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 돌아와서 수업을 받으며 아이들에게 내가 느꼈던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선생님이 아무 생각 없이 ‘어렵지 않다’라는 이야기를 해온 것 같다고 하면서 앞으로는 그 말을 가급적 사용하지 않겠다고 아이들에게 앞에서 약속했다. 입장이 바뀌어 보니 그게 얼마나 배려가 없는 말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그렇듯 사람은 자신의 처지가 바뀔 때마다 이전의 상태에서 느꼈던 것들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리게 된다. 선생님이 된 내가 학생 신분일 때를 잊었던 것처럼, 높은 직급에 있는 사람들도 오래전에 평사원인 시절이 있었듯, 유명 배우가 무명 배우의 시절이 있었듯, 지나온 나의 위치에 대해 한 번씩 상기시킬 필요가 있겠다 싶어 졌다. 특히 부모도 그렇다. 내 자식이라는 이유로 내가 부모의 간섭을 받던 어린 그 시절을 잊고서 우리 아이들의 삶을 일거수일투족 간섭하려 드는 데,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내가 이미 겪었으니 다 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 누구를 대하든 그런 태도로 말을 하는 것은 삼가야겠다고 다짐한다.